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9.29) 풍경 - 민들레 홀씨, 탱자나무 가시 등 Photo_Essay

같은 것을 보는 다른 시각.
최근에 갑자기 사진을 많이 찍고 있지만, 실상 거의 같은 장소를 다니며 비슷한 것들을 찍고 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일부러 어디를 찾아갈 생각은 없고, 그저 활동 반경에서 우연히 찍고 싶은 것들을 찍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매번 찍는 비슷한 것들을 다시 다른 시각에서 찍는 경우가 많다.
같은 장소를 지나가며 또 만나게 되는 같은 것들.
같은 풍경, 같은 사물들이지만, 눈으로 보듯이 그 모든 순간을 담을 수는 없다.
사진은 그저 찍는 그 찰나의 순간이 남을 뿐이다.
어제 찍었던 것을 다음 날 또 찍는다 해도 그것은 변해 있다.
시간이 흐르고, 모든 것은 매 순간 다르다.
그렇게 변해가는 모습을 통해, 시간이 멈추어 있지 않고 끊임없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저 시간이 흘러가고 있는 것을 바라보고 있을 뿐.
나의 모습을 계속 유심히 관찰하지 않는다면, 늙어간다는 것도 시간이 흘러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것도 눈치 채지 못할 것만 같다.

신호등이 돌아가 있었다.
동네 경찰관과 웬 아저씨가 갑자기 말을 걸어왔다.
신호등이 언제부터 돌아가 있었냐는 것이다.
내가 신호등의 역사에 대해 알 것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아무튼 나는 얼마 전부터 신호등이 돌아가 있었노라고 대답을 했다.
그리고 2일 쯤 지나 신호등이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신호등이 돌아가 있었다.
동네 경찰관과 웬 아저씨가 갑자기 말을 걸어왔다.
신호등이 언제부터 돌아가 있었냐는 것이다.
내가 신호등의 역사에 대해 알 것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아무튼 나는 얼마 전부터 신호등이 돌아가 있었노라고 대답을 했다.
그리고 2일 쯤 지나 신호등이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매번 지나치던 한 카페의 LED 등을 찍어야겠다고 벼르다가 찍었다.
민달팽이가 죽었는지 밝은 색의 배를 드러낸 채 약간 물에 불은 듯 부풀어 있다.
Y자로 갈라진 가지에 빗물이 젖은 모습이 마치 한 여름의 겨드랑이를 연상시켰다.
가시나무의 정체는 탱자나무였다.
좁쌀 같은 몽우리가 끝에 달린 잡초의 이름을 모르겠다.
CCTV가 있기는 한데, 한쪽 방향만을 보고 있고, 그 주변에 있는 전력을 공급하는 것으로 보이는 주변 장치에는 태양전지패널이 없다.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는 경고문구 주변에는 여지없이 쓰레기가 있다.
물웅덩이에 빗방울이 떨어져 크라운 모양이 생기는 순간을 포착하고 싶은데 쉽지 않다.
물웅덩이에 힘차게 떨어지는 빗방울을 찍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물웅덩이가 꽤 깊어야 하고, 빗방울이 소나기처럼 많이 떨어지고 있어야 하고, 플래시를 터트려야 한다.

가시나무는 사람들에게는 참 불편한 것이다.
방범용으로 담벼락에나 키울 가시나무지만, ‘가시 면류관’ 같은 단어가 연상이 된다.
그저 ‘가시’가 있는 나무였을 수 있는 그것이, 정치·종교·사상적 이미지와 연결되어 새로운 생각을 떠올린 것이다.
그것 때문에 ‘숭고한 희생’ 같은 관용어구로 연결되는 조건반응이 일어난다.
교육과 경험에 의해 사람들은 같은 사물을 보고도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것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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