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은 사람 데자부, '나' 는 '나' 인가. Essay

우연히 나와 닮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어떨까?
독특한 상상력의 SF 영화들 중에, 자신의 미래나 과거로 가서 자기 자신을 만나게 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대학1학년 때, 다니던 교회의 주일학교 아이들을 데리고 운동장에 놀러 갔다.
당시 나는 약간 덥수룩한 장발 머리에 안경을 쓰고 다녔는데, 비슷한 외모를 가진 사람은 꽤 많겠지만 나름 독특한 이미지라 할 수 있다.
운동장에 들어서자 운동장 강단 뒷쪽으로 지나가는 사람.
기억이 정확히 나지는 않지만, 누군가가 저기 지나가는 사람이 나와 닮았다고 외쳤고, 나도 얼핏 봤는데...
흠칫 놀라고 말았다.
어정쩡하게 덥수룩한 머리에 안경까지.
내가 내 얼굴이 어떻게 보이는지에 대한 느낌을 정확히 아는 사람이 많지는 않겠지만, 그 옆 모습이 마치 나를 보는것 같았다.
그것은 '반가움' 이 아니라 '섬뜻함' 이었다.
다가가서 '나와 많이 닮으셨네요' 라며 반갑게 인사 나누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내가 어서 빨리 그 자리를 피하거나, 그 사람이 빨리 사라져 주기를 바랐다.

마치 오랜동안 지하에서 거울 없이 지내던 사람이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보게 된것 처럼.
자신의 얼굴과 자신의 생각 속에 있는 '자신' 의 모습이 일치하지 않게 느껴진다면.
'아, 이것은 내 모습이 아니야' 라는 생각을 계속 하게 된다면, 자아정체성의 혼란이 발생하고, 자기의 현재 모습을 계속 부정하려 하면 자아장해가 발생할 수 있다.

'나' 는 항상 '나' 에 갇혀 있고, 항상 붙어 있기 때문에 타인에 비해서 익숙하다.
내가 '나' 라는 것에 대한 인지는, 내 눈 앞에서 계속 움직이는 손과 발, 거울을 통해 얼굴과 몸을 지속적으로 관찰하면서 익숙해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내 손을 자주 들여다 보지 않거나, 내 얼굴을 거울을 통해 오랫동안 보지 않다가 어느날 갑자기 보게 된다면 매우 낯설 것이고, 그것이 '나' 인가에 대해 한참을 생각할 것이다.
'거울' 이라는 물체가 사물을 비춰서 보여주는 것이라는 인식이 있고, 그 물리적 현상을 신뢰하기 때문에 우리는 거울을 보며 '얼굴이 많이 변했네' 라고 생각하게 된다.
만약, '거울' 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특성을 가진 물체라면?
거울 속의 나는 실제의 내가 아닐수도 있는 것이다.

사춘기 시절이었던 중고등학교 시절에 꽤나 이상한 경험들을 했다.
중학교 2학년 즈음에는 말그대로 데자부(Deja Vu) 같은 느낌을 받은 적이 많았는데, 지금 일어난 일이 분명 언젠가 먼저 경험했던것 같이 낯익은 것이다.
심지어, 꿈을 꿧는데 그 꿈과 똑같은 꿈을 꾼 적이 있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학교에서의 성적, 등수, 원하는 학교로의 진학 등.
하려고 하는데 잘 안 되거나, 혹은 하기 싫은대 억지로 해야 하거나.
얌전한 아이였기 때문에 방종을 하지는 않았지만, 심리적 억압은 다른 증상으로 나타났다.
정수리 부분의 모근 쪽을 만지작 거리다가 약간 꼬불꼬불 하다는 느낌이 들면 뽑아 버리고 싶다.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지만, '발모광' 증세다.
나 스스로도, 어머니도 걱정을 했지만 그런 행동이 왜 생기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꽤 오랜동안 머리카락을 뽑는 버릇 때문에 정수리 쪽이 하얗게 보이기 시작할 정도.
머리카락을 뽑고 싶은 욕구를 멈춘 것은 그 후로 꽤 오래갔다.
그때 즈음, 그리고 대학 들어가서 느꼈던 다른 경험은 '강박증' 과 '이인증' 이다.
길을 걸어갈때, 새로운 길에 들어서면 왼발을 먼저 디뎌야 한다거나, 보더블록 모양 선을 밟지 않고 안 쪽을 밟아야 한다거나, 선을 쭉 따라서 걸어야 한다거나 하는 류의 소소한 강박증세들.
'이인증' 은 그 느낌을 자세히 묘사하기는 힘든데, 시야가 점차 뒤로 물러가는 듯한 느낌과 뭔가 내가 작아지는 듯한 불안감, 시야가 좁아지고 어두워지면서 머리 뒷쪽 어딘가로 숨어들어가는 듯한 느낌,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게 느껴지는것 같은 호흡불안 증상이 생긴다.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어진다.
요즘 흔하게들 말하는 증세로 치자면 '공황장애' 나 '불안장애' 와 비슷한데, 증상의 정도가 그리 심하지는 않았고, 그때 음악을 하면서 거의 잊어버렸다.
이런 증상들이 아주 미세하게 조금씩 흔적이 남아 있지만, 이제는 그저 평범한 사람들의 범주에 들어 있다.
사춘기 시절에 호르몬 및 신체의 변화, 그리고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시기에 받게 되는 정서적 압박과 스트레스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신체의 변화 때문에 생긴 문제는 성장이 완료되면 차츰 나아질 것이고, 스트레스 때문이라면 스트레스 요인을 벗어나기 전에는 증상이 나아지기 힘들다.
그 시기에, '이인증' 이 심해진다면 심각한 정신질환으로 발전할 수 있다.
다행히도 나는 어려운 시기를 잘 지나 보냈고, 정신적으로 더 단련이 되었다.

