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국은 일본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그대로 일어날까? News_Broadcast

최근에 어떤 뉴스를 보다보니 ‘일본은 한국의 미래다’라는 문장을 쓴 뉴스가 있어서 몇 가지 떠오른 생각들을 정리한다.
먼저, 해당 뉴스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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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8-[배준호의 세계는 왜?] 일본은 한국의 미래다…인력파견업체 전성기가 달갑지 않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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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룸버그통신은 7일(현지시간) 보도에서 일본 아베 신조 정권의 가장 큰 수혜자가 인력파견업체라고 했는데 이 기사가 저의 눈길을 끈 것도 ‘일본은 한국의 미래다’라는 말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일본 최대 인력파견업체 ‘딥(Dip)’ 주가가 아베 정권 출범 이후 5000% 가까이 뛰었다는 내용인데요. 일본의 전통적인 종신고용 시스템이 무너지면서 비정규직 채용이 늘어 인력파견업체들이 호황을 누리게 됐다는 것입니다.

일본은 현재 전체 근로자 10명 중 4명 꼴로 비정규직이라고 하네요. 또 일본은 비정규직 근로자가 3년 이상 한 회사에 근무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하고 있는데 조만간 의회에서 이런 의무화를 폐기하는 법안이 통과될 전망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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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어떤 현상이 일어나면 몇 년 후에 한국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는데, 예전에는 약간 다르게 얘기를 했었다.
‘한국은 일본과 약 30년 정도 차이를 두고 쫓아간다.’
일본과 한국 사이에 대체 어떤 관계가 있기에 일본에서 20~30년 전에 일어났던 일이 그대로 재현되는가.
‘가라오케’가 한국에 넘어와 ‘노래방’이 되었고, 일본의 ‘아이돌’ 비즈니스를 수입해서 한국 음악계에 아이돌 그룹이 넘쳐나고, 일본에서 ‘이지메’ 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된 적이 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에서 ‘왕따’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이슈가 되기 시작했다.
왜 똑같은 비즈니스 모델이 수년 후에 한국에서 유행하고, 사회적 문제도 왜 그대로 닮아가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일본에서 한국으로의 문화 전염 현상이 있음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왜 그런지’에 대해서 명확히 밝히지는 못하고 있는데, 나름대로 유추를 해보았다.

오랫동안 일본의 식민지로 지내면서 친일 세력들이 정치·경제·문화를 장악하고 있었고, 그들의 후세대들은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하는 등 선진 교육을 받으며 사회의 지도층이자 기득권층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일본이 패망하면서 일본군 잔당의 소탕 뿐 아니라 일본앞잡이 노릇을 하며 같은 국민의 피를 빨아먹고 기득권을 획득한 친일 매국 세력들에 대한 재산 환수 몰수 및 처단이 이뤄졌어야 했으나, 친일세력을 처단한 북한과 달리 미국이 통치한 남한에서는 통치를 쉽게 하려는 목적 아래 기존에 기득권을 장악하고 있던 친일 세력들을 그대로 기용하였다.
이들은 이미 상당한 교육을 받은 지식인들이었고, 지지기반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권력을 허용해주고 간단히 명령만 하면 쉽게 통치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이 물러간 이후에도 친일세력들이 그대로 기득권을 물려받아 부와 명예를 누린 것이다.
오히려 일제치하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외면을 받았고, 외국으로 떠나거나 가난에 허덕이는 이상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렇게 남한을 통치하게 된 미국의 윤허 아래에 기득권을 그대로 누리게 된 친일세력들과 그들의 후손들.
그들의 후손들은 일본에서 유학한 사람들이 대다수였고, 일본 사대주의에 빠져 있었을 것이다.
정치와 경제 및 사회·문화 등 다방면의 시스템들은 일본의 체계와 방식을 그대로 모방하였고, 일상용어와 전문용어도 일본어를 많이 사용했기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친일청산’을 외치지만 삶의 방식과 일상에는 일본식 문화와 일본어가 깊숙이 뿌리박혀 수십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여전히 그 잔재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사고방식이나 삶의 방식도 일본인들과 비슷한 것이 많은 상태로 남아 있다.
일제치하에서 일본은 한국 고유의 언어와 문화를 말살하려 했고, 한국인들을 일본인으로 아니 일본제국의 식민지 노예로 만드는 교육을 했었다.

