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을 멈추게 하는 방법 Essay

울음을 멈추게 하는 방법

우는 아이의 울음을 멈추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관심’이다.
우는 아이를 달래면 아이는 자신이 슬프다는 것을 알아 달라며 더 울기 시작한다.
하지만, 자신이 울어도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다는 것을 알게 되면 더 이상 울지 않는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일 뿐이기 때문이다.
짜증이 나서 울고, 조금 아픈데 다쳤다는 것에 공감해주기를 바라며 울고, 무언가를 갖고 싶다며 때를 쓰며 울고, 화가 났거나 억울하다며 운다.
하지만, 짜증을 받아줄 사람이 없고, 아팠냐며 달래줄 사람이 없고, 때를 써봐야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없고, 화를 내봐야 오히려 더 화를 내며 맞받아치고, 억울함을 호소해 봐야 아무도 관심이 없거나 오히려 더 나쁜 반응을 불러 온다면, 울고 때를 쓰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사실 이것은 ‘아이’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모두에게 해당한다.

부모는 아이가 울면 무엇 때문에 우는지 이해하려 하고, 아이의 감정에 동감하려 한다.
작은 손짓 하나에도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자신의 편에 서 주는 부모는 마치 자신의 일부분인 것처럼 자신의 감정과 연결되어 있고, 편안함을 주고 위로가 된다.
아이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은 세상 사람들이 ‘부모’와 같지 않다는 것을 경험하는 과정 속에 있다.
부모가 아니고 혈연 및 지연 관계가 아닌 사람들은 적자생존 생태계의 경쟁자일 뿐이다.
그들은 이기적이고 나의 슬픔이나 기쁨에 관심이 없다.
즉, ‘무관심’을 겪게 되면서 정신적으로 강인해지고 독립적인 하나의 구성원으로써 성장한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생활전선에 뛰어 들었거나 부모의 헌신적인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는 일찍 철이 들어 어른스럽다.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는 자립심이 강하고 목표의식이 뚜렷하여 남들보다 일찍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반면, 사랑을 하는 것과 받는 것에 미숙하다.
지나치게 많은 사랑을 받아 철없는 어른이 되는 것도 문제이고, 사랑을 많이 받지 못해 인간관계에서 냉소적이고 계산적인 것도 좋지 않다.
‘이기심’은 사랑을 많이 받고 적게 받음의 차이는 아니다.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사람이 남을 사랑하는 법을 잘 배웠을 수도 있지만, 뭐든지 자기 위주로 돌아가는 것에 익숙하면 오히려 이기적일 수 있다.
부족한 것이 많은 환경에서 자라 일찍 철이 든 사람이 탐욕적이고 이기적일수도 있지만, 오히려 어려고 힘든 사람들에게 공감하며 이해와 배려심이 더 많을 수도 있다.

아이와 마찬가지로 어른들에게도 ‘무관심’은 현실을 일깨워주는 좋은 방법이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스스로 노력해야 하며, 세상이 내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에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이해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세상 밖으로 나온 순간부터 인간은 스스로 먹어야 하며 스스로 필요한 것을 구해야 한다.
나와 타인의 관계에 대해 자각하고, 내가 살아가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느끼게 하는 가장 원초적인 방법이 바로 ‘무관심’이다.

‘아이에게 무관심하게 대하며 자립심을 키워줄 것인가’하는 문제는 다른 이야기다.
부모와 이웃은 아이가 자랄 때 사랑을 주어야 한다.
아이가 받는 사랑은 사회인으로써 성숙한 어른이 받는 사랑과는 다르다.
미성숙하고 보호받아야 하는 나이의 아이는 그 나이에 맞는 사랑을 받으며 크는 것이 필요하다.
사랑을 받을 나이에는 사랑을 받고, 더 자라서 독립해야 할 나이가 되면 냉정히 돌아가는 세상을 겪으면 된다.
분명, 아이는 나와 타인의 관계에 대해 자각하면서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세계관을 벗어날 수 있게 되지만, 사랑도 자립심도 모두 적당히 경험하고 느끼면서 자라야 사랑도 할 줄 알고 배려와 이해심도 적당히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갑자기 슬퍼지는 때가 있다.
누군가에게 내 감정을 하소연 하고 싶고, 위로가 받고 싶어지는 때.
주변에 사랑이 많고 친절한 사람이 있다면 그들과의 대화로 많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그들은 마치 자신의 일처럼 자신의 감정처럼 공감해주며 대신 화를 내주거나 위로의 말을 건넨다.
하지만, 그들에게 이런 행동은 그들 자신의 감정과는 별개이며 그들의 문제가 아닌 일에 대해 겪게 되는 감정노동의 시간이다.
나는 내 감정만을 위해 그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아닐까.
물론, 그런 감정적 교류는 더욱 친밀감을 쌓아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한번은 내가 한번은 그들이 서로 위로를 받기를 바라는 감정노동을 교환하는 상부상조의 관계가 된다면 그 둘은 길거리에서 의미 없이 마주치는 사람과는 다른 특별한 관계가 될 지도 모른다.
자신의 주변에 ‘감정적 이기주의자’만 있거나, 마음을 편안하게 털어놓을 사람이 없다면.
혹은 털어놓아 봐야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더욱 냉소적이 되고, 더 이상 기대도 하지 않게 된다.
고독과 함께 감정의 문은 닫히고, 더 이상 울 필요도 없어진다.
감정이 메마르고 웃음이나 울음이 거의 없다는 것은 감정적으로 교류할 기회가 부족해서 익숙하지 않거나, 현재의 환경이 감정의 표현을 정신적 사치로 여기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감정을 솔직히 표현할 수 있고, 위로 받고 위로 해줄 수 있는 삶이 행복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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