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 아직 한국 영화의 수준은 이 정도이던가.
특수효과, CG, 수많은 조연들, 아기자기한 화면 분할 등등 제작기술 면에서는 좋은 퀄리티를 보여주었지만, 정작 중요한 몰입감 있는 드라마틱한 연출이나 자연스러운 코미디, 희극과 정극의 조화라는 면에서는 매우 어설픈 영화.
희극 부분은 간혹 실소가 나올 정도의 가벼운 코미디가 전부이고, 정극 부분은 여태껏 보아온 영화나 드라마의 스토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전형적인 스토리 라인이어서 식상했다.
가볍게 킬링타임용으로 보기에는 정극 부분의 비중이 너무 커서,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모두 놓친 것 같은 영화.
차라리 킬링타임용 영화로 주성치 영화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가벼운 코미디로 전개하는 것이 나을 뻔 했다.
'조선미녀삼총사' 라는 제목부터가 카메론 디아즈, 드류 베리모어, 루시 리우 등이 주연한 "미녀 삼총사(Charlie's Angels, 2000)" 시리즈를 모티브로 한 것 같은데, 그 영화에 등장한 여배우 3인방은 각자의 매력이 매우 강했고, 자유분방함이나 성숙한 섹시미가 출중했던 것에 비해, 조선판 미녀 삼총사를 연기한 3인방은 외모나 액션 등 여러 면에서 강렬함이나 섹시함 보다는 귀엽고 여성스러움이 강해서 '귀여운 여고생' 같은 느낌이다.
이하 스포일러 포함--------------
배우들의 연기에 대한 평은 잘 안하는 편이지만, 답답해서 몇 자 적어본다.
로맨틱 코미디와 정극 연기에서도 인정을 받으며 나름 흥행보증수표로 불리는 하지원이 이 영화를 선택했다는 것에 아쉬움을 토로하는 글들이 많다.
코믹한 씬 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진지한 이야기 부분을 담당하며 진지한 연기를 주로 했는데, 문제는 하지원이 이 영화에서 보여준 '진옥' 캐릭터가 그녀의 최고 히트작 중 하나인 '다모'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는 것이 아쉽다.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 복수의 칼을 갈았으나, 현상금 사냥꾼으로 지내던 중에 아버지를 죽인 원수 김자헌(최성민)을 만나게 된다.
당시 그 가문을 공격해 온 김자헌 일당이 진옥과 진옥의 아버지 조유식(정호빈)을 위협하자, 진옥을 따르던 머슴 아이는 평소 조유식이 집안에 위기가 닥쳤을 때 자신을 찌르라고 당부한 대로 조유식을 찌른다.
당시 조유식을 찔렀던 남자 아이는 기억상실에 걸려 김자헌의 개로 키워진다.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 진옥과 사현(주상욱).
진옥은 단번에 그 남자가 어릴 때 자신을 따르던 머슴이라는 것을 알아채지만, 사현은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녀를 찌른다.
진옥이 김자헌을 막기 위해 싸움을 벌이는 도중 다시 둘은 만나게 되고, 사현이 기억을 되찾았다고 생각한 김자헌은 사현을 찌른다.
기억이 되돌아 온 사현은 건물이 붕괴되는 속에서 진옥과 조유식을 탈출 시키고, 진옥이 어릴 때 준 은장도를 찾으려고 되돌아갔다가 떨어질 위기 상황에 진옥이 딱부리를 던져 사현을 잡는다.
하지만, 진옥이 마저도 위험에 빠질 상황이 되자 끈을 끊고 떨어진다.
건물에서 탈출한 진옥은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김자헌이 타고 도주하던 배에 뛰어 오르고, 훈계만 하고 돌아서는데 공격하는 김자헌에게 폭탄을 안기고 배를 떠난다.
이야기 구조가 '다모'와 많이 비슷하고, 얽히고 설킨 관계의 구조도 비슷하다.
딱부리로 적들을 무찌르는 모습이 정말 멋이 안 난다.
일명 '조선판 미녀삼총사' 삼인방이 건물에서 뛰어 이동하는 장면은 와이어 느낌이 너무 났다.
