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지탱하는 힘. Essay

‘사회’는 ‘이기적인 개인’의 집합체다.
이기심은 사회의 불안요소다.
따라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서로의 이기심을 조절하고, 되도록 다수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관습과 도덕 및 법을 만들어 서로간의 관계를 조율한다.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타심’이 필요하다.
내 이기심만을 충족하려 하면 타인의 이기심과 충돌하여 소란이 발생하고 사회가 붕괴되는 것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사회의 구성원들은 타인을 이해하고 양보하며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이타심을 중요한 덕목으로 교육한다.

‘사회’의 규모가 작을 때는 구성원의 의견을 조율하는 것이 비교적 쉽다.
구성원의 숫자가 적기 때문에, 지도자의 의견이 잘 전달되고 구성원 간의 의사소통이 비교적 원활하다.
그러나 사회의 규모가 커질수록 조율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어느 한 사회가 관계를 잘 조율하는 시스템을 어렵게 갖췄다 하더라도, 이번에는 주변의 다른 사회와 충돌이 발생하게 된다.
작은 마을이 제법 잘 제어되고 있다 하더라도, 옆 마을의 이익과 상충하여 충돌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국가’처럼 큰 규모의 사회가 되면 ‘조율’은 더욱 어려워진다.

구성원의 숫자가 많아질수록 의견이 다양해지고, 구성원들의 주장이 강할수록 의견을 모으는 것이 힘들어진다.
때문에, 구성원 간의 의사소통에 드는 시간과 비용이 크게 증가하고, 다수의 의견을 조율하기 위한 모임과 그들의 의견을 조율할 지도자를 뽑는 것에도 많은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게 된다.
사회의 규모가 커지면 구성원의 의견을 모으는 행위가 복잡하고 피곤해질 뿐만 아니라 이 과정에서 개인의 희생이 요구되기 때문에, 자신의 의견이 잘 전달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개인들이 불만이 생기게 되고, 영향력이 별로 없는 목소리를 내느니 자신의 생업에 집중하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이런 의사결정 행위에 무관심해지기 시작한다.
다수의 의견을 대변하는 지도자를 뽑기가 어려워지고, 구성원 다수의 의견이 잘 전달되지도 않게 되는 것이다.
결국, 구성원들의 의견을 대변하지 못하는 지도자가 뽑히게 되고, 많은 구성원들이 이런 의사결정 행위에 동참하지 않게 된다.

사회의 규모가 커지면 구성원 간의 충분한 의사소통이 힘들어지기 때문에, 의견을 대변할 대리자를 뽑게 된다.
이때부터는 의사결정과 행동 과정이 ‘조율’ 보다는 ‘통제’ 라는 형태로 변질될 수도 있다.
구성원들이 시간적·물리적으로 서로의 의견을 충분히 교환할 기회를 만들 수 없기 때문에, 구성원들이 뽑은 지도자들이 모여 사회 전체를 통제하는 방식으로 변형된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통제’는 ‘조율’과 달라서, 각 개인에게 있어서는 ‘상호간 소통’이 아니라 ‘일방적 제어’에 가깝고, 이런 결정 방식 때문에 ‘자유를 제한 받는다’ 는 느낌을 받거나 ‘이익이 침해 당한다’라고 느끼게 된다.
사회 전체를 조율하기 위해 세운 대리자가 개인을 통제하는 형태로 바뀌면, 그것이 ‘독재’이고, 개인과 대리자가 ‘대결구도’가 되어 버릴 수도 있다.
그러면, 통제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혼란에 빠질 수 있다.
다수의 개인들이 의견 통합 과정에서 배제되거나 불만을 가져 무관심해지면, 사회는 소수 이익집단이 의사결정 행위를 독점하여 그들의 이익을 위해 의사결정을 왜곡할 수 있다.

‘무한경쟁’이 사회에 도움이 될까?
‘무한경쟁’이란, 모든 사회·경제적 활동에 ‘경쟁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다.
‘작은 사회’ 가 ‘큰 사회’로 커지면서 사회 간의 경쟁이 심화된다.
내가 속한 사회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회와 경쟁하고, 다른 국가와 경쟁을 한다.
사회의 규모가 커지면 사회 간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 신뢰하지 못해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강해진다.
상대를 이겨야 하는 ‘경쟁’을 통해 더욱 빠르게 더 많은 좋은 것들이 만들어지겠지만, 결국 그 모든 행위는 이기심을 충족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경쟁’ 방식은 상대방을 단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싸우는 대결 상대로 규정하기 때문에, 상대를 배려하거나 이해하려는 노력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무한경쟁’으로 내몰린 개인들은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여 추구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고, 탐욕적으로 길들여진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도 점점 둔감해지게 되고, 그저 ‘생존’을 위한 것이라며 자기합리화를 하게 된다.
‘생존’을 핑계로 자기의 탐욕을 채우는 행위는 동물의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적자생존’이라는 법칙과 다름없다.
인간이 인간인 것은, ‘동물 세계의 법칙’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이타심’과 ‘신념’을 추구하는 것에 있다.
본능적 탐욕과 이기심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비합리적이고 비논리적인 감성적 행위를 통해, 내가 아니라 남을 위해 희생하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신념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것.
그것을 제외하면, 인간이 여느 동물과 다를 바가 무엇이 있겠는가.

‘무한경쟁’ 방식은 단기적으로 봤을 때는 사회가 급속한 발전을 이루는 것 같아 보이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개인’ 혹은 ‘작은 사회(이익 집단)’의 ‘이기심’을 더욱 부추기기 때문에 의견대립이 심화되어 서로를 더욱 신뢰할 수 없게 만든다.
구성원들의 불만이 증가하고 신뢰가 하락하면 사회는 더욱 불안해질 수밖에 없고, 의견 조율과 신뢰 회복을 위해 더욱 큰 비용이 지출되는 등의 악순환으로 사회 전체의 고통이 더욱 증가한다.
끝없는 경쟁의 끝은 동반 파멸을 불러올 뿐이다.

우리는 ‘경쟁’이 아니라 ‘이해’와 ‘배려’를 배워야 한다.
‘이기심’이 아니라 ‘이타심’을 가르쳐야 한다.
내가 먼저 양보하였으나 타인이 양보를 하지 않아 손해를 볼까봐 믿지 못하겠더라도, 누군가는 의심의 고리를 끊고 희생을 해야 사회가 변할 수 있다.
‘신뢰’는 상대에게 바랄 것이 아니라 나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키우는 교육을 할 때, 사회는 안정되고 고통을 최소화 할 수 있다.
‘사회’를 지탱하는 힘은 ‘경쟁’이 아니라 ‘이타심’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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