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급속한 발전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Essay

한국이 급속한 발전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국민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강의 기적’, ‘새마을 운동’.
한국의 급속한 경제발전을 대표하는 말이다.
지독하리만치 엄청난 ‘교육열’ 또한 장기적인 측면에서 경제발전에 큰 이바지를 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인을 대표하는 단어는 ‘빨리빨리’다.
그러나 한국인(조선인)들은 원래 그리 성격이 급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느긋하고 시간개념도 그다지 없었던 조선인들.
‘시계’ 따위가 평민들에게 보급되어 있지도 않았고, 전기불도 없어서 날이 밝고 닭이 울면 일어나 일을 시작하고, 해가 져서 온 천지가 캄캄해진 밤에는 호롱불 밑에서 잠깐 일을 보다가 일찍 잠을 잤다.
그런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시간개념이 없다고 비난하기는 어렵다.

일본제국주의 침략으로 식민지 치하에서 엄청난 착취를 견뎌내야 했고, 일본인화 하기 위한 문화말살정책으로 학교에 가면 일본말만 써야했다.
일본식 이름으로 창씨개명을 하고, 돈 좀 있다는 집의 자녀들은 일본으로 유학을 다녀와 소위 ‘지식인’이라며 어깨에 힘을 주고 다녔다.
본의 아니게 서양식 신문물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독립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일본의 잔당을 몰아내기 위해 소련이 이북지역을 임시 점령하고, 이남지역은 미국이 임시 점령을 한다.
정권을 잡으려는 정치인들의 다툼 속에 이북지역을 정치적으로 통일하고 정권을 잡은 김일성(김성주)이 소련과 중국공산당의 지원 아래 남침을 한다.
6·25 전쟁의 발발로 수백만의 군인과 국민이 목숨을 잃는다.
전쟁이 일어난 이후에는 의례 그렇듯이 베이비붐 시대가 온다.
전쟁으로 황폐화된 국토에서 미국의 구호물자로 연명하다가 ‘베트남전쟁 참전’, ‘독일 파견간호사’, ‘중동지역 건설 붐’ 등으로 외화를 많이 벌어들여 발전의 기틀을 마련한다.
이 시대를 이끈 이들이 베이비붐 세대다.
가난 속에서 어떻게든 견뎌내야 했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이 기간에 ‘새마을 운동’이 진행되었다.
아기를 많이 낳으면 모두가 가난해진다며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표어를 내걸었고, 정관수술을 장려했다.
뜨거운 교육열로 어떻게든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내려 했고, 수많은 대학이 생겨났고, 주입식 교육에 ‘먹고대학생’이 양산되었다.
교육의 질은 그렇다 치고, 표면적으로는 문맹률이 떨어지고 똑똑한 인재들이 많이 생겨났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은 있다.

다시 본 주제로 돌아가서.
이러한 과정 속에서 한국은 어떻게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루었을까?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배우러 오는 다른 가난한 나라들은 왜 한국처럼 발전을 하지 못했을까?
표면적으로는 그들이 게으르고, 정권이 부패했고, 문맹률이 높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지만, 다른 측면에서 생각을 해보았다.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한국이 산업화를 하고 거대 인프라 사업을 벌여 소득을 분배하면서 경제 효율을 높이고, 여러 가지 정책들을 추진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목적을 위해 힘을 합치고 개인 보다는 국가를 위해 희생한 노력들이 있다.
즉, ‘개인주의’ 가 아니라 ‘집단주의’ 성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함께 하는 일이 많다.
‘두레’, ‘품앗이’ 등을 비롯해 놀이 문화에서도 함께 어울려 하는 것이 많고, 개인주의 성향이 많아진 현대에도 여전히 사회적 결속을 중요시 하고 공동체에서 벗어나는 행위를 싫어한다.
커플옷, 팀복을 입기를 좋아하는 등 공동체에 소속되는 소속감을 중요시 하고, 누군가 다른 행동을 하면 싫어한다.
공공의 목적을 위해 개인이 영리를 추구하는 것 보다는 개인이 희생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문화가 있고, 이런 성향은 어떤 공동의 목적을 이루려 할 때 큰 시너지를 일으킨다.
여타 국가들과 한국의 차이점은 이런 성향이 그들에게는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고, 힘을 가지게 된 일부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착취해서 전체의 발전을 저해한다.
아프리카와 여타 후진국들은 끊임없이 권력을 다툼이 벌어지고, 권력을 잡은 일부 소수는 왕처럼 부를 누리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가난의 굴레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들에게 물자 지원을 하는 것 보다, 먼저 교육을 시켜 의식이 깨어나게 하는 것이 좋고, 그보다도 ‘개인주의’ 보다 공공의 목적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질 수 있도록 사상운동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필요한 사람은 정치인이 아니라 사상가다.

한국은 여러 요건들이 잘 맞아떨어져 급속한 산업화와 경제발전을 이루었다.
그런데 그간의 경제발전은 이런 집단주의적 성향을 이용한 착취가 만연했다고 볼 수 있다.
구성원들에게 희생을 강요하여 발전을 이루었지만, 그 열매를 제대로 나누지는 않는 것이 바로 ‘착취’다.
경제발전을 이룬 베이비붐 세대는 노년이 되었고, 복지사회의 꿈을 꾸며 혜택을 누리려 했지만, 한국은 여전히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들이 꿈을 꾼 ‘복지’는 그들의 노년을 부양하기에도 벅차다.
치열한 경쟁에 내몰린 베이비붐세대의 자녀들.
한 가구에 한 명, 두 명의 자녀를 낳았으니 인구수는 제자리에 머물렀고, 그들이 부양해야 하는 노인 인구는 너무 많다.
‘착취’의 단물에 빠져 있는 열악한 산업구조는 여전히 88만원 세대를 요구하고 있고, 의식수준은 너무 높이 올라가 있다.
공동체 생활의 경험이 적은 아이들은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해졌고, 공동의 목적은 희미해졌으며, 거짓말과 착취를 참을 만큼 바보스럽지도 않고, 억압을 견딜 만큼 강인하지도 않다.
부모세대가 만들어 놓은 시스템에 어쩔 수 없이 끌려가고 있는 형국이다.
‘선진국처럼 잘 살아 보자’는 욕심에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루기는 했으나, 계획성과 조심성이 부족했기 때문에 ‘부정부패’와 ‘안전불감증’을 키웠다.
산업구조는 여전히 ‘착취의 시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그 탓을 젊은 세대에게 돌린다.
실은 시스템을 만든 세대의 잘못인데도 말이다.

시스템이 잘못 설계되어 있으면, 시스템을 부수고 새로 설계하고 만들어야 한다.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수술을 해야 하는데, 당장의 고통을 줄이겠다며 안정제만 주사한다고 해서 병이 낫는 것이 아니다.
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해 국고를 축내고 나라를 팔고 있다.
지금은 ‘철학가’, ‘사상가’가 필요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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