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은교 (2012)(박해일, 김무열, 김고은) Movie_Review


한편의 문학소설 같은 작품.
배우들의 연기도 좋고, 스토리의 짜임새도 좋다.
특히, 인물의 미세한 감정이 표출되는 장면들의 눈빛 연기와 세심한 몸동작 들이 인상적이다.
각 상황에 절묘하게 매치되어 분위기를 이끌어내는 배경 음악도 잘 맞아 떨어진다.

말로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등장인물들이 각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들이 느껴졌다.
이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기는 애매한데, 영화 속 대사처럼, 그 느낌을 가르쳐 주기도 설명하기도 힘들다.

개인적으로는 꽤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 생각하지만, 이 영화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는 데에는 마케팅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 영화 보기를 상당히 오래 머뭇거리다가 봤다.
노인과 소녀의 사랑이라는 다소 파격적일 수 있는 소재 때문이기도 하고, 그런 소재를 다소 선정적으로 마케팅 했다는 생각이 든다.
막상 영화를 보면, 예고편이나 광고카피에서 느껴지는 그런 도발적인 느낌이 아니라 황순원의 단편소설 ‘소나기’ 같은 느낌이다.
늙은 시인 ‘이적요’(박해일)와 ‘은교’(김고은)가 어렴풋이 느끼는 그 감정들은 소설 ‘소나기’ 에서 어린 소년·소녀가 느꼈을 그러한 감정과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한편으로는 같은 해인 2012년 3월 개봉작 ‘건축학개론’ 이 떠오르기도 한다.
내게 감정적 동요를 가져다 준 ‘건축학개론’ 에 이어, 이 영화 ‘은교’ 역시 어린 날 느꼈던 풋풋한 사랑의 감정을 떠오르게 했다.

주로 세 사람 간의 미묘한 감정 선을 따라 이야기가 전개 되는데, 시작부터 카메라에 담기고 있는 상징적 장소와 물건들은 영화 내내 반복적으로 카메라에 담기며 복선 역할을 한다.
은교가 처음 넘어온 계단, 흔들의자, 소나기, 자동차 키, 순수함, 외로움, 사랑, 위로, 측은함.

적나라한 섹스신과 음모 노출, 성기 노출. 노인의 제자 ‘서지우’(김무열)는 노인과 ‘은교’가 섹스를 했다고 오해하고 ‘그래서는 안 되는 것’ 혹은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더러운 것’ 으로 생각하는 감정이 표출되는데, 이런 적나라한 묘사 때문에 이 영화를 보는 것이 한편으로 불편해질지 모른다.
등장인물의 감정을 보다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꼭 필요 했을지도 모르고, 굳이 그렇게 적나라하게 표현하지 않아도 됐을지도 모른다.
터부시 될 그런 것들이 이 영화에서 그리 중요하지는 않다.
노인이 거울 앞에 서서 옷을 벗고는 주름진 자신의 몸과 힘없이 처진 성기를 보며 초라한 자신을 되새김질 하고, ‘은교’로 인해 젊은 날의 감정을 되살리고, 마치 젊은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활기를 되찾고, 젊어진 몸으로 은교와 섹스를 하는 상상을 한다.
노인은 ‘은교’가 제자인 ‘서지우’ 와 섹스를 나누는 장면을 훔쳐보고는 배신감과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이런 상황을 그대로 영상에 담으며 빙빙 돌아가지 않고 직접적으로 묘사를 한다.
이야기 속 등장인물이 느낄 감정을 관객에게 전달하기에는 이런 직접적인 묘사가 더 확실할 수 있다.
‘파격’ 과 ‘이슈’ 를 위해 이런 직접적인 묘사를 했을지도 모르지만, 등장인물이 느꼈을 행복감, 배신감, 질투를 관객이 동감하게 하는 장치로써는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다.
‘파격’ 이라는 점에서는 2009년 개봉작 ‘박쥐’ 가 떠오르기도 했다.

우리는 이런 외적 장치들보다는 3명의 등장인물이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과 미세한 행동들에 집중해야 한다.
노인 ‘이적요’와 ‘은교’의 관계, ‘이적요’와 ‘서지우’의 관계, ‘서지우’와 ‘은교’의 관계.

‘박해일’의 노인 분장과 연기가 나름 파격적인데, 노인 분장 하면 떠오르는 영화 ‘이끼(2010)’ 에서의 ‘정재형’의 특수 분장을 떠올릴 수 있다.
‘정재형’의 특수 분장만큼이나 박해일의 노인 분장은 리얼 했다.
거울 앞에 선 나체 연기는 CG 로 머리만 합성한 것 같기는 하지만, 제법 리얼했다.
겉으로 보이는 분장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움직임과 목소리 연기.
움직임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노인스러운(?) 움직임을 잘 연기했는지를 평가하기는 힘들기 때문에 그 대신 목소리 연기를 주목해보자.
나름대로 노인 같이 나직하고 차분하며 걸걸한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은 한 것 같은데, 이 목소리 연기가 좀 마음에 안 든다.
뭔가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는 목소리의 느낌이 강했기 때문이다.
아직 노인 연기를 하기에는 젊은 것 같다.

