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려 드는 사람, 훈계 아닌 정보를 Essay

자존심이 센 탓인지 사람 본성이 원래 그런것인지.
가르치려 드는 사람이 정말 싫다.
내가 싫으면 남도 싫은 법.

사실, 사람은 배움이 적을 때는 훈계를 통해 성숙한다.
아직 미성숙할 때는 본능에 충실해서 하고 싶은 것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이를 다소 강압적으로 바로 잡아야 하는 때가 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만 하면 타인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다르게 얘기하자면, 나이가 들었어도 여전히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만 하려는 사람은 강압적인 훈계가 필요하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그것은 상대방이 아직 미성숙 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사람은 평생 배워야 하고 여전히 미성숙한 존재지만, 일정 나이가 지나면 훈계를 듣는 것이 서로 어색한 상황이라고 느껴질 때가 온다.
보통 사회에서 ‘성인’ 이라고 인정하는 나이가 되었다면, 더 이상 훈계를 할 필요는 없다.
개인차가 있기 때문에, 어떤 이는 아직 미성숙한 상태이고 어떤 이는 사회성이 발달해 있겠지만, 평균적으로 그 나이가 되면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훈계가 아닌 정보를 주는 사람이 되자.
‘훈계’ 는 상대방이 미성숙 하다는 전제 하에, 상대방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거나 또는 상대방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을 바로 잡기 위한 가르침이다.
사람의 자존심은 어렸을 때도 강하고 나이가 들수록 더 강하다.
‘나’ 라는 존재에 대한 확신을 가질수록 자존심은 더욱 강하다.
비록 상대방이 내가 아는 무언가를 아직 모르고 있더라도 혹은 잘못 알고 있더라도.
상대방에게 그것을 ‘훈계’ 라는 방식으로 강압해서는 안 된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으면 그 정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게 되고, 반항심에 사실을 왜곡하게 되기도 한다.

우리가 아는 것은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하는 혹은 알아야 하는 ‘진리’가 아니다. 단지 ‘정보’ 일 뿐이다.
‘정보’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관계다.
이것은 대등한 관계에서 '전달' 되는 것이며,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포용이 필요하다.
정보의 전달 과정에서 오류를 발견하면, 나 스스로도 정보를 수정할 필요가 있다.

성격 때문인지 혹은 남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다는 자부심 때문인지.
간혹, 사람들에게 내가 아는 것을 이해시키려고 훈계 비슷한 어조로 말을 할 때가 있다.
상대방이 모르고 있거나 잘못 알고 있다고 느껴지면, 그것을 바로 잡아 주고 싶은 욕구가 솟아올라 말이 많아지고, 점점 훈계처럼 변질이 된다.
내가 싫으면 남도 싫은 법인데, 수시로 망각하고 실수를 반복한다.
나름대로의 해결책으로, 굳이 묻지 않으면 얘기를 하지 않는다.
얘기를 한참 하던 중간에도 상대방이 흥미를 잃은 것 같으면 얘기를 중단한다.
어차피, 듣는 사람이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소귀에 경을 읽어 주는 것과 같다.
그 방법은 꽤 효율적이어서, 나는 적절히 필요한 정보를 잘 알려주는 사람처럼 보인다.

내가 수많은 독서와 경험을 통해 ‘지식’을 축적해 왔고, 남들이 모르는 정보를 알고 있다면.
많은 사람들은 그 정보를 이용해 ‘선생’이 되고, ‘스승’의 자리에 오르려 한다.
돈을 벌거나 혹은 명예로운 감투를 쓰는 기분이 들 것이다.
그 지식을 이용해 권력을 휘두르려 할지도 모른다.

내가 지금 아는 지식은 오류가 있을 수 있고, 그저 남들보다 조금 먼저 알게 되었을 뿐이라고.
항상 자신을 겸손히.
그리고 불필요하게 자존심을 세울 필요도 없다.
타인과의 교류를 통해 새로운 지식을 얻게 되는 것이고, 비록 그들이 타인을 배려하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을 할 줄은 모르더라도, 정보는 삶을 변화 시키고 타인을 이해하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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