이 세명 자체가 액션 연기가 멋지게 되는 배우는 아니라서 그런지 액션씬을 화면 편집으로 넘겨버리기 때문에 액션 씬 자체가 그다지 사실감이나 긴박감이 넘치지는 않는다.
그나마 액션 연기를 많이 해 온 하지원은 여전히 여성스러운 몸짓이 남아 있어 아쉽다.
쿵후가 익숙한 홍콩 여배우들의 액션 정도를 바라는 것은 무리인가 보다.
특히, 칼싸움 할 때 여성향 물씬 풍기는 그 특유의 비명은 왜 넣었을까.
아이돌 가수인 손가인이 영화 데뷔를 했다.
똘끼 있고 선머슴아 같은 캐릭터를 연기했는데, 다소 책을 읽는 듯 딱딱한 대사처리가 아쉽기는 했으나 캐릭터 자체가 무뚝뚝하고 남성적인 캐릭터라 어느 정도는 커버가 되었다.
하지만, 캐릭터가 보여주었어야 할 특별한 매력은 없었다.
강예원은 주로 코미디 영화에서 많이 모습을 보였고, 이번 영화도 코믹한 캐릭터를 연기했는데, 아직은 미완성의 모습.
진옥의 아버지 조유식 역을 연기한 정호빈이나 시종일관 진지한 캐릭터인 정극 캐릭터 사현을 연기한 주상욱.
그리고, 조선판 소시오패스 같은 역할에 특유의 독특한 말투의 김자헌을 연기한 최성민.
이들은 이 영화에서 '정극' 을 담당하고 있는데, 주상욱이 연기한 사현 캐릭터는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 이지만 사모하는 아씨 진옥에 대한 애절한 마음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돈 등 꽤나 입체적인 캐릭터이지만 무엇이 문제인 강렬함이 없는 평면적인 캐릭터가 되었다.
최성민의 독특한 말투는 악랄한 김자헌의 캐릭터를 꽤 잘 표현한 것 같지만, 마치 혼자만 연극을 하는 것처럼 이질감이 강했다.
고창석은 특유의 코믹한 매력을 그대로 잘 보여주었고, 송새벽 역시 딱 '송새벽' 연기를 보여주었는데, 이들은 본인 자체가 캐릭터화 되어 말투나 행동 자체가 웃음을 주기는 하지만, 너무 정형화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오락영화이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는 리얼리티가 있어야 하지 않나.
딱부리로 수많은 병사들을 제압하는 모습은 멋지지 않다.
조선시대 목조 건물이 상층부에서 폭탄이 터져 붕괴되는데, 아래층에서는 왜 물이 터져 나오는 건지, 붕괴되는 시간은 왜 그리 긴 것인지.
진옥이 칼을 그렇게 깊이 찔리고 되살아 난 것은 알겠는데, 그렇게 다치고도 얼마 지나지 않아 너무 팔팔하게 잘 돌아다닌다.
사현은 한 술 더 떠서, 김자헌에게 칼로 찔려 당장 쓰러져 죽을 것 같다가, 진옥과 조유식을 멀쩡히 탈출 시킨다.
역시 주인공들은 불사신.
달아나는 김자헌의 배로 뛰기 위해 높이 올라간 진옥.
그 높이에서 뛰어 내려 멀쩡한 것도 신기하지만, 딱부리를 여기 저기 던져서 이동하는 모습이 타잔 같았다.
스파이더맨과 비슷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타잔 쪽에 가깝다.
코미디와 진지한 이야기를 섞어서 다양한 재미를 주려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히려 어느 것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이질감만 느껴지게 했다.
코미디 연기를 꽤 잘 했지만, 자연스럽게 웃기지는 않아서 억지로 웃기려고 하는 듯 한 기분을 느끼게 되었다.
요즘 시대에 코미디 연기가 재미있으려면, 보는 사람이 민망하지 않게 자연스럽게 웃기거나 혹은 전혀 예측 못한 말이나 행동을 해서 웃음을 유발해야 하는데, 그런 신선하고 반전 있는 유머는 없었다.
리얼함이 떨어지는 작위적인 전개와 예측 가능한 익숙한 설정 및 스토리 진행에 배우들의 연기 또한 밋밋하고 정형적이어서 전체적으로 많이 아쉬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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