간혹 ‘트로트’를 ‘전통가요’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트로트’는 전통가요가 아니라 일본 ‘엥까(演歌;연가)’에서 유래한 일본식 음악이다.
워낙 오래전(약 50~60년 전)부터 불러왔기 때문에 우리 전통음악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일 뿐인데, 예전에 불렀던 기억이 남아 있어서 일본어로 부르는 엥까를 그대로 부르는 노인들도 간혹 있다.
말로는 ‘친일청산’을 외치지만, 이미 뼈 속 깊숙이 일본에 친숙한 정서를 어쩌지는 못하는 것이다.
원하던 원하지 않던 간에 정서적으로 일본과 상당히 비슷해져 있는 것을 1차적인 원인으로 볼 수 있겠다.

그러나 그보다 더 주요한 원인은, 위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일본의 비즈니스 모델과 사회 시스템을 모방하는 것 때문에 일본과 유사한 사회적 흐름을 보이는 이유로 꼽고 싶다.
근처의 가까운 나라 중에서는 일본이 가장 문화나 경제적으로 앞서 있는 나라였기 때문에, 많은 젊은이들이 선진문물을 배우기 위해 일본에서 유학을 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는데, 최근에는 미국이나 유럽 등으로도 유학을 많이 가지만 예전에는 적은 비용으로 유학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선진국이 일본이기 때문에 일본으로 가는 유학생들이 가장 많았을 것이다.
굳이 유학을 가지 않더라도 가장 가까이 붙어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문화의 전파 속도가 가장 빠르다.
하라주쿠의 패션 스타일을 흉내 내어 새로운 패션 아이템이 유행하고, 일본에서 유행한 갖가지 물건이나 문화가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에서도 유행을 한다.
젊은이들이 가장 흔히 사용하는 ‘간지’라는 말은 일본어다.
‘간지(感じ, 칸지)’는 일본어로 ‘느낌’이라는 뜻이지만, 한국에서는 주로 ‘패션이나 느낌이 멋지다’는 의미에서 ‘멋’이라는 의미의 속어로 사용되고 있다.

