요리란 무엇일까, 대접 받기 Food_Cooking

계속 국이며 찌개를 끓이다 보니 이젠 제법 익숙해져서 요령도 생기고 맛도 점점 좋아지고 있다.
양념을 하는 요령이 늘고 있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신선하고 질 좋은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고 각 재료의 궁합을 맞추는 것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재료가 나쁘면 좋은 맛이 우러나지 않고, 재료의 맛이 좋지 않으니 그 맛을 양념 맛으로 덮으려고 하게 되어 원재료의 맛은 사라지고 짜고 맵고 단 양념 맛만 나게 된다.
강한 맛에 길들여지면 그런 강한 양념을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겠으나, 되도록 양념은 약하게 하고 원재료 자체에서 우러나오는 맛을 즐기는 입맛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어떤 재료 하나가 더 들어가면 다른 맛이 된다.
재료들을 어떻게 배합하느냐에 따라 최종적인 맛이 달라지고, 잘못 선택한 재료로 인해 맛  없는 음식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요리’라고 하기에는 부족하지만 그래도 나름 음식을 만드는 행위를 계속하다보니 나름대로의 철학이 생기고 음식이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요리’란, 정해진 양식이나 어떤 테크닉으로 볼 것이 아니라, 우리가 구할 수 있는 식재료를 이용해 몸에 좋고 먹는 즐거움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먹을거리’를 만드는 행위로 보아야겠다.
그런 시각에서 보면, ‘요리’라는 것이 거창한 것이 아니고,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저 어떤 이는 다양한 지식과 테크닉을 가지고 있는 요리사이고, 어떤 이는 소박하게 요리를 할 뿐이다.
요즘 요리 관련 방송과 요리사(셰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너무 ‘쇼 비즈니스’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이런 근본적인 의미에 좀 더 집중을 해보자.

식사를 만들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고, 정리 정돈을 하고.
올해 들어 집안일을 하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하루 동안 집안일에 사용하는 시간이 최소 2시간 이상은 되는 것 같다.
어머니는 처음에 불편해하셨다.
평생 누군가에게 대접을 받기 보다는 대접을 해주며 살아 오셨기 때문에, 누군가가 자신에게 뭔가를 해주는 것을 어색해 하시고 오히려 불편해 하셨다.
가족을 위해 음식을 만들고, 빨래를 하고, 집안일을 하고, 돈을 벌고, 투정을 받아 주고, 뒤처리를 하시며 평생을 사셨다.
그것을 당연하게 해야 할 의무로 받아들이고 희생하며 살아오셨고, 이제는 그냥 그렇게 남을 위해 해주는 입장인 것이 편해져 버린 것이다.
그렇게 나이가 드셨는데, 어느 날 부엌을 내주고, 일을 대신 해주겠다고 나서면 가만히 지켜보고 있기가 괜히 불편하셨던 거다.
아직 온전히는 아니지만 이제 한 반 정도는 손을 놓는 것에 익숙해지시고 있는 것 같다.
처음에는 자신이 하시겠다고 극구사양을 해서 서로 옥신각신 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어련히 부엌을 내어주시고 대접을 받는 것에 조금씩 익숙해지시고 계시다.

아이를 낳아 20년.
그 아이가 20년이 지나 성인이 되고, 성장한 자녀가 부모를 모시고.
그렇게 또 20년이 지나 손자가 태어나고.
또 20년이 지나면 손자가 부모와 조부모를 모시고.
예전에는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부모’란 그저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필요한 교육과 정상적인 성장발육이 되도록 보호해주는 ‘일시적인 보호자’라고 생각한다면, 아이는 성인이 되어 독립해서 스스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면 된다.
그것이 서양적 사고방식이다.
부모나 날 낳아 키워줬으니 늙은 부모를 모시는 것이 당연하다는 동양적 사고나,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독립적인 인간으로 성장할 때까지) 양육해주면 부모의 역할은 끝이 난다는 서양적 사고방식 둘 중 어느 것이 옳다고 단정하여 얘기하기는 어렵다.
‘서양적 사고방식’이라고는 얘기했어도, 서양인들 역시 성장하여 독립한 자녀에 대해 애틋함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른 것이고, 각자 옳다고 믿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요즘 한국의 모습은 위에서 말한 동서양의 어느 것과도 같지 않다.
아이는 스무 살이 되면 대학생이 되어 이전보다 더 많은 돈을 필요로 하고, 여전히 부모에게 의지한다.
서른 살이 넘어서 결혼을 할 즈음에는 대체로 부모의 돈으로 집을 구한다.
그리고 결혼해서는 독립해서 살기를 원하고 부모를 모시려 하지 않는다.
아무리 부모가 자식을 위해 희생할 운명이고 손해를 따질 관계는 아니지만, 뭔가 너무 불공평하지 않은가.
관습과 새로운 삶의 형태가 혼재하면서 뭔가 기형적인 형태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자녀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기 시작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다 과도기일 뿐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주절주절 읊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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