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파이란 (Failan, 白蘭, 2001)(최민식, 장백지-장바이즈) Movie_Review

지금껏 본 수많은 영화중에 강렬한 기억으로 남는 몇 작품 중의 하나.
블로그 개설 전에 본 영화이기에 리뷰가 없는데, 오래된 이 영화가 계속 머릿속에 맴돌아서 리뷰를 작성하기로 했다.
아직 ‘한류’ 라는 말조차 없던 시절, 뜬금없이 중국배우 ‘장백지(장바이즈)’가 국내 최고 연기파 배우 중 한사람이었던 ‘최민식’과 함께 영화를 찍었다.
간혹 그렇게 샛별(?!) 처럼 등장한 예쁜 여배우가 영화에 출연하면 사람들이 주목하게 되고, 예쁜 외모뿐 아니라 연기도 제법 잘하면 스타가 될 수도 있다.
80년생인 ‘장백지(장바이즈)’가 당시 나이 21세(만 19~20세)의 꽃다운 나이에 출연했다.
그 무렵 중국영화 ‘소림축구 (Shaolin Soccer, 2001)’에 출연하기는 했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인지도가 없는 신인배우라 할 수 있는데, 중국 내에서는 이미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상태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 출연 이후 한국 내에서 장백지의 인기가 치솟았다고 볼 수 있겠다.
2002년 제작된 영화 ‘촉산전 (2001)’ 에서는 인형 같은 얼굴과 순수한 표정에서 나오는 신비한 매력이 절정에 이른다.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한국 내 뿐만 아니라 중국내(당시 홍콩)에서도 폭발적 인기를 누리고 있었을 것이다.
장백지가 1999년부터 영화의 주연배우로 활동했고(대략 만17~18세), 톡톡 튀는 매력으로 다양한 로맨스, 코믹 영화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겠지만, 국내에서는 ‘주성치’와 찍은 ‘소림축구’나 한국 배우들과 찍은 영화들로 알려진 상태.
굳이 비교하자면, 한국 배우 중에서 ‘김희선’ 과 상당히 비슷한 느낌의 연예인이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무튼, 그렇게 큰 인기를 누리다가 홍콩배우 ‘사정봉’과 결혼을 했지만, 결혼 전 ‘진관희’와 찍은 사진이 유출되면서 섹스스캔들이 터지고 결국 이혼을 하고 만다.
‘진관희’는 ‘장백지’뿐만 아니라 수많은 여자 연예인들과 찍은 섹스비디오 및 사진을 노트북에 저장하고 있었는데, 노트북을 수리하기 위해 맡겼다가 파일이 유출되었다고 한다.
‘장백지’의 섹스스캔들이 터졌을 당시 중화권 내에서의 충격이 상당히 컸겠지만, 순수한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는 한국 내의 팬들에게 그리고 개인적으로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청순한 이미지의 그녀가 실은 음란한 사생활이 있었고, 음부를 노출한 사진까지 찍었다는 것에 놀라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했을까.
원론적으로는 그런 사진과 비디오를 찍은 ‘진관희’가 나쁜 놈이지만,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와 달리 그녀가 성적 호기심이 왕성했다는 사실이 쉽게 인정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녀는 어떻게 스무 살도 안 된 어린 나이에 주연배우로 데뷔를 할 수 있었을까?
돋보이는 샛별 스타인 경우에는 간혹 그렇게 주연급으로 바로 데뷔를 하기도 하지만, ‘최민식’이 TV쇼 ‘힐링캠프’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그녀의 아버지 ‘후쉬융’이 중화권 폭력조직 ‘삼합회’의 서열 3위였다고 한다.
딱히 그렇다고 단정 지을 수 없지만, 아버지의 빽으로 주연급 데뷔가 가능했을 것이라 짐작해 볼 수도 있다.

20130124-장백지, 현상수배 아버지 빚 갚으려 대저택 팔았다
아버지 ‘후쉬융’이 3억을 사기치고 잠적하자, ‘장백지’가 아버지의 빚을 갚기 위해 11억에 상당하는 대저택을 내놓았다는 내용의 뉴스다.