‘은교’ 역을 연기한 ‘김고은’은 91년 생으로, 2013년 11월 현재 만 22세.
작년에 4월에 개봉했고, 생일이 7월이니까 당시 만 20세로 볼 수 있지만, 실제로 영화 촬영에 몇 달이 걸렸다고 가정하면 만 20세 전후에 촬영을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한국 나이로는 20~21세 이지만, 만 나이로는 19~20세 가량으로, 대학에 입학한 1학년 때에 촬영을 시작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우리나라 대학 1학년생은 대체로 만18~19세)
영화 속 ‘은교’ 의 나이가 17세(두 달이 지나면 18세로 설정) 이기 때문에, 배역의 나이와 거의 비슷하다.
영화 엔딩에서 대학생이 된 ‘은교’로 등장하는데, 실제 ‘김고은’의 나이와 같은 나이가 되는 셈.
실제로 영화 속에서 보이는 그녀의 모습은 화장기 없고 풋풋한 고등학생 그대로의 모습이다.
이성에 대해 알 듯 모를 듯한 풋풋한 은교의 모습을 담아내기에 아주 좋은 캐스팅이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스승 ‘이적요’에 대한 존경과 사랑, 스승의 사랑을 독차지 하는 ‘은교’에 대한 질투 등 미묘한 감정 선을 연기해야 하는 제자 ‘서지우’를 연기한 ‘김무열’의 연기도 좋았다.

적어도 주인공 세 명의 캐스팅은 꽤 좋았고, 이야기 속 인물과 매치가 잘 된 편이다.

주변 이야기는 줄이고, 본 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이하 스포일러 포함---------------

아무래도 이 영화에 대한 자세한 리뷰를 쓰려니 스포일러가 될 수밖에 없다.
영화를 재미있게 감상하시려는 분은 나중에 읽어 보시기를 바란다.

늙은 시인 ‘이적요’.
그는 대학 강단에도 서고, 사람들이 그를 기념하는 기념관도 세우려 할 정도의 인정받는 시인이다.
하지만, 그는 외롭다.
거울 앞에 벌거벗은 모습으로 서서, 주름진 자신의 몸을 보며 초라해진다.
아무도 없는 쓸쓸한 집, 물에 밥을 말아 김치 반찬에 단출하게 식사를 하고, 이른 새벽 산책을 한다.
그는 아직 죽지도 않은 자신을 위해 기념관을 세우겠다는 사람들이 못마땅하다.
‘퇴물’ 취급 까지는 아니지만, ‘노인’ 이라며 선을 긋는 것이 불만스럽다.

하나뿐인 제자 '서지우' 의 소설 '심장' 출간을 기념하여 함께 집에 돌아오던 어느날,
자신의 흔들의자에 누워 잠들어 있는 풋풋한 소녀를 본다.

남자는 나이 들어도 남자라던가.
풋풋한 소녀의 등장에 노인은 묘한 감정에 빠진다.
‘서지우’는 다시 스승의 집에 오던 길에 그 소녀를 만났는데, 집 청소를 하는 일을 주기로 하고 노인도 거절하지 않는다.

소녀가 청소를 온 날 부터 마치 죽어가는 노인처럼 적막했던 집에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이래서 ‘회춘(回春)’ 일까.
사실, ‘소녀 회춘법(gerocomia)’, ‘댄디즘(dandysm)’ 또는 중국의 ‘소녀경’에 나오는 ‘소음동침(少陰同寢) 회춘법’ 등으로 이미 동서양을 막론하고 소녀와 동침하여 젊음을 되찾는다는 ‘회춘법’은 많이 알려져 있다.
물론, 이것에 대한 분석은 분분한 편인데, 실제로 섹스를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교류로 인해 정신적 활력을 찾는다고 보는 시각이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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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나미티즘’의 경우, 구약성서 시대에 다윗 왕에게 ‘슈나미인(人)’을 왕과 동침하게 한 데서 비롯해, 고대 로마시대에도 있었고, 국내에도 8·15광복 이전까지 이런 관습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이 영화의 근간에는 이런 ‘슈나미티즘’이 깔려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나이차가 많이 나는 커플, 특히 남자들이 젊은 여자와 연애를 하게 된 경우, 남자가 젊어져 보이는 경향이 있다.
    여자의 삶에 맞추기 위해 스스로 젊어 보이게 옷을 입거나 혹은 여자가 자신의 남자가 젊어 보이게 만들려고 패션 등에 직접 신경을 쓰며 챙겨준다.
    젊은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으로 데이트를 가는 등의 행동을 통해 젊어진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젊어 보이려는 행동으로 인해 외형상의 변화가 생기고, 정신적으로도 좀 더 활력을 가지려고 스스로 노력하거나 꾸밈을 받기 때문이다.
    사람의 뇌는 늙지 않는다고 한다.
    몸은 나이가 들수록 노화 되어 외형상의 변화가 생기지만, 뇌는 계속 쓰는 한은 노화 되지 않는다.
    그러다보면, 몸과 정신의 불일치를 느끼는 시점이 온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 ‘나는 여전히 아이다’ 같은 느낌이 들기 마련이다.