유행이 옮겨 오는 것은 그것을 한국에 가져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은 일본의 만화와 건담 및 미소녀물 같은 상업성 짙은 오타쿠 문화, 애니메이션과 드라마, 일본 길거리 패션 등에 대한 정보와 거기에서 파생된 2차 콘텐츠를 열심히 퍼 나르며 마치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정체성을 찾으려 하거나 혹은 남들보다 앞서 가거나 소위 ‘간지’가 나는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고 주목을 받고 싶어 한다.
많은 사업가들은 가까운 일본에 가서 소위 ‘공부’를 하며 사업구상을 한다.
일본에서 유행한 물건을 한국에 들여와 팔거나 일본에서 성공한 사업아이템을 한국에서도 적용해 돈을 벌려고 한다.
일본에서 유행했던 ‘다마고찌’ 를 그대로 한국에 들여와서 나름 유행하기도 했다.
일본에서 이미 상품화 되어 상업적으로 성공한 ‘아이돌’을 이용한 비즈니스 및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을 모방하여 한국의 1세대 아이돌 가수들이 탄생했다.
10대 중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 가진 풋풋함을 무기로 성을 상품화하는 일본식 아이돌 문화를 거의 그대로 모방하고 있다.
일본에서 상업적으로 성공했던 상품을 수입해와 한국에서 팔면 여지없이 히트를 치기 때문에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어 왔다.
우연히 혹은 어떤 불가사의한 관계에 의해 비슷해지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일본의 문물과 시스템을 모방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일본에서 벌어진 일이 한국에서도 그대로 비슷하게 재현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70~80대 정치인들 중에서는 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사람도 꽤 있다.
정치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들 중에서도 한글은 쓸 줄 모르지만 일본말은 어려서 많이 사용해서 일본말은 제법 잘 아는 노인들이 있다.
그들의 유년기 시절에 한국문화를 말살하고 일본인화를 하려고 했던 일제치하 교육의 영향일수도 있고, 일부 친일 기득권층은 스스로 일본인이 되기 위해 한국의 것을 잊고 일본에 사대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가지면서 일본식으로 개조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직도 우리말에는 일본어의 잔재가 많이 남아 있다.
‘도시락’ 은 ‘벤또’, ‘젖가락’은 ‘와시바리(와시바루)’, ‘양파’는 ‘다마내기’, ‘이쑤시개’는 ‘요지’, ‘융통성’은 ‘유도리’ 등으로 일본어를 사용하고, 그 외에도 ‘노가다’, ‘시마이’, ‘이빠이’, ‘다라(다라이)’, ‘기스’, ‘나가리’, ‘다마’, ‘무대포’, ‘스끼다시’, ‘후까시’, ‘사라’, ‘뗑깡’ 등의 말들은 젊은 세대들도 상당히 많이 쓰고 있다.
그 외에 한자어 발음으로 보이지만 실은 일본식 한자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행정용어와 법 용어 및 일상용어에도 아직 상당히 많이 남아 있는데, 최근에 정부에서 법·행정·경제 용어에서 관례적으로 사용하고 있던 일본식 한자어를 쉬운 우리말로 개정을 하는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으나 아직도 우리 일상생활 속에는 일본어의 잔재는 여전히 많이 남아있다.

한류열풍으로 스스로 한국에 대한 자부심이 커지면서 알게 모르게 깔려 있던 일본사대주의의 잔재는 많이 없어졌을까?
그렇게 단정하기는 어렵다.
‘위안부 문제’ 와 ‘친일파’ 문제로 시끄러운 속에서도 ‘스스로 친일’하며 일본문화 사대주의 사고방식을 키워가고 있는 이들이 있고, 나이 많은 기존의 친일 기득권층은 오래전부터 일본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일본의 잔재를 없앤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최근에 불거진 ‘롯데는 일본 기업인가?’라는 문제제기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한국과 일본의 기득권 세력들은 정치와 경제면에서 서로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나 친일이요’ 했다가 대중들의 비난을 받은 가수 ‘조○남’씨는, ‘내가 말한 뜻은 그 뜻이 아니었다.’ 라고 항변하기도 했지만, 겉으로 대놓고 ‘일본이 좋다’라고 말하기가 껄끄럽기 때문에 조용히 일본문화 사대주의 의식을 키워가고 있는 이들이 꽤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 ‘이지메’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을 무렵, 일본의 유행이 얼마 지나 한국에서도 그대로 유행하는 흐름이 있지만 설마 한국에서도 이런 ‘이지메’ 같은 사회현상이 그대로 일어날까 하는 의심을 했었다.
한국인들은 정이 많고 누구를 놀리더라도 그렇게 악독한 짓을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예상과 달리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한국에서 ‘왕따’ 라는 용어가 생기더니, 이제는 사회 전반적인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어 버렸다.
일본의 ‘이지메’와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기존에 한국의 관습과 문화에서는 전혀 용납할 수 없을 수준의 폭력적인 형태의 사회현상이 여지없이 그대로 한국에서도 재현된 것이다.
어쩌면 어느 학교 어떤 청소년이 일본의 ‘이지메’를 그대로 흉내 내기 시작한 것에서 출발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학교에서 일본의 ‘이지메’를 흉내 낸 가혹행위가 벌어진 후 그것이 뉴스에 보도되었고, 이를 본 청소년들이 그런 행위를 따라하면서 한국의 ‘왕따’ 문화가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에서 어떤 여고생을 집에 가둬놓고 집단으로 가혹행위를 하고 결국에는 시멘트로 묻어 버린 ‘일본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이 1988~1989년에 일어났는데, 최근에 한국에서 이와 비슷한 사건이 일어날 뻔 한 뉴스를 들었다.
단순히 사건의 발생 시기로 비교하면 일본에서 사건이 일어난 후 약 25~30년 후에 한국에서 거의 비슷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최근에 제작되고 있는 청소년 대상 혹은 청소년이 주인공인 드라마나 영화에는 가학적인 일본식 ‘이지메’에 버금가는 한국식 ‘왕따’ 사건이 단골 소재로 등장한다.

