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보는 진지한 정통 사극이다.
요즘은 코미디와 현대극을 적절히 섞은 퓨전사극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이런 종류의 정통 사극도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현빈’을 비롯해 ‘한지민’과 ‘조정석’ 같은 젊은 배우들이 역사극의 주연으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에 젊은 세대들에게도 어느 정도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하겠다.
이야기의 짜임새가 좋고 배우들의 연기는 매우 좋았고, 궁궐의 모습과 의상 등도 훌륭했다.
궁궐의 모습도 예전에는 세트장에서 촬영을 했기 때문에 규모가 작고 어설픈 모습이었으나 최근에 제작되고 있는 사극에서는 실제 궁에서 촬영을 하고 있어 사실감이 있다.
중국의 대작 사극 영화에서 나오는 궁궐의 엄청난 규모가 부러울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한국에서 제작되고 있는 사극에서도 사실감 있고 큰 규모의 궁궐 모습을 볼 수 있어 뿌듯하기도 하다.
최근에 개봉한 사극 영화들을 보면 오락성과 작품성 사이에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작품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 ‘역린’은 어설픈 코미디를 배제하고 배우들의 진지한 연기를 통해 관객들을 이야기에 몰입하게 한다.
이 영화에 대한 평가가 갈라지고 있으나 개인적으로는 매우 잘 만들어진 작품으로 여겨진다.
특히 배우들의 연기가 상당히 좋은데, 일각에서는 명성 있는 배우들에게 지분을 할당하느라 산만하다는 의견도 있으나, 개인적으로는 이 정도면 꽤 훌륭하다고 말하고 싶다.
다른 영화 같았으면 조연들의 연기가 그냥 지나가는 화면 정도로 묻힐 것 같은데, 묘하게도 이 영화에서는 모든 배우들이 마치 ‘신 스틸러(scene stealer)’가 된 것 같다.
각 인물들이 저마다의 색깔과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데, 잘못하면 중구난방 복잡하게만 느껴질 수 있었지만 오묘하게도 각 장면과 이야기들이 그 나름대로 인상적이었고 제법 잘 섞였다.
다만, 여러 인물의 이야기를 섞다 보니 영화 중심으로 흐르는 가장 중요한 이야기가 무엇인지 애매하고, 절정을 향해 달려가다가 긴장감이 해소되는 방식의 강렬함이 없이 다소 산만하다.
어릴 때 유괴된 아이들이 있다.
그 중에서 ‘갑수와 을수(번호로 불렸지만 둘이 서로 이름을 지어 부름)’ 는 친하게 지내는데, ‘갑수’는 정조 곁을 지키는 환관이 되고, ‘을수’는 정조를 암살하려는 살수가 된다.
결국 정조를 암살하려는 사건에서 ‘갑수’ 와 ‘을수’가 비극적인 재회를 하게 되는 이야기는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가장 인상적인 ‘비극’으로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지만 그 무게감이 약했다.
‘을수’가 ‘정조’와 동시에 칼을 겨누는 장면 등 다소 작위적이고 신파적인 느낌이 들어서 전형적이고 식상하게 보였다.
너무 여러 이야기를 하기 보다는, 극의 가운데를 흐르는 핵심적인 스토리에 더 무게를 두고, 주변의 이야기를 가볍게 양념처럼 넣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영화의 완성도는 매우 좋은 편이지만, 이야기가 다소 산만하고 주요 이야기의 강렬함을 살리지 못한 것이 아쉽다.
사극을 보면서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다시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기존의 역사에 대한 글들은 내용이 복잡해서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는데, 이렇게 사극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좀 더 쉽게 이해가 된다.
그러나 이런 상업 콘텐츠들은 재미를 위해 이야기를 왜곡하게 되기 때문에, 쉽게 이해가 되는 장점과 더불어 관객에게 잘못된 역사지식을 전달하는 치명적인 결함도 가지고 있다.
간혹 아이들에게 ‘○○왕 이 어떤 사람이냐?’ 라고 물으면 배우이름을 대는 경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역사교육을 하고 쉽게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다큐멘터리와 시청각 자료들이 제작될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
서양에 ‘햄릿’이 있다면, 우리나라 사극에는 ‘사도세자’ 이야기와 같은 비극적인 역사 이야기가 있다.
그 외에도 ‘연산군’, ‘흥선대원군’, ‘장희빈’ 같은 이야기가 많이 리메이크 되는 이야기라 하겠다.
영화 리뷰를 쓰기 전에 이 영화의 배경 이야기와 등장인물들에 대해 알기 위해 자료를 찾아봤다.
각각의 이야기들에 대해서 조금씩 알기는 하지만, 각 인물 간에 얽힌 이야기와 역사적인 배경 및 순서를 분석하다보면 정말 복잡하고 헷갈린다.
아래에 링크한 글들을 순서대로 잘 읽어보면, 이 영화의 배경과 각 인물들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영화상에서 정조(현빈)가 할머니라 부르는 정순왕후(한지민)가 상당히 어리다.
그 이유는 정조의 할아버지인 ‘영조’가 부인인 ‘정성왕후’가 죽자 1759년(영조 35년)에 당시 15세였던 ‘정순왕후’를 왕비로 맞아들였기 때문이다.
‘영조’와 ‘정순왕후’의 나이 차이는 51세였다.