이 영화 자체가 잘 만들어진 영화지만, 영화를 보고난 후 여타 관객들과 마찬가지로 청초한 매력을 선보인 ‘파이란(장백지)’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다.
특히, 영화 ‘촉산전’ 에서 환생하기 전 곤륜파의 장문 ‘고월’로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그 신비한 매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데, 1987년의 영화 ‘천녀유혼(?女幽魂, A Chinese Ghost Story, 1987)’ 에서 남자를 유혹하는 예쁜 귀신으로 등장하여 뭇 남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왕조현’의 신비한 매력과 맞먹을 정도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후 ‘장백지’가 출연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조금 접해보았는데, 왈가닥 이미지 보다는 말수가 별로 없이 청초한 모습으로 나오는 역할을 연기했을 때가 가장 매력적이다.
목소리가 약간 허스키 한데, 얼굴과 잘 매칭이 되지 않는 다소 걸걸한 목소리 때문에 말을 많이 하면 그녀에 대해 처음 느낀 매력이 다소 반감되기는 한다.

아무튼, 이 영화 ‘파이란’은 그녀가 청초한 모습을 보여준 작품으로, 화장기가 없고 아직 순수함이 남아있는 시골처녀의 모습을 거의 완벽하게 연기해내고 있다.
영화상에서 ‘파이란’은 78년생(장백지는 80년생)으로, 스토리상 22~23세 정도의 중국에서 온 시골아가씨다.
‘파이란’은 백란(白蘭)이라는 하얀 난초를 의미하는 한자어를 중국식으로 발음한 것이다.
성씨는 강(康)씨 인데, 일본 작가 ‘아사다 지로’의 원작소설 ‘러브레터’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강백란(康白蘭, kang failan,칸 파이 란)’의 이름을 그대로 차용하였다.
국내에서 유명한 소설 ‘철도원’은 작가 ‘아사다 지로’가 1997년에 펴낸 단편소설이며, 1999년에 일본에서 영화화 되었다.
단편집 ‘철도원’에 수록된 ‘러브레터’ 라는 단편소설을 국내에서 장편 영화화 하여 영화 ‘파이란(2001)’이 만들어지게 된다.
원작이 단편 소설이라 이를 장편 영화화 하면서 살붙이기가 필요했고, 일본과 한국의 문화적 차이에 의해 배경이나 상세한 스토리에서는 차이점이 있다.
원작 소설을 읽어보지 않아서 모르겠는데, 결말도 다르다고 한다.

이 영화를 떠올릴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영화의 후반부 ‘이강재(최민식)’가 그녀의 시신을 확인하기 위해 그녀가 살았던 동네로 가서 그녀가 살았던 세탁소에 들르는데, 세탁소 할머니는 그녀가 ‘이강재’에게 부치려다가 부치지 못한 편지를 건넨다.
부둣가에 앉아 그녀의 편지를 읽던 ‘강재’는 복잡한 감정에 큰 소리를 내며 절규하는데, 그 장면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인 그 통곡은 관객을 눈물짓게 하며 이야기가 절정에 다다른다.
개인적으로 최민식의 연기에 대해 극찬을 하게 된 중요한 포인트가 되는 장면이기도 하다.