    ‘이적요’ 와 ‘은교’가 급작스럽게 친밀하게 된 계기는 소나기다.
    (소녀가 짧은 옷을 입고 등장하는 모습으로 볼 때, 여름쯤으로 볼 수 있는데, 소나기 또는 장맛비가 내린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게다가 ‘은교’의 귀 근처가 발갛게 달아 오른 것을 본다.
    ‘은교’의 엄마는 가끔 은교를 때린다고 한다.
    ‘은교’의 엄마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는 않지만, 특별히 ‘은교’의 엄마가 그녀를 학대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여러 정황상, 은교의 엄마는 홀로 두 아이(?)를 키우기 위해 목욕탕 때밀이로 생계를 잇고 있고, 가끔 말을 안 듣는 사춘기 딸과 다투다가 폭력을 쓰는 것 같다.
    이후 ‘은교’가 ‘서지우’와 원고를 넣어 놓은 반닫이(반다지) 자리를 놓고 싸우는 모습, 빵을 안 먹는다는 ‘이적요’에게 아침으로 샐러드와 커피를 주겠다는 모습 등은 그녀가 여느 사춘기 소녀처럼 고집이 세다는 것을 보여준다.
    ‘은교’가 계단을 타고 노인의 집에 넘어와 흔들의자에서 자던 날도 몸에 상처가 난 흔적이 있었다.

    ‘은교’ 와 ‘이적요’의 매개체는 엄마의 폭력.
    ‘은교’가 ‘이적요’의 집에서 일하게 되는 계기는 서지우의 일자리 주선이고, ‘은교’와 ‘이적요’가 급속히 친밀해지는 계기는 엄마의 폭력에 비를 맞고 찾아온 그 날 밤이다.
    마치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 에서 ‘비’ 라는 매개체로 인해 소년과 소녀가 ‘친구’ 그 이상의 관계가 되듯이.

    비에 젖은 몸을 말리기 위해 은교에게 자신의 옷을 갈아입히고, 그녀의 젖은 교복을 헤어드라이어로 말린다.
    ‘이적요’는 마치 손녀에게 대하듯이 그녀를 살갑게 대하며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데, ‘은교’가 이후에 대사를 통해 그날의 심정을 밝히듯이, 집에서 도망 나와 찾아온 ‘이적요’의 집은 참말로 포근했다.
    자신의 옷을 대신 말려 주는 사람, 아빠의 옷처럼 편한 헐렁한 옷,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따뜻한 사람.
    적어도 여기까지 ‘은교’의 마음은 ‘이적요’에게서 친할아버지 같은 편안함을 느꼈을 것이다.
    나이차가 많이 나기 때문에 성욕을 부리지 않을 나이,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함께 있어도 크게 의심 받지 않을 나이차다.
    마치 게이가 여성들과 스스럼없이 지내듯이, 노인과 소녀의 사이도 의심받거나 의심하지 않을 관계랄까.
    하지만, ‘이적요’에게 있어 ‘은교’는 단지 ‘소녀’ 그 이상이다.
    ‘은교’가 여자로써의 기본적인 경계를 풀고, 침대에 누워 팬티가 보이는 모습을 ‘이적요’는 흘깃 쳐다보게 된다.
    노인은 사회 통념상 어떻게 해보겠다는 생각을 감히 할 수는 없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끌어 오르는 감정마저 어찌할 수는 없다.
    이 영화 속의 노인 ‘이적요’ 가 ‘은교’를 대하는 자세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엄청나게 비가 퍼붓고, 천둥번개가 치던 밤이 지나고.
    소파에서 자고 있어야 할 ‘은교’가 자신의 다리 근처에서 강아지 마냥 쌔근쌔근 자고 있다.
    처음에는 당황하지만, 그녀의 벌어진 윗옷 사이로 보이는 ‘해나’를 보며 ‘이적요’는 마치 예술품을 관람하듯 그녀를 지긋이 쳐다본다.
    우연치 않은 일탈 같은 행복도 잠시, 평소 제 집 드나들듯 하는 제자 ‘서지우’가 찾아 오고, ‘이적요’는 소녀와 함께 잠을 잤다는 사실이 들통 날까봐 서둘러 지하 서재로 향한다.
    스승의 방에서 나오는 소녀를 보고 놀라는 서지우.
    하지만, ‘은교’도 ‘이적요’도 별일 아니라는 듯이 행동한다.

    오랫동안 ‘이적요’의 수발을 든 ‘서지우’는 스승에 대해 시시콜콜 많은 것을 알지만, ‘이적요’에게 하나뿐인 제자 ‘서지우’는 ‘아픈 자식’ 같은 존재다.
    출판사 관계자와 통화 하느라 물이 졸아 짜게 되어 버린 미역국 같다.
    빵을 좋아하시지 않는다고 ‘은교’를 나무라지만, 좋아하실 거라고 생긋생긋 웃으며 ‘이적요’에게 샐러드를 가져다주는 은교.
    맛있겠다며 받아드는 ‘이적요’의 모습에 ‘서지우’는 질투를 느낀다.
    분명 빵을 좋아하시지 않는 것을 아는데, 스승은 왜 저토록 좋아할까?
    아버지와 아들처럼 지내는 사이지만, ‘은교’를 대하는 스승의 모습은 낯설다.

