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셀 크로우, 제니퍼 코넬리, 엠마 왓슨, 안소니 홉킨스 등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배우들에 얼굴만 봐도 보고 싶어지는 영화.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지만, ‘엠마 왓슨’이 본격적으로 성인 연기를 시작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기도 했다.
90년 대 주목받는 여배우 중 한 명이었던 ‘제니퍼 코넬리’는 더욱 살이 빠져서 보기 안쓰러울 정도지만 연기만큼은 러셀 크로우나 안소니 홉킨스에 뒤지지 않았다.
엄청나게 장수했다고 소문이 난 노아의 할아버지 ‘므두셀라’를 연기한 안소니 홉킨스는 별다른 표정을 짓지 않아도 무표정한 그 모습만으로도 연기 내공이 물씬 풍겼고, 다른 주요 배우들의 연기도 매우 훌륭했다.
특히, 러셀 크로우의 감정 연기가 아주 좋았는데, 한동안 다소 이상한 작품에 출연하며 본연의 컬러를 찾지 못했으나 이 영화의 ‘노아’에는 매우 잘 어울렸다.
인간의 왕 ‘두발 가인’을 연기한 ‘레이 윈스턴’은 국내에서는 그다지 얼굴이 알려진 배우는 아닌데, 연기내공이 안소니 홉킨스 정도는 되어 보인다.
다만, 배우들의 연기가 훌륭하기는 했으나 마치 연극배우들이 연극 공연을 하는 것 같이 과하게 진지하고 자연스럽지 않았다.
각 인물들 간의 갈등상황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신파 연극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강했다.
노아의 큰 아들 ‘샘’ 역을 연기한 ‘더글러스 부스’는 너무 기생오라비처럼 나왔고, 둘째 아들 ‘함’ 역을 연기한 ‘로건 레먼’은 영화 초반에는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후반부로 가면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치고 있는데, 외모가 상당히 낯익어서 기억을 더듬어 보니 ‘크리스찬 슬레이터’의 젊은 시절을 떠올릴 만큼 꽤 닮았다.
앞으로 헐리웃의 주연급 배우로 성장할 수 있을 것 같다.
이하 스포일러 포함------------------
관심 있는 사람들은 대충 다 아는 얘기, 신화인지 설화인지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알 수 없는 고대의 이야기인 성경 속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소재로 몇 가지 픽션을 가미해서 만든 영화다.
성경에 등장하는 유대인 혈통의 ‘노아’ 라는 사람이 거대한 방주(배)를 만들어 세상의 모든 동물을 한 쌍씩 불러들여 배에 태우고 종자를 보관한다.
하나님이 타락한 인간들을 청소하기 위해 엄청난 비를 내리자, 세상 모든 것이 물속에 수장되어 죽는다.
오직 노아가 만든 방주에 탑승한 동물들만이 살아남고, 비가 그치고 물이 빠지자 방주에서 내려 인류 문명이 새롭게 시작되었다는 이야기.
이 설화 그대로라면 현생 인류는 모두 노아의 자손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서 따진다면 모두 유대인인 셈이다.
구약성서는 유대인의 역사서이고, 유대교는 유대인의 ‘민족신앙’이다.
‘민족신앙’은 세상이 자기 민족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사상이다.
미국은 기독교 국가이기 때문에 이런 성경 속 이야기를 소재로 영화를 만든다.
‘노아의 방주’ 이야기에 대해 깊게 이해하고 있지는 않지만 대략적인 내용은 알고 있는데, 그 이야기 자체가 비교적 단순하기 때문인지 영화적 재미를 위해 많은 요소들이 첨가 되었고 다소 억지스러운 설정들이 추가 되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돌 괴물’은 원래 천사였다는 설정이다.
영화상 설명에 따르면, 태초에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할 때 두 번째 날에 만들었다고 한다.
원래는 빛의 형태였는데,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자 그들을 가엾이 여겨 인간을 돕기 위해 지구에 내려온다.
그래서 ‘타락천사’라고 하는 것 같은데, 아무튼 지구에 내려온 대가로 온 몸이 진흙과 돌로 뒤덮인 돌 괴물의 모습이 된다.
타락천사들은 인간에게 지식을 전수해 주는데, 영악해진 인간들은 점점 강해져 폭력적으로 변하게 된다.
카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고 쫓겨나자, 셋째인 세스(셋;seth)가 남아 창조물을 지킨다.
여기서 창조물을 지킨다는 뜻은 영화 내용상 동식물을 지킨다는 뜻인 것 같은데, 카인이 육식을 하는 것을 놀라워하는 ‘함’의 모습에서 유추해보면 세스의 후손들은 육식을 하지 않고 동물들을 지킨다는 뜻인 것 같다.
세상이 온통 물에 잠기는 환상을 본 노아는 그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할아버지 므두셀라를 찾아간다.
그곳에서 다시 배의 환상을 본 노아는, 세상에 엄청난 비가 내려 모두 죽게 될 것이며 배를 만들어 모든 창조물들을 암수 한 쌍씩 배에 태워 살리는 것이 신의 계시라고 생각한다.