혹자는 이 영화에 대해 너무 작위적이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파이란’이 어떻게 얼굴도 보지 못한 남자에 대해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있냐는 것이다.
‘강재(최민식)’ 또한 만난 적이 없는 여자에 대한 회한과 사랑의 감정이 어떻게 생길 수 있냐는 물음을 할 수 있다.
비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영화를 몇 번 곱씹어 보기를 권한다.
물론, 서로 얼굴도 보지 못한 남녀가 사랑의 감정이 생길 수 있느냐는 물음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어 보이지만, 이 영화는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한 감정적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
부모를 잃은 ‘파이란’은 친척을 찾아 한국에 오지만, 친척들은 이미 캐나다로 떠난 지 1년이 지난 후였다.
타국에서 고아나 다름없는 신세가 되어버린 ‘파이란’은 우연히 눈에 띈 직업소개소 간판을 보게 된다.
중국으로 돌아가 봐야 살길도 막막하기에 한국에서 일하며 돈을 벌고 싶지만, 여행비자로 방문했기 때문에 일자리를 구할 수가 없다.
직업소개소에서는 그녀에게 위장결혼을 알선하고, 서류상으로 결혼한 그녀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도 잠시, 건달들에게 끌려 술집에 팔려갈 처지가 되고서야 자신의 가련한 신세를 깨닫게 된다.
화장실에서 입안의 살을 깨물어 피가 나게 해서 요행히 폐병 환자인 것처럼 위장하여 위기를 모면하지만, 팔리듯 떠밀려온 시골 바닷가 마을의 세탁소에서 힘들게 번 돈은 꼬박꼬박 빚을 갚는데 써야한다.
(그녀가 건달들에 의해 팔려 다닌 이유는 위장 결혼의 대가로 선불을 받아 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병이 생기고 만다.
이 부분이 예전에 영화를 봤을 때 착각했던 부분인데, 그 당시 영화를 볼 때는 그녀가 정말 폐병이 있어 세탁소로 가게 된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영화를 다시 찬찬히 보니 처음 술집에 갔을 때 폐병 환자인 것처럼 위장했던 것이었다.
가족도 친척도 없는 ‘파이란’은 말도 안 통하는 한국에서 초라한 새 삶을 꾸려나가고, 비록 위장결혼을 한 것이지만, 남편 ‘강재’에 대한 묘한 감정이 싹튼다.
사실 그렇게 된 부분에는 ‘강재’의 절친한 후배이자 룸메이트인 ‘경수(공형진)’의 역할이 크다.
직업소개소에서 위장결혼을 알선할 때 개입한 것이 ‘경수’이고, 빨간색이 촌스럽다며 전해주라는 ‘강재’의 목도리를 그녀에게 건네준 것도 경수였다.
그녀를 팔기 위해 시골로 함께 내려갔던 것도, 그녀를 세탁소에 넘긴 것도 경수였다.
영화 후반부에 ‘강재’가 ‘경수’의 자취방에서 보게 되는 바닷가에서의 그녀의 모습이 담긴 비디오테이프도 경수가 찍은 것이다.
경수는 아무생각 없이 강재가 그녀에게 잘해주는 것처럼 그녀에게 거짓말을 했고, ‘파이란’은 ‘강재’가 자신에게 매우 친절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파이란’에게, 비록 가짜로 결혼을 한 것이지만 ‘강재’의 존재는 유일하게 의지할 사람이고 ‘삶의 희망’ 같은 존재가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파이란’은 용기를 내어 자신의 감정을 담은 편지를 쓰지만 그 편지는 ‘강재’에게 전달이 되지 않는다.
(아마도, 용식의 사무실에 배달되었으나 ‘강재’에게 전달되지 않았고, 그녀의 죽음 이후에 ‘용식’이 관련 서류를 ‘강재’에게 넘겨줄 때 그 봉투에 함께 넣어진듯하다. ‘강재’는 그녀의 시신을 확인하러 가는 기차 안에서 그 편지를 읽게 된다.)
정말 폐병에 걸린 ‘파이란’은 번 돈을 꼬박꼬박 갖다 줘야 하는 사장(?)에게 몇 개월 치 빚 갚는 것을 미뤄주면 병을 고칠 수 있다고 부탁하지만 거절당하고 만다.
‘파이란’은 서울로 상경해서 ‘강재’가 일하는 비디오 가게를 찾아가지만, 때마침 단속에 걸린 ‘강재’는 경찰에게 잡혀가고 만다.
(비디오 가게 앞에서 망설이던 ‘파이란’ 앞으로 잡혀가는 ‘강재’가 스쳐 지나간다.)
아마도 그녀는 ‘강재’에게 도움을 요청하려 했을 것이다.
비록 서류상 남편이지만, 자신의 처지를 모른척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찾아갔던 것 같은데, 결국 둘의 만남은 어긋나고 만다.
한 달 후 ‘파이란’은 병으로 죽고, ‘강재’는 경찰서에서 그녀의 시신을 확인하러 오라는 연락을 받게 된다.
자신의 남편이 되어 주어서 고맙고, 친절하게 대해 주셔서 고맙다는 그 편지가 바로 ‘파이란’이 남긴 처음이자 마지막 ‘러브레터’인 셈이다.