한국에서는 십 수 년 전부터, 도시로 떠난 처녀들이 농촌으로 시집오기를 꺼려하면서 농촌의 노총각들이 결혼을 하지 못하자 외국의 신부를 데려와서 결혼하는 현상이 급속히 번져 나갔고, 이로 인해 외국 며느리들이 많아지면서 혼혈가정이 많아지자 이제는 ‘다문화’ 라는 표현을 아주 흔하게 듣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이미 오래전에 일본에서 일어났던 현상이다.
일본 역시 농촌의 총각들이 결혼을 하지 못하자 외국에서 신부를 데려와 결혼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자녀를 1~2명만 낳아 인구 노령화가 심각해지고, 인구가 도시로 집중되고, 인성교육이 무너지고, 집값은 비싸지고, 빈부격차가 점점 심해지는 등등 사회적인 흐름이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들도 상당히 비슷하다.
과거에는 일본이 한국보다 경제적으로 앞서 있었기 때문에 문화적으로 약 20~30년 정도 시간차가 났었지만, 최근에는 한국의 경제력이 급속히 올라가면서 시간적 차이가 점점 좁혀지고 있다.

일본에서는 1991년(어떤 자료에서는 1989년부터 라고 추정하기도 함) 부동산 폭락이 있었고, ‘잃어버린 20년’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관련내용 검색:
일본 부동산 폭락

약 24~25년 전에 일본에서 일어난 일이다.
부동산 거품이 빠지면서 교통과 상권이 좋은 곳을 제외한 곳의 부동산 가격이 반으로 떨어진 것이다.
한국에서 최근 ‘전세난민’이라는 말이 생길정도로 높아진 집값과 전세 값이 문제다.
월급 150만원을 버는 사람이 20년을 모아도 서울에서 집을 살 수 없는 것은 물론 ‘전세’ 조차도 구할 수 없는 이런 현상이 이미 일본에서 있었던 일이다.
일본에서 부동산 폭락이 있었던 것처럼 한국에서도 부동산 거품이 꺼지는 현상이 그대로 재현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현재로서는 특별한 해법이 없어 보이는데, 자산과 기득권을 가진 이들이 그들이 가진 기득권을 내려놓을 생각이 없어 보이기에 약 2~5년 안에 한국에서도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는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뉴스의 내용에 나왔듯이, 선진국인 일본도 현재 전체 근로자 10명 중 4명이 비정규직이라고 한다.
비정규직으로 3년을 일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한 법률이 있었는데, 조만간 이런 의무화를 폐기하는 법안이 통과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한국도 이런 법이 있는데 아마 일본의 그것을 그대로 모방한 모양이다.

정리하자면.
일본에서 일어났던 일이 한국에서 비슷하게 일어나는 현상은, 사회적인 구조나 사고방식에 유사점이 있기 때문인데, 그보다는 한국이 일본의 것을 그대로 모방해서 물건을 만들거나 혹은 문화현상도 그대로 모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때 일본 거리에서 유행하는 패션을 그대로 모방하는 일이 있었다.
일본에서 유행한 ‘혈액형별 성격유형 나누기’가 유독 한국에서만 크게 유행했는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혈액형별 성격을 믿고 있는 것처럼, 은연중에 따라하거나 비슷하게 유행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
정보와 문화의 교류가 가장 활발하고, 정서적으로도 유사점이 많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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