교육제도와 사회의 구조적 특성 때문에 졸업이 늦어져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나이는 점점 늦어지고, 졸업 후의 취업을 걱정하거나 일자리가 없어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보통 사람들은 TV속에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사회의 '평균' 적인 모습으로 생각하는데, 그것과 비슷하게 살려고 하지만 현실은 궁핍하다.
자신의 욕구와 현실 사이에서 괴리가 발생하게 되면 불만이 생기고 스트레스가 증가한다.
사춘기가 아닌 20대 이후의 사람들에게서 정신적 질환이 많이 생겨나는 환경으로 변화되었다.

자신의 생각이 자신 혹은 타인에 의해 억압될때, 사람은 불만이 생겨나게 된다.
이에 '반항' 의 형태로 방종으로 분출이 될수도 있지만, '좋은(착한) 사람 컴플렉스' 등과 같이 사회적 규범을 잘 따르도록 교육받은 사람들은 억압을 해소하지 못한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지속적으로 잔소리를 한다면? 지속적으로 괴롭힌다면?
육체적 억압 뿐만 아니라, 정신적 억압도 그 사람의 내부에서 병을 키우게 한다.

욕구와 현실 사이.
우리가 '사회' 라는 공동체, '법' 이라는 테두리에서 살아가는 것은 '욕구' 를 제한 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평생 '욕구' 를 제한하고, 스스로를 통제하는 교육을 받는다.
'교육','법','윤리' 때문에 우리는 공동체를 파괴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지만, 사회규범은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발생시킨다.
이것을 좀더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증세들을 해결하려면.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주는 요인을 해소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만약,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그 사람과 대화를 해서 오해를 풀거나 혹은 친해져서 그 사람의 말에 상처를 입지 않을 만큼의 친밀감을 가져야 한다.
이도저도 안 된다면, 되도록 그 사람과 만나지 않거나 떠나야 한다.
학업 성취, 직업, 경제적 궁핍, 결혼 등의 문제라면, 일단 주변에서 그와 같은 문제로 스트레스를 주지 않도록 주의를 줘야 하고, 자신 스스로는 목표를 정해서 성취를 해야 한다.
'학업 성취' 는, 해도 안 된다면 일찌감치 다른 길을 알아 보는게 좋고, 원하는 '직업' 을 갖기 위해 죽을 힘껏 노력을 해보고, '경제적 궁핍' 이 원인이라면 먹고 살만큼 돈을 벌려고 노력을 해야 한다.
결혼이 하고 싶다면 결혼을 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미팅을 많이 갖고, 결혼이 하기 싫다면 주변에 자신의 의지를 정확히 알릴 필요가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때문에 정신적으로 스스로를 단련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마음의 평온' 을 갖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결론 내리고,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향해 노력하라.
최종적으로,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는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관련 참고글들:
자아정체감 [ego-identity, 自我正體感]
자아 정체성 [EGO IDENTITY]
자아의 확립 - 거울 속의 나는 ‘나’인가, 타자인가
자아장해 [自我障害, Ichstörung]
변화된 자아 상태 [ALTERED EGO STATES]
현실로부터의 이탈 '정신분열증'
이인증 [depersonalization]

머리카락 뽑는 습관 ‘발모광’ 정서적 궁핍이 원인
공황장애 panic disorder
불안장애 anxiety disorder
강박장애 obsessive compulsive disorder


덧글

  • 길을 찾는 여행자 2013/12/18 23:03 # 답글

    참 좋은 내용 감사해요 배우고갑니다^^
  • fendee 2013/12/18 23:19 #

    네, 감사합니다.
    처음엔 그저 나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에 대한 기억을 쓰려고 시작했는데, 저의 지난 이야기와 현재 공황장애를 겪고 있는 친한 동생을 위한 글이 되었네요.
    비슷한 경험을 했거나 힘든 상황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약간이나마 도움이 될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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