‘파이란’과 직접 만나 이야기를 주고받는 장면이 없는 강재(최민식).
‘강재’는 삼류건달이다.
건달생활을 친구와 함께 시작했지만 친구인 ‘용식(손병호)’은 조직의 보스가 되었고, ‘강재’는 여전히 잔심부름이나 하는 신세다.
‘용식’은 ‘강재’를 홀대하고, ‘강재’는 배한 척 살 돈이 있으면 건달 생활을 끝내고 고향으로 내려가고 싶다.
‘용식’을 공격한 상대 조직원의 공격을 목격한 ‘강재’가 간신히 ‘용식’을 구하지만, 화가 난 ‘용식’은 상대 조직원을 죽이게 되고, 겁이 난 ‘용식’은 자기 대신 ‘강재’에게 거짓으로 자수하라고 부탁한다.
아마도, 그렇게만 해주면 배 한 척 살 돈을 주겠노라고 했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1년 전 위장 결혼했던 여자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게 되는 ‘강재’.
그 여자의 시신을 확인해주는 볼일만 마치고 오면 경찰에 자수하기로 하고, 시골로 내려가는 기차에서 ‘경수’로부터 ‘파이란’의 사진과 편지를 건네받는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파이란’이라는 여자는 ‘강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여자였다.
하지만, ‘경수’가 건네준 편지에 담긴 ‘남편이 되어 주어서 감사합니다.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내용은 그에게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평소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고 홀대 받으며 살아왔던 ‘강재’에게 그녀의 그런 따뜻한 말들은 마음속 깊은 곳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감동이었을 것이다.
서류를 확인하기 위해 찾아간 경찰서에서 혹시나 자신과 위장 결혼한 사실이 들통이 날까 걱정이 되었는데, 생각과 달리 아주 간단하게 사망 확인이 끝나자 ‘강재’는 오히려 화가 난다.
‘파이란’이라는 때 묻지 않고 순수한 여자를 그토록 고생하게 만든 건달들과 사장, 어쩌면 자기 자신에게도 화가 나고, 나쁜 사람들만 가득한 세상에 대한 혐오감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죽음에 대해 아무 관심도 없고 무표정한 사람들의 태도에 강재는 알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녀에 대한 감정은 무엇일까?
불쌍하게 고생하다가 쓸쓸하게 죽어간 생면부지의 여자, 하지만 거짓이었더라도 서류상 남편인 자신에게 감사하다는 편지를 남긴 그녀의 마음씨는, 억압받고 착한 사람들에 대한 측은지심일지도 모른다.
그런 그의 감정은 그녀의 방 서랍장에 들어있던 부치지 못한 편지를 부둣가에서 읽으며 폭발하고 만다.
그저 조용한 시골에서 어부가 되어, 여우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자식을 낳아 알콩달콩 소박하게 살고 싶었던 ‘강재’에게 정말 소중한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를 ‘파이란’의 존재가 더욱 크게 다가오는 것이다.
‘강재’의 눈물은 단순히 자기를 막연하게 사랑해줬던 그녀에 대한 연애감정이라기 보다는, 뒤죽박죽 뒤얽힌 자신의 인생에 순수한 마음을 일깨워준 안타까움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런 복잡한 감정들의 표현은 ‘최민식’이라는 배우를 통해 매우 효과적으로 표현되었고, 이런 감정 선은 원작소설의 그것과는 다른 부류의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파이란’과 ‘강재’의 처지, 그리고 각자 입장에서 겪었을 미세한 감정들을 잘 읽어내면 이 영화가 더 깊이 있고 의미 있게 다가올 것이다.
어쩌면, 이 영화에 등장하는 ‘파이란’이라는 인물은 남성들이 꿈꾸는 판타지 속 여주인공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지고지순한 순애보의 여주인공 같다.
청순함과 가련함의 극치를 달리며, 약하고 가련한 이미지의 여자에게 보호본능을 느끼는 남자들의 판타지에서나 존재할지도 모르지만, 막상 영화의 스토리를 쫓아가다 보면 정말 현실에서 그런 상황에 놓인다면 누구나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등장인물의 감정 선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음미해 보면, ‘강재’나 ‘파이란’ 모두 현실에서도 있을법한 인물이라는 느낌이 든다.

물론, 영화는 영화일 뿐.
이 영화로 인해 지고지순하고 청순함의 대명사처럼 각인된 ‘장백지’였는데, 갑자기 터져 나온 섹스스캔들로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적어도 영화 속 장백지의 모습은, 20대 갓 넘은 청초하고 소박한 ‘파이란’의 모습 그 자체를 완벽히 보여주고 있다.

영화 속 ‘강재’는 64년생이고, ‘파이란’은 78년생.
서류상 나이 차이는 14살인데, 이때만 해도 결혼이민자가 많지 않던 시절이라 주로 중국 여성들이 위장결혼으로 불법 취업을 하는 사례가 생기기 시작하던 때인 것 같다.