    스승 ‘이적요’를 존경하고 고귀한 분이라 여기는 ‘서지우’는 이 모든 일이 ‘은교’ 때문이라 여긴다.
    셋은 다 같이 아침 산행을 나간다.
    그녀에게 채근을 하기 위해 거울을 보고 있는 그녀의 어깨를 치자 거울이 밑으로 떨어진다.
    엄마에게서 선물 받았다는 하나 뿐인 거울이라며 울먹거리는 ‘은교’, 그까짓 거 똑같은 거 하나 더 사면되지 않느냐는 오히려 은교를 나무라는 ‘서지우’.
    ‘이적요’는 말없이 위험한 돌산을 내려가 그녀의 거울을 주워 온다.
    위험을 무릅쓰고 거울을 구해준(?) 이적요가 고마워 그에게 안기는 소녀.
    하… 이 장면은 여느 일반적인 남녀 커플이 친해지게 되는 계기와 비슷하다.
    은교에게 그 거울은 복잡한 심경이 담긴 물건이다.(그렇게 보인다)
    엄마를 사랑하지만, 엄마는 삶의 스트레스로 인해 간혹 그녀에게 폭력을 쓰고.
    엄마의 사랑에 대한 애정결핍은 엄마가 은교에게 선물했던 거울을 통해 되새김질 된다.
    엄마의 사랑을 추억처럼 간직하는 물건인 것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거울을 가져온 ‘이적요’에게 진심으로 감동하고, ‘이적요’ 또한 그녀가 느낄 그 복잡한 감정을 조금이나마 느낀다.

    학교를 마치고, 예쁘게 차려입은 ‘은교’는 ‘이적요’의 손을 이끌고는 그에게 자신의 가슴에 있는 해마와 똑같은 새 모양의 ‘해마’를 그려주겠다고 한다.
    자신이 꾸미기를 좋아하는 사춘기 소녀인 것처럼, 노인도 젊은이들이 하는 것을 따라 해보고 싶을 거라고 확신한다.
    손녀가 재롱부리듯이 자신에게 살갑게 대하는 ‘은교’의 모습이 싫지만은 않다.
    쭈뼛쭈뼛 은교의 옆에 눕자, 은교는 자신의 다리 위에 누우라며 다그치고, 은교는 여자로써 부끄러움도 없는 듯 그의 얼굴을 가로질러 열심히 해마를 그린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이적요’는 손녀 같은 소녀의 가슴과 얼굴이 자신의 얼굴 위로 지나는 모습에 어쩔 줄 모르지만, 눈을 감으라는 그녀의 말에 눈을 감는다.
    그리고 밝은 햇살이 쏟아지는 창문을 닦고 있는 그녀의 뽀얀 모습을 본다.
    남자들의 성적 판타지의 일면을 볼 수 있다.
    ‘뽀얀 피부’, ‘햇살이 비치는 창가’, ‘가볍게 걸친 옷’.
    그녀의 가느다란 발목을 잡을 듯 말듯, 그녀의 사타구니로 더듬듯이 손길이 올라가다가, 소년의 모습으로 되돌아간 자신을 발견한다.
    그녀를 사랑하고 싶다는 감정으로 인해, 그녀와 대등한(?) 나이의 소년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일으킨 환상일까.
    노인 분장을 하고 연기하던 ‘박해일’이 더욱 소년처럼 보이기 위해 짧은 머리와 뽀얀 피부로 변신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소설 ‘소나기’ 에서의 풋풋한 만남처럼, 소년이 된 ‘이적요’는 ‘나 잡아봐라’ 하며 도망가는 은교를 쫒아 달린다.(이 장면들에서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젊음을 되찾은 ‘이적요’는 서재에서 열심히 글을 쓰게 되고, 그녀와 상큼한 섹스를 나눈다.
    꿈은 잠시, ‘해나’가 완성되고 ‘이적요’는 꿈에서 깨어난다.
    회춘. 은교와의 사랑을 꿈꾸며 젊은시절의 생기를 되찾은 ‘이적요’는 ‘은교’를 사랑하고 섹스를 하는 내용의 글을 열정적으로 써내려 간다.

    한편, 글이 잘 써지지 않는 ‘서지우’는 감기가 걸렸다며 ‘은교’에게 약을 사달라고 부탁을 한다.
    스승과 ‘은교’의 관계가 못마땅해 그녀에게 윽박지른다.
    자신의 스승은 고귀한 분이니까 더럽히지 말라고, 거울 갖고 징징거리지만 않았어도 스승님이 그런 위험에 빠지지 않았을 거라고.
    내가 할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했냐며, 무엇이 문제냐며 대들던 ‘은교’는 ‘이적요’가 ‘서지우’에 관해 한 이야기를 내뱉고 만다.
    ‘별이 똑같은 별이 아니라는 걸 아는데 십년이나 걸렸다고’.
    공대 출신인 ‘서지우’는 글 쓰는 감성이 부족하다.
    남들에게 말하지 않았던 치부라도 들킨 모양으로 차분해진 ‘서지우’는 처음 스승의 강의에서 ‘별’에 관해 나눈 대화를 떠올린다.
    ‘별’은 아름다운 것도 아니고 추한 것도 아닌 그저 ‘별’일 뿐이다.
    사랑하는 연인에게는 ‘별’이 아름다워 보이겠지만, 배고픈 사람에게는 쌀알로 보일지 모른다.
    스승 ‘이적요’가 자신과는 나누지 않는 사적인 이야기를 ‘은교’와 공유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스승이 자신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별다른 얘기를 듣지는 못하고, 자신이 쓴(?) 소설 ‘심장’에 관심을 보이는 ‘은교’에게 책을 내어 준다.