노아 혼자서 그 거대한 방주를 어떻게 만들었을까?
사실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겠지만, 이 설화를 따지고 보면 그런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질문에 대답이라도 하듯, 유일하게 신의 창조물을 수호한 ‘세스’ 혈통의 자손인 노아에게 협조하기로 한 돌 괴물(타락천사)들이 방주 건설에 투입된다.
수많은 새들이 제일 먼저 방주로 알아서 날아든다.
그리고 갖가지 동물들이 제 발로 걸어서 방주로 찾아든다.
새들의 움직임을 수상하게 여긴 인간의 왕 두발 가인(레이 윈스턴)이 찾아와 전쟁을 선포하고,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방주를 빼앗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공격을 해온다.
므두셀라에게 가던 도중 구조한 일라(엠마 왓슨)는 첫째 아들 ‘샘’의 짝이 되지만 불임이다.
둘째 아들 ‘함’은 모든 동물들에게 짝이 있는데 자기에게는 왜 짝이 없느냐며 아버지에게 따지고, 노아는 마을에 내려가 함의 짝을 찾으려 하지만 실패한다.
그보다는 신이 타락한 인간을 벌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가족까지 포함하여 모든 인간이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노아.
직접 짝을 찾아 나선 함은 시체를 버린 구덩이에서 여자 아이를 만나고, 본격적으로 비가 오기 시작하자 방주를 향해 뛰는데 여자 아이가 덫에 걸린다.
함을 찾아 나선 노아를 만나지만, 노아는 함만 구하고 여자 아이는 버리고 도망간다.
방주를 차지하려는 인간들의 공격을 막아내는 돌 괴물들.
모든 돌 괴물은 파괴되고, 인간의 왕 ‘두발 가인’은 방주에 몰래 탑승하지만 다른 인간들은 입구를 지키는 노아에게 죽임을 당하고, 결국 방주에 타지 못한 모든 인간들은 수장된다.
방주에 탑승하기 전에 므두셀라를 잠깐 만난 일라는 므두셀라의 능력으로 임신을 할 수 있게 된다.
임신한 아이가 여자 아이면 죽여 버리겠다는 노아의 엄포에 노아의 부인 나메(제니퍼 코넬리)는 완강히 반대하고, 결국 샘과 일라는 일주일치 식량을 실고 뗏목을 타고 떠나려 하지만 노아가 뗏목에 불을 질러 계획이 실패한다.
바로 그 시각, 출산을 시작하는 일라.
동시다발적으로 방주에 숨어 지내던 ‘두발 가인’은 함을 꼬드겨 노아를 죽이려고 하는데, 함은 결국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두발 가인’을 찔러 죽인다.
일라는 두 명의 여자 아이를 낳게 되고, 어쩔 수 없이 노아가 아이들을 죽이도록 허락하지만 결국 노아는 간난아이들을 죽이지 못한다.
때마침 날아온 비둘기는 물고 온 감람나무 잎사귀를 발견한다.
드디어 물이 빠지고, 노아는 죄책감에 포도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데, 일라는 홀로 떠나고 가족들의 용서를 받은 노아는 아이들을 축복하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신의 계시가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로 그저 추측을 하며, 모든 인간을 방주에 태워주지 않고 수장 시키고 간난아이들 마저 죽이려 했던 노아.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과 신의 계시를 따라야 한다는 의무감 사이에서의 인간적 고뇌를 많이 다루고 있다.
픽션으로 가미된 주요 이야기는 ‘돌 괴물’이 노아를 돕는 다는 것과 노아가 인간이 모두 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 함이 ‘두발 가인’의 꼬임에 넘어가 아버지 노아를 죽이려는 생각을 한다는 것과 일라 및 므두셀라의 등장 등등이다.
이야기에 긴장감을 주고 스토리를 만들어 내기 위해 여러 가지 허구적 요소들이 추가 되었는데, 이 때문에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알고 있는 기독교인도 다소 허무맹랑한 영화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돌 괴물’ 캐릭터가 다소 생뚱맞고 낯이 익다.
이 전의 여러 영화에서 비슷한 돌 괴물 CG 가 많이 등장했는데, 그 거대한 방주를 노아 혼자서 만들 수 없기에 다소 억지스럽게 추가한 듯하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가 과연 ‘기독교 영화’로 볼 수 있나 싶은 장면이 있는데, 세상이 창조된 이후 물고기가 점점 진화해서 인간이 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 같은 모습이 다소 아이러니 하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이 원숭이에서 진화했다는 ‘진화론’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했던 점은,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허구인지 알 수 없는 이와 같은 이야기를 마치 실제 이야기처럼 합리화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상황들을 짜 맞추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런 식으로 신화와 설화는 후대에 살붙임이 되고 변형되어 후대에 전승된다.
억지스러운 갈등관계와 허구의 인물들로 인해 스토리가 다소 황당하고 산으로 가는 듯 하고 이야기 자체에 그리 기대감이 없으며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배우들의 연기가 매우 좋고 CG도 무난하며, 성경 속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나름대로 재해석해서 본다는 의미에서 무난하게 볼 수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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