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프랑스 계몽주의, 파르망티에 - 무조건적 수용이 아닌 합리적 비판의식 Dictionary

미심쩍고 수상한 미지의 작물 - 감자, 프랑스 계몽주의, 파르망티에
프랑스 vs 벨기에 프렌치프라이 [French Fries]

-------------------------------------

우연히 교육방송을 보는데, 방송통신대 강의가 나오기에 보게 되었다.
18세기에 전파된 ‘감자’에 관한 이야기다.
방송의 말미에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 이영목 교수가 나와서 설명하는 내용이 있는데, 검색을 해보니 네이버캐스트에 거의 똑같은 내용으로 기술되어 있다.
네이버캐스트에 등록된 내용 역시 이영목 교수가 작성한 것이다.

옥수수는 기원전 9000년경부터 비교적 많은 지역에서 이미 경작이 되고 있었으나, 감자는 남아메리카 안데스 산맥의 고지대에서만 자라는 작물이었다고 한다.
이미 기원전 3000년경부터 잉카문명 지역에서 재배되고 있었으나, 유럽인들이 아메리카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접하게 된 작물이다.
당시 유럽인들이 접했던 작물들은 대체로 씨앗을 뿌려서 경작을 하는 작물이 대부분이었으나, 감자는 뿌리(사실은 ‘덩이줄기’)처럼 생긴 것을 잘라서 그냥 심으면 그것이 완전한 하나의 식물로 자라나고, 별 수고 없이 내버려두기만 해도 잘 자랐기 때문에 16세기 유럽인들에게는 굉장히 생소한 작물이었고 이로 인해 감자에 대한 많은 오해와 편견이 있었다고 한다.
너무 쉽게 재배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악마의 계략이 있을 것이라고 의심하기도 했는데, 감자 꽃이 당시 독성이 강한 ‘벨라도라’라는 꽃과 비슷하기도 해서 더욱 의심을 사게 되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울퉁불퉁한 외형과 검은색 껍질(상온에서 장시간 보관하면 색이 어두워짐)도 이상해서 나환자들의 피부를 연상시킨다며 재배를 금지시키기도 했다고 한다.
토마토나 고구마 같은 식물과 혼동하여 최음제라고 생각하기도 했다고 한다.
17~18세기의 아일랜드는 춥고 습해서 감자 재배에 적합했으나, 아일랜드의 대부분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던 영국인 지주들은 돈벌이가 되는 수출용 작물이나 가축을 길렀기 때문에 농민들은 끊임없는 기근과 병에 시달렸다고 한다.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감자는 널리 재배되기 시작했고, 많은 사람들이 배고픔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강원도는 땅이 척박하고 비탈이 만아서  감자나 옥수수 같은 비교적 재배하기 쉬운 작물을 많이 키웠다.
강원도 사람을 ‘감자바우’ 또는 ‘감재바우’ 등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사전적인 의미로는 감자를 많이 먹는 강원도 사람을 친근하게 부르는 말이라고 하지만, 촌사람을 뜻하는 비아냥의 의미로도 쓰인다.
‘감자’를 강원도 사투리로 ‘감재’ 라고 하고, ‘바우’는 ‘바위’의 사투리다.
왜 감자와 바위를 혼합하게 되었는지 명확히 알 수 없는데, 아마도 감자가 흔하고 땅이 척박하여 돌이 많기 때문에 감자와 돌이 많다고 해서 이렇게 혼합하지 않았을까.
제주도에 바람과 돌과 여자가 많다하여 ‘삼다도’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싶다.
아니면 ‘바위’를 투박하다는 의미로 해석한다면, 감자를 먹는 투박한 시골사람을 의미하는 뜻으로 볼 수도 있겠다.

각설하고.
방송의 말미에서 이영목 교수가 직접 등장하여 하는 말에도 나오고, 네이버캐스트에 게재된 글의 마지막에서 그대로 나오는 아래의 내용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중략--
이어서 당대의 유명한 학자들, 심지어는 베이컨마저도 키르허의 ‘권위’만을 믿고 이 허황된 이야기를 사실로 받아들여 전파하게 되고,
또 이 이야기는 이 학설을 지지하는 바로 그 유명한 사람들의 ‘권위’에 힘입어 점점 의심할 수 없는 진리로 굳어져 갔다는 것이다.
결국 디드로가 이 항목을 통해서 보여주려던 것은 아무리 권위자의 것일지라도 모든 말과 글, 심지어는 학술 서적과 백과사전의 항목조차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합리적인 비판의식을 통해 체로 치듯 걸러봐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직접 보았듯이, 책임편집자 디드로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백과사전]의 항목들도 오류와 편견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했다.
오늘날의 모든 지식 생산자와 보급자들, 그리고 소비자들도 항상 깊이 고민해 볼 일이다.
--끝--

‘백과사전’을 편집한 이들은 정말 많은 지식과 정보를 가진 사람들이었고, 똑똑한 사람들이었으며 사회적 권위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들 스스로 객관적이고 냉철함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였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작성한 ‘백과사전’에는 오류와 편견이 있었다.

예전에 다른 글에서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언급한 적이 있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사용하는 ‘교과서’, 그리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의 말.
예전에 학교 선생님들의 권위가 훨씬 높던 시절에는 선생님의 말씀이 가장 옳은 말이었다.
학부모들은 선생님은 존대했고, 학생들은 선생님을 스승님으로 모시며 존경하고 무서워했다.
그러나 ‘선생님’도 오류와 편견을 가지고 있고, ‘교과서’에도 많은 오류와 편견이 숨어있다.
책에서 쓰여 있는 말이 다 옳지 않다. 그리고 선생님의 말씀이 다 옳은 것도 아니다.
이것을 깨닫게 되는 것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나 역시 이것을 이해하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이후부터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바뀌게 되었다.

무조건적인 맹신은 사이비종교에 빠진 사람이 자신의 문제를 깨닫지 못하는 것과 다름없다.
군중심리나 집단최면에 빠져 무엇이 잘못되고 있는지 인지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아무리 권위 있는 사람의 말이나 책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항상 문제가 있지는 않은지 의심하여야 하고, 합리적으로 비판하는 자세를 잃지 않아야 한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통계 위젯 (화이트)

1721297
8119
10255317

google_myblogSearch_side

▷검색어

Flag Counter styl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