    ‘은교’의 책가방에서 자신의 소설책을 본 ‘서지우’는 ‘은교’가 그 책을 읽었는지, 책을 읽고 어떻게 느꼈는지 묻지만 ‘은교’는 읽지 않았다고 대답한다.
    ‘은교’가 스승님의 원고가 들어 있는 반닫이(반다지)를 옮기려는데, 그 반닫이가 ‘은교’의 나이 보다 더 오랜 세월 그 자리에 있었다며 옮기지 못하게 막는 ‘서지우’.
    할아버지가 편하시도록 옮기는 게 좋다는 ‘은교’와 몸싸움을 벌인다.
    이 장면은 ‘은교’ 와 ‘이적요’가 친밀해진 계기가 있었던 것처럼, ‘은교’ 와 ‘서지우’가 친밀해지는 계기가 되는 장면이다.
    할아버지가 오는 소리에 나간 ‘은교’의 뒤로, 쏟아진 반닫이 원고 속에서 ‘은교’에 대해 쓴 원고를 보게 된 ‘서지우’.
    할아버지에게 일러바치듯이 반닫이 이야기를 하는 ‘은교’, 하지만 기대와 달리 ‘이적요’는 ‘가구도 제자리에 있고 싶어 할 것’ 이라며 ‘서지우’의 손을 들어준다.
    실망하는 ‘은교’의 모습에서 ‘이적요’와 제자 ‘서지우’의 관계에 대한 묘한 감정을 느끼는 ‘은교’(그럴 것이라 느껴진다).
    ‘이적요’는 출판사 직원들과의 모임 대신 ‘은교’ 와 따로 데이트를 하기로 약속하고, 일단 모임에 가서 인사만 하고 오기로 한다.
    자신의 기념관을 만들겠다는 말이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존경받는 늙은 시인’ 이미지에 자신을 가두려 하는 그들의 태도가 오히려 부담스럽다.
    자신이 아직 젊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자신의 가슴에 새긴 ‘해나’를 보여주는 ‘이적요’.
    ‘서지우’는 그 새 모양의 ‘해나’를 ‘은교’가 방문했을 때 다투다가 본 적이 있다.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선 ‘이적요’는 약속대로 ‘은교’와 데이트를 하는데, 젊은이들만 가는 칸막이 있는 식당에서 젊은 소년·소녀처럼 데이트를 즐긴다.
    음식이 나오자 소녀가 가르쳐준 ‘헐’ 이라는 말을 사용했다가 창피를 당하고는 그 말이 황당할 때 쓰는 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불교 용어인 ‘할(喝)’에 관해 이야기를 해준다.


    ‘할’은 ‘깨달음을 얻었다는 뜻이다’ 라고 말한다.
    불교에서 ‘할’은 스승이 참선하는 제자에게 질타하는 소리이고, 반대로 제자가 스승의 역량을 시험하기 위해 ‘할’ 한다고 한다.
    젊은이들의 용어인 ‘헐’ 과 불교 용어인 ‘할’을 이용해 농을 하는 모습이 약간의 말장난 같지만, 영화 후반부에서 ‘서지우’가 스승인 ‘이적요’에게 ‘소녀와 사랑을 하면 안 된다’ 고 꾸짖는 장면은 ‘할’ 에 해당하기도 한다.
    그 시각.
    ‘서지우’는 집을 비운 ‘이적요’의 반닫이에서 원고 ‘은교’를 꺼내어 읽을까 말까 고민한다.
    결국, 원고를 꺼내들고 집을 나서는 서지우.

    늦은 밤 찾아온 출판사 사장은 이상한 소식을 전한다.
    ‘서지우’가 쓴(?) 소설 ‘심장’ 이 83만부를 넘었고, 엄청난 인세를 벌게 되었다는 것.
    상업적인 작품을 쓴 작가는 본격 문학(순수문학)에서 인정을 받기 힘든데, ‘문학동네’ 가을호에 ‘은교’ 라는 단편이 실려 문단의 호평을 받고 있다는 것.
    ‘이적요’는 그 ‘은교’라는 작품이 자신이 쓴 ‘은교’ 인지 귀를 의심하며, 급히 서점에 가서 읽어 보는데…

    집에 찾아온 ‘서지우’를 호되게 나무라는 ‘이적요’.
    그리고 둘 만의 비밀이 밝혀진다.
    소설 ‘심장’을 이적요가 대필해 줬다는 것.
    예술적 감성이 부족한 ‘서지우’가 오랜 세월 그의 뒷바라지를 한 것이 불쌍하기도 하고, 자신의 이름이 아닌 새로운 이름으로 새로운 소설을 써서 대중에게 평가 받아 보고 싶었던 ‘이적요’가 제자인 ‘서지우’의 이름으로 대신 소설을 출간했던 것이다.
    ‘서지우’는 ‘이적요’가 대필해준 소설 ‘심장’으로 일약 스타 작가가 되었지만, 자신이 ‘이적요’의 껍데기인 것 같아 불안하다는 것이다.
    반닫이에 숨겨져 있던 원고 ‘은교’를 읽은 ‘서지우’는, 그 글이 예술 작품으로써는 정말 훌륭하지만, 국민시인(!)이 미성년자와 섹스를 한 이야기를 발표하지는 못하니 자신이 대신 발표 했다는 것.
    (대사에서 알 수 있듯이, ‘서지우’는 스승인 ‘이적요’가 원고에 쓴 내용을 사실 그대로 믿어서 ‘이적요’가 ‘은교’와 섹스를 나눈 뒤 그것을 그대로 묘사한 것이라 착각한 것이다.)