영조의 둘째 아들인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가 ‘정순왕후’ 보다 10세 연상이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극중에서 ‘현빈’보다 더 어려보이는 ‘한지민’이 등장하는 것도 역사적 사실과 대체로 비슷하게 재현한 셈이다.
그런데, 자료를 검색하다보니 뭔가 이상한 점이 있다.
예전에 드라마 ‘선덕여왕(2009)’에서도 ‘고현정’이 연기한 ‘미실’이라는 인물의 나이와 다른 인물들 간의 연대가 맞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 찾아 본 적이 있는데, 이 영화에서도 ‘한지민’이 연기한 ‘정순왕후’가 극중에서 활동하는 시기가 잘 맞지 않는다.
이 영화의 역사적 배경은 1777년 5월로 ‘정조 1년’이 배경이다.
정조는 영조 말년인 1775년부터 대리청정(왕의 업무를 대신) 하다가 다음 해에 영조가 승하(죽음)하면서 25세의 나이에 왕위에 오른다.
대략 1777년에 정조의 나이가 26세라고 가정하면, 정순왕후가 정조보다 10세 연하였다고 하니 당시 정순왕후의 나이가 15세다.
‘선덕여왕’에서 실제로는 할머니였거나 동시대 인물이 아니었을 ‘미실’이 등장하는 것처럼, 이 영화에 등장한 ‘정순왕후’ 캐릭터는 인위적으로 나이가 많아진 캐릭터인 셈이다.
물론, 일찍 성인식을 치르고 결혼도 일찍 하던 당시 풍습으로 봐서, 15세인 ‘정순왕후’가 이 영화에서처럼 정치에 직접 개입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이 영화에 등장한 ‘한지민’ 보다는 훨씬 어린 나이였다는 것이다.
게다가 극중에서 ‘한지민’은 곰방대로 담배도 피운다.
영화적 재미를 위해 ‘정순왕후’ 캐릭터가 꾸며졌다고 볼 수 있다.
그 외에 허구로 만들어진 ‘갑수(정재영)’ 와 ‘을수(조정석)’, ‘광백(조재현)’, ‘강월혜(정은채)’ 같은 캐릭터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풀어내며 이야기를 풍성하게 하고 있지만, 재미를 위해 무리하게 이야기를 꾸며낸 캐릭터들의 비중이 다소 과한 느낌.
조재현, 정재영, 조정석의 연기가 일품이다.
조재현과 정재영은 흠잡을 것 없이 멋진 연기를 보여주었다.
다소 코믹한 연기로 인기를 얻은 조정석이 웃음기를 빼고 매우 진지한 연기를 선보이는데, 연기가 훌륭했으며 무게감도 있었지만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다소 과하게 포장된 캐릭터여서 약간 이질감이 있다.
꽤 잘 만들었지만, 보다 역사적 고증에 충실하고 허구의 이야기는 최소화하면서 재미를 끌어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아 아쉽다.
오락영화로는 다소 무리가 있고, 진지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꽤 괜찮은 작품이 될 수 있다.
크게 지루하지 않지만, 진지한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감상하기에는 약한 힘들지도 모르겠다.
P.S.
영화와는 다른 이야기를 해본다.
‘영조’ 와 ‘정조’ 시대는 조선시대의 중흥기다.
그러나 영조의 이전 시대에 ‘장희빈’ 사건이 있었고, 영조 시대에는 ‘사도세자’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들의 배경에 있는 ‘노론과 소론’ 등 기득권층의 권력다툼을 이해해야 한다.
이 영화의 배경은 1777년이다.
비슷한 시기엔 18세기 영국에서는 산업혁명이 일어나 급속한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조선시대에서는 기득권층이 끊임없는 권력암투가 일어나서 결국 세계정세 속에서는 뒤처지게 되어 훗날 서구 열강과 주변국들의 침략에 무너지고 만다.
중요한 시기에 준비를 하지 못하고 기득권 다툼만 벌이다가 결국 나라의 주권을 빼앗기게 된 것이다.
지금 현재의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주변국들은 에너지 및 자원전쟁을 시작했고, 문화전쟁도 암암리에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마치 조선시대 후기의 당파싸움을 하던 그 모습처럼, 지금의 정치권과 경제계는 오직 자신들의 이득만을 챙기기 위해 이 나라를 파국으로 몰아가고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 역사를 통해 배우지 못하고 잘못을 반복하면 이 나라의 미래는 없다.
관련자료들:
영조 [英祖, 1694 ~ 1776]
노론·소론 [老論少論]
탕평론의 대두
남인 - 위키백과
사도세자 [思悼世子, 1735 ~ 1762]
장조 [莊祖, 1735 ~ 1762] = 사도세자
정조 [正祖, 1752 ~ 1800]
순조 [純祖, 1790 ~ 1834]
문조 [文祖, 1809 ~ 1830]
정순왕후 [貞純王后, 1745 ~ 1805]
혜경궁 홍씨 [惠慶宮 洪氏, 1735 ~ 1815]
한중록 [閑中錄]
조선 왕조 계보
조선의 왕
산업혁명 [産業革命, the Industrial Revolution]
햄릿 [Hamlet]
양녕대군 [讓寧大君, 1394 ~ 1462.9.7]
경종 [景宗, 1688 ~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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