이 영화에 담겨진 ‘파이란’의 이미지는 더 이상 ‘순수함’이 남아있지 않은 현대사회에서 지고지순한 여성상의 향수를 다시 불러일으킨다.
더 이상 젊은 여성들은 청순하지 않고, 지고지순한 사랑을 고리타분하다고 여길지 모른다.
‘파이란’이라는 캐릭터는 중국 시골의 젊은 처녀이고, 영악해진 세상에서도 여전히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다.
남자들의 로망을 환기시켜주는 캐릭터라는 점에서 다소 작위적으로 보일 수 있는 캐릭터지만, 분명 어딘가에는 아직도 그런 여자가 살아가고 있을지 모른다는 남자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인물이다.
인생막장 ‘강재’와 시골처녀 ‘파이란’의 만남은, 그래서 더욱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있는데, 그 때문에 ‘파이란’을 연기한 ‘장백지’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는 것 같다.

어떤 면에서는 영화 ‘건축학개론(2012)’에 등장하는 20대 초반의 ‘서연(수지)’의 느낌과도 비슷하다.
남자들에게는 그런 ‘순수함’에 대한 로망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 같다.


줄거리------------------------------------
이 영화의 이야기 전개 방식은 ‘강재(최민식)’와 ‘파이란(장백지)’이 서로 만나지 못하고 엇갈리며, 1년 전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전개된다.

‘강재’는 삼류 건달이다.
‘강재’의 꿈은 고향에 내려가 배 한척을 사서 조용히 사는 것이다.
건달 세계에 같이 발을 내디딘 친구 ‘용식(손병호)’은 조직의 보스가 되었지만, ‘강재’는 여전히 잔심부름이나 하는 신세.
그러던 어느 날 나이트클럽 앞에서 ‘용식’이 다른 조직 조직원의 습격을 받자 ‘용식’을 구하기 위해 달려든다.
‘용식’은 구했지만, ‘용식’은 화가 치밀어 올라 자신을 공격했던 깡패를 죽이고 만다.
‘용식’은 자기 대신 살인죄를 덮어 써 달라고 무릎 꿇고 부탁을 하고, ‘강재’는 망설이다가 그러겠다고 승낙을 한다.
‘강재’의 집에 경찰이 찾아오자, ‘강재’는 살인사건 때문에 온 줄 알지만, 살인사건이 아니라 1년 전 위장결혼 한 여자 ‘파이란(장백지)’의 사망소식을 알려온 것이다.

영화는 1년 전으로 돌아간다.
스물 갓 넘은 ‘파이란(장백지)’은 중국에서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고아가 되어버린다.
어머니는 피붙이가 없는 그녀에게 한국의 이모를 찾아가라고 쪽지를 남긴다.
이모를 찾아 한국에서 살고 있는 이모(친척)을 찾아온 파이란은 인천의 차이나타운에 도착하지만, 이모는 이미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는 것이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한국에서 살수도 없고, 중국으로 돌아가야 할 처지의 ‘파이란’.
인천에서 졸지에 고아가 되어버린 ‘파이란’은 거리를 거닐다가 직업소개소(인력소개소) 간판을 보게 된다.
무작정 들어간 ‘파이란’은 자신의 사정을 얘기해보지만, 직업소개소에서 도움을 줄 리가 없다.
그래서 ‘돈을 벌고 싶어요.’ 라고 하자, 불법체류자가 될 것이 뻔 한 그녀에게 일자리 소개를 해주지 않는다.
선뜻 그 자리를 나서지 못하는 ‘파이란’을 보던 직원은 그녀에게 머리를 풀어보라고 한다.

잠시 후, 직업소개소를 찾아온 ‘강재(최민식)’와 ‘경수’(강재의 절친한 후배이자 룸메이트).
‘강재’와 위장결혼을 해서 체류자격을 얻게 하고 직업을 가지도록 해준 것이다.
‘경수(공형진)’는 위장결혼의 대가로 받은 돈을 ‘강재’에게 넘겨주고, ‘파이란’을 하룻밤 즐길 여자로 소개시켜 주려 하지만 ‘강재’는 별로 관심이 없다.
서류상 부인이지만, 마누라라고 한번 보기라도 하라고 하지만, 관심 없다고 그냥 뒤돌아서 나가버리는 ‘강재’.
그래도 부인이니 두르고 있던 빨간 목도리를 그녀에게 주라고 ‘경수’에게 주고 떠난다.