    이 부분은 둘 사이의 복잡 미묘한 감정적 관계를 확연히 드러내는 대목이다.
    이하 영화 속 대사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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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우: 너무 아름다워서 그랬습니다.
    이적요: 뭐? 아름다워?
    서지우: 선생님 원고를 보는 순간 너무 아름다워서…
            그걸 그냥 반닫이 안에 묻어 두기가 너무 아까워서…
            세상에 내보내야 되겠다고…
    이적요: 지금 그걸 변명이라고 하고 있나?
            도적놈 주제에!
            어디 감히 아름다움을 입에 담아?
    서지우: 절 이렇게 만든 건 선생님이시잖아요.
    이적요: 뭐?
    서지우: ‘심장’ 대신 써주시겠다고 하신 건 선생님이셨어요.
            어차피 선생님이 하고 싶어 한 거였잖아요.
            그냥 장난삼아 소설 한 번 쓰신 거잖아요.
    이적요: 새경 준거다 이놈아.
            재능도 없는 놈이 하도 옆에서 껄떡 거리기에 불쌍해서 새경 준 셈 치고 그냥 써 준 거야.
    서지우: 그게 대박이 나서 큰 돈 벌리니까 배가 아프세요?
            ‘내가 썼다 내꺼다’ 하고 싶고? 전 불안해서 미칠 것 같다구요.
            이젠 내가 누군지도 모르겠어요.
            제가 서지운지 ‘이적요’ 껍데기인지 껍데기로 살면서 제가…
            제가 뭘 가졌는데요. 돈이요? 돌려드릴까요 그 인세?
    이적요: 주둥아리 닥치지 못해?
    서지우: ‘심장’은 대신 써줬는데 이번 건 뭐가 문젠데요?
    이적요: 그만 하라니까!
    서지우: 세상 사람들은요! 세상 사람들은 칠십 노인하고 여고생 관계
            그거 사랑이라고 하지 않아요. 절대!
            추문 이예요 선생님. 그거 더러운 스캔들 이라구요!
            어차피 선생님 이름으로 발표 못하시잖아요. 아시잖아요!
            국민 시인이 미성년자랑 섹스 한 이야기를 발표 못 한다구요! 
    이적요: 더러워?
    서지우: 선생님 늙었다구요. 
    이적요: 더럽다고?
    서지우: 선생님 노인이라구요. 왜 모르세요! 그걸!
    이적요: 개놈의 자슥아! 다시는 내 눈앞에 나타나지마,
            니 눈빛만 봐도 소름끼쳐, 목소리만 들어도 구역질 나고, ○놈의 새끼!
    ----------------------------

    그동안 ‘은교’ 와 ‘이적요’의 아슬아슬한 관계에 대해 드러내지 않았던 감정들이 밖으로 표출되는 장면이다.
    둘이 몸싸움을 벌이는 모습을 본 ‘은교’가 황급히 계단을 넘어 떠나고.
    늦은 밤 할아버지가 걱정 됐는지 ‘은교’가 찾아온다.
    문을 열어 주지 않는 할아버지에게 마음이 아프다며 매달리던 ‘은교’는 ‘이적요’가 낮에 ‘서지우’ 보라며 펼쳐 놓았던 책 ‘문학동네’의 펼쳐진 부분에 실린 ‘은교’를 읽게 된다.

    은교는 소설 ‘은교’ 에서 묘사된 자신의 모습을 상기한다.
    영화 속에서는 자세히 표현 되지 않았지만, ‘은교’는 자신이 ‘아름답고 풋풋한 소녀’로 묘사된 것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자신에 대한 사랑이 듬뿍 담긴 그 언어들, 그동안 잊고 있었던 자신에 대해 되돌아보게 된 것일까.
    체육시간, 한쪽 눈을 감고 바라 본 햇볕이 내리쬐는 배구 코트와 햇살이 비치는 구멍마저도 새롭게 보인다.

    그 소설은 ‘서지우’의 이름으로 발표되었기 때문에, ‘은교’는 그 감흥을 ‘서지우’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서지우’의 아파트 문 앞에서 기다린 ‘은교’는 ‘서지우’와 대화를 나눈다.
    이 대화는 사실 큰 의미가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럼, 선생님도 할아버지에게 다 얘기해요?’ 같은 대사는 의미심장하기는 하지만, ‘은교’와 ‘서지우’의 관계가 변하는 계기로 볼 수 있다.
    여전히 ‘은교’는 그 소설을 지우가 썼다고 생각하고 있다.
    (‘서지우’가 ‘은교’를 상상하며 섹스 하는 장면을 묘사한 글이라 생각한 것 같다.)
    버스 역에서 ‘은교’는 ‘서지우’에게 ‘소설 속에서는 제가 참 예뻐요, 고맙습니다’ 고 말한다.
    ‘은교’에게 키스를 하는 ‘서지우’, 거부하지 않는 ‘은교’.

    소설 ‘은교’로 이상 문학상을 받게 되었다고 전해 듣는 ‘서지우’.
    못 오신다고 말한 ‘서지우’의 말과 달리 ‘이적요’는 시상식에 참여해 축사를 한다.

    이적요: 나 ‘이적요’는 늙었습니다.
            늙는다는 건, ‘이제까지 입어 본 적이 없는 납으로 만든 옷을 입는 것이라'
            시인 ‘로스케’는 말한 적이 있습니다.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이,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소설 ‘은교’는 메마른 대지에 내린 단비 같은 소설이었습니다.
            이토록 아름답고 더 진솔하고 더 충만한 소설은 쓰지 못할 것입니다.


  • 시어도어 로스케 [Theodore Roethke, 1908 ~ 1963]

  • 시인 ‘이적요’에게 하나뿐인 제자 ‘서지우’는 ‘아픈 자식’ 같다.
    예술적 감성이 부족한데, 자신을 존경해서 오랫동안 뒷바라지를 해준 제자.
    딱 마음에 들지는 않아도 내치지는 못하겠는 제자다.
    영화상에서 ‘은교’의 예술가적 감성에 대해 논하고 있지는 않지만, 오히려 ‘은교’가 예술적 감성이 더 좋아 보인다.
    그런 제자를 위해, 그리고 자신의 호기심으로 상업소설 ‘심장’을 제자의 이름으로 출간했다.
    ‘이적요’는 그것으로 만족했지만, 제자 ‘서지우’는 스승이 상업적 성공을 질투한다고 의심한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스승 ‘이적요’를 자신의 틀에 가두려 한다.
    제자는 스승을 우상화 하고, 스승은 그것이 불편하다.
    그것이 ‘은교’로 인해 폭발하고, 둘은 애증의 관계가 되어 버린다.

    눈이 내리고, 쓸쓸히 커다란 창문을 닦는 ‘이적요’의 눈에는 여전히 밝은 햇살 아래 싱그럽게 뛰노는 ‘은교’의 환상이 보인다.

    ‘이적요’에게 ‘은교’는 어떤 사람일까?
    ‘이적요’도 자신이 노인이라는 것을 안다. 아니, 세상 사람들이 ‘노인’ 이라는 틀로 자신을 구속하려는 것을 안다.
    ‘은교’와의 아슬아슬한 관계를 통해 자신의 예술적 열정이 되살아남을 느꼈고, ‘사랑하고 싶다’ 라는 감정을 느꼈지만 스스로 자제했다.
    그런 감정을 예술적 정열로 승화시켜 소설 ‘은교’를 쓰는 것에 만족 한다.
    스스로 선을 긋고 넘지 않으려 노력한 것이다.
    하지만, 제자인 ‘서지우’는 소설 ‘은교’을 읽고는 ‘이적요’가 ‘은교’와 섹스를 했다고 단정해버린다.
    그리곤, 그런 관계가 불편하게 느껴지고, 그것에 대해 따지고 질타하고 싶은 것이다.
    ‘은교’에게 ‘이적요’는 어떤 존재일까? ‘서지우’는?
    사실, 이들의 관계를 쉽게 단정 짓기는 힘들다.
    정신적 사랑과 육체적 사랑을 분명히 구분 짓기도 힘들다.
    ‘은교’는 ‘이적요’에게서 정신적 위안과 행복감을 느꼈다면, ‘이적요’는 ‘은교’를 통해 젊은 열정과 남성적 욕망이 되살아났고, 행복감을 느끼게 되었다.

    물론, 나 역시 ‘은교’와 ‘이적요’의 관계를 보면서, 소녀 ‘은교’가 내 것도 아닌데도 마치 소녀를 늙은이에게 빼앗긴 것 같은 질투심이 일어났다.
    세상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노인이 소녀와 섹스를 한다는 것이 불편한 것인가, 아니면 노인과 소녀가 정신적 사랑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불편하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인가.

    ‘이적요’의 생일에 찾아 온 ‘은교’는 케이크와 선물을 내밀고, 머뭇거리던 ‘이적요’는 커다란 창문의 잠금 장치를 내린다.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둘이 단출하게 생일 파티를 즐기려는데, 고급 승용차를 타고 온 ‘서지우’가 찾아온다.
    선물만을 두고 가려고 했으나 ‘이적요’가 그를 불러 세우고, 화해의 의미로 술자리를 한다.
    ‘이적요’를 사이에 두고, ‘이적요’를 좋아하는 ‘은교’ 얘기와 ‘서지우’의 콤플렉스인 ‘공대생’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며 어느 정도 어색함이 없어질 무렵, 술에 취한 ‘서지우’는 그간 자신을 무시하던 문단 사람들을 얘기하며 인정받기 위해서는 무조건 성공하고 보는 거라며 허세를 부린다.
    성공할 거라며 술주정을 하는 ‘서지우’를 뒤로 하고 방으로 올라가는 ‘이적요’.
    ‘이적요’를 따라 올라 온 ‘은교’ 와 ‘이적요’ 사이에 묘한 감정이 흐르고, ‘이적요’는 ‘은교’를 가슴에 안는다.
    ‘은교’ 역시 ‘이적요’의 마음을 이해 한다는 듯이 그의 가슴에 안기고, 서로를 바라보는 표정에 묘한 기류가 흐르지만, ‘이적요’는 둘의 관계에 선을 긋듯 침대에 앉고, ‘은교’는 ‘이적요’의 이마에 키스를 하고 집을 나선다.
    그런데, 집을 나갔던 ‘은교’가 되돌아오더니 ‘이적요’의 방을 향하는 듯 머뭇거리다가 돌아서서 서재로 내려간다.
    이상한 소리에 잠에서 깬 ‘이적요’는 그 소리가 서재에서 나는 소리임을 확인하지만, 둘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밖으로 나가 사다리를 타고 서재 작은 바깥 창문을 통해 둘의 모습을 보는데, 둘이 섹스를 하고 있다.

    은교: 나 얼마만큼 좋아해요? 응? 얼마만큼 좋아하냐구요?
    서지우: 나 좋아해서 그런거잖아…
    은교: 외로워서 그래요. 나두.

    새벽까지 차에서 기다린 ‘이적요’는 ‘은교’가 집을 나가자, 자신의 차를 고장 내고 ‘서지우’가 타고 온 자동차 타이어에 펑크를 낸다.
    급한 약속이 있는 ‘서지우’는 타이어에 펑크가 난 것을 알게 되자, 평소 ‘이적요’가 타이어 위에 키를 놓는 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적요의 차를 몰고 집을 나서는데.
    차 소리에 당황한 듯 방을 뛰쳐나오는 ‘이적요’.
    ‘서지우’는 얼마 가지 않아 차량 이상으로 벽에 가볍게 충돌을 하고, 카센터에서 ‘이적요’가 일부러 차를 고장 낸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을 죽이려 했다고 생각하여 화가 난 ‘서지우’는 고친 차를 몰아 ‘이적요’의 집으로 향하며 흥분해서 앞지르기를 하려고 중앙선을 넘다가 사고로 죽음을 맞게 된다.
    ‘이적요’가 보낸 ‘서지우’를 죽였다는 메시지를 받은 ‘은교’는 정신없이 달려오는데…

    대학생이 된 ‘은교’는 서점에서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 ‘은교’를 다시 읽게 되고, 그 소설을 쓴 사람이 ‘서지우’가 아닌 ‘이적요’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적요’의 집을 찾아 온 ‘은교’.
    널 부러진 술병들과 파리가 날라 다니는 지저분한 주방.
    ‘은교’는 폐인처럼 누워 있는 ‘이적요’의 옆에 조용히 앉아 말을 한다.

    --------------------------------------
    은교: 우리 엄마… 발뒤꿈치가 다시 갈라지고 있어요. 나무 등걸이 처럼…
          (이적요의 발뒤꿈치를 본다.)
          발뒤꿈치를 또 칼로 긁어내고 있는 거예요. 더럽게… 구부리고 앉아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데, 번개처럼 생각이 나는 거예요…
          엄마한테 맞고 온 날… 기억하시죠?
          (이적요의 뒤에 눕는다.)
          그때 그 순간, 공기… 온도… 그 따뜻함.
          아무리 얘기를 해줘도 절대로 느낄 수 없는 게 있잖아요.
          할아버지가 얘기를 해줘도 다른 사람이 대신 쓸 수가 없는 거더라고.
          공대생이 거울이 다 똑같은 거울인줄 아는 공대생이 어떻게 알아…(흐느낀다).
          ‘은교’ 할아버지 거잖아요.
          ‘은교’ 소설 할아버지가 쓰신 거잖아요.(‘이적요’의 팔을 쓰다듬는다.)
          고마워요. ‘은교’ 예쁘게 써줘서.
          나는 요, 내가 그렇게 예쁜 아인 줄 몰랐어요. 그렇게 예쁜 아인 줄 몰랐어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멍청이처럼, 나 혼자 우쭐대느라고… 바보 멍충이처럼.
          (흐느끼던 은교가 일어나 앉는다.)
          (준비해 온 하얀 안개꽃을 이적요의 머리맡에 놓는다.)
          *안개꽃의 꽃말: 맑은 마음, 깨끗한 마음, 사랑의 성공
          (속삭이듯이) 안녕히 계세요.
          (자리에서 일어나 집을 나선다.)
    이적요: (대꾸 없이 푹 묻은 얼굴에서 눈물을 흘리며) 잘 가라, 은교야…
    --------------------------------------

    영화의 마지막 대사는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이적요’는 ‘은교’와 ‘서지우’가 섹스를 하는 모습에 질투를 느껴 일부러 차를 고장 냈다.
    ‘서지우’가 교통사고로 죽게 된 이유는, ‘이적요’가 고장 낸 차 때문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서지우’가 죽음을 맞게 되었다.
    ‘서지우’가 자신의 차를 몰고 나가는 소리에 당황한 듯 일어난 모습은, 질투심에 일을 꾸미기는 했지만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는 듯한 모습이다.
    세월이 지나, 대학생이 되어 소설 ‘은교’ 를 문득 다시 읽어 보다가, ‘별’ 이 다 같은 ‘별’이 아닌 줄 모르는 공대생이 ‘거울’이 다 같은 ‘거울’이 아니라는 사실을 몰랐을 거라고 느낀 ‘은교’.
    은교와 사랑을 나눈 그 이야기는, 제3자인 ‘서지우’가 느낄 수 있는 그런 감정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해 외로웠던 소녀 ‘은교’는, 자신과의 사랑을 꿈꾸며 아름다운 소녀 ‘은교’를 그린 그 누군가에게 감사했다.
    처음엔 그 사람이 ‘서지우’ 인줄 착각했지만, 진짜 그 감정을 느낀 사람은 할아버지 ‘이적요’ 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라며 감사하다고 말한다.
    ‘이적요’는 소녀를 붙잡지 못한다.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한 채 그녀를 떠나보낸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미세한 움직임과 표정으로 연기한 미묘한 감정을 글로는 전달하기 힘들다.
    ‘이적요’가 정신적 사랑과 육체적 사랑이 뒤얽힌 감정을 느꼈는지, ‘은교’가 단지 위로 받고 싶었던 것인지.
    영화는 자세한 설명 없이 관조적으로 이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최소한의 설명을 한다.
    다만, ‘은교’가 ‘이적요’에게 건네는 하얀 안개꽃의 꽃말이 ‘깨끗한 마음’ 이라는 것에서 유추하자면, 이 둘의 관계가 순수했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어떻게 느낄지, 무엇을 생각할지는 관객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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