‘경수’는 그녀를 술집으로 데려가 그곳 사장에게 넘기려는데, 끌려온 ‘파이란’은 손님들에게 폭행을 당하는 업소의 여자들을 보며 어쩔 줄 몰라 당황한다.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파이란은 화장실에서 자신의 볼 살을 씹어 피를 머금고, 다시 업소사장과 경수 앞에 가서는 기침을 하며 각혈을 하는 척 한다.
병든 여자를 데리고 왔다며 화를 내는 업소 사장.
‘경수’는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바닷가 근처 시골마을의 허름한 세탁소에 맡긴다.
젊은이들은 모두 도시로 떠나고 세탁일 같은 험한 일을 할 사람이 없는 그곳에, 비록 말은 안 통하지만 일손이 생긴 것이다.
창고방, 녹물이 나오는 수도.
그녀는 자신의 신세가 비참하지만, 다시 용기를 내고 씩씩하게 새 삶을 시작한다.

다시 1년 후의 ‘강재’.
그녀의 시신을 확인하러 가는 ‘강재’와 ‘경수’.
‘용식’이 넘겨준 서류에서 그녀의 사진과 편지를 보게 된다.
삐뚤빼뚤한 한글로 쓰인 편지.

“강재 씨에게.
결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강재 씨가 결혼해 주셨기 때문에 계속 일할 수 있습니다.
여기 사람들은 모두 친절합니다.
계속 여기서 일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두 친절하지만, 강재 씨가 제일 친절합니다.
나와 결혼해 주셨으니까요.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편지를 읽으며 ‘강재’는 피식 웃는다.
‘경수’의 말처럼 그녀가 ‘강재’를 진짜 자기 서방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헛웃음이 나온 것이다.
하지만 이내 ‘강재’는 착잡한 마음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비록 가짜 부부였지만 죽은 사람에 대한 예의라며 양복점에 들러 새로 양복을 맞춘다.
일단, 중간에 그녀를 세탁소로 넘길 때 관여했던 소개소 사장을 만나러 간다.
사장은 그들을 반기며 한시름 놓는다.
사람이 죽어서 이렇게 골치 아플 줄 몰랐다며, 그녀가 죽기 한 달 전쯤 찾아와 아프다며 ‘빚 갚는 것을 몇 달 미뤄달라고 부탁하러 왔을 때 부탁을 들어줄걸.’ 하는 후회를 한다.
하지만, 아직 못 받은 돈 얘기를 하며 제멋대로 죽었다고 막말을 하는 소개소 사장.

다시 ‘파이란’의 모습.
‘파이란’이 그 편지를 쓰게 된 시점으로 영화는 이동한다.
어느 날 불현듯 찾아온 공무원들은 그녀가 정말 ‘강재’와 결혼했는지 이것저것 확인하고 간다.
‘강재’가 배를 타는 사람이라 둘러대고, 세탁소 할머니는 ‘마누라 버려두고 고생시키는 그런 나쁜 놈들 혼내줘야 한다며 공무원에게 빨리 가라’고 재촉을 한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파이란’은 방에 들어와 남편의 존재에 대해 다시금 안도감을 느낀다.
비록 위장결혼이지만, ‘강재’가 남편이기에 그녀는 한국에서 살 수 있고, 덕분에 세탁소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파이란’은 강재에게 그런 감정을 담아 편지를 쓴다.
우연히 ‘파이란’을 만난 ‘경수’는 ‘강재’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는 그녀에게 ‘강재’도 그녀를 보고 싶어 한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녀는 ‘강재’가 자신을 매우(존나리) 보고 싶어 한다는 말에 기뻐한다.
(그리고 영화 후반부에 ‘경수’의 방에서 ‘강재’가 우연히 보게 되는 비디오는, 이날 ‘경수’와 함께 바닷가에서 찍은 것이다.)
그녀는 편지를 우체통에 넣었다가 후회하고는 꺼내려 하지만 꺼낼 수 없다.
비록 서류상 남편이지만, 생면부지의 남자인 ‘강재’에게 편지를 보내는 게 망설여지기 때문이다.
(‘강재’가 기차에서 읽은 편지가 바로 그 편지였던 것이다.)
‘파이란’이 가게에서 칫솔을 두개 사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부분은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모호하기는 하지만, 나름 해석을 해보자면, 그녀가 서류상 남편인 ‘강재’를 위해 칫솔을 하나 더 샀다고 볼 수 있다.
즉, ‘경수’의 거짓말로 인해 ‘강재’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착각하게 된 ‘파이란’은 그를 사랑하는 감정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20대 초반의 여성에게 사랑의 감정은 그렇게 시작할 수 있는 일이다.
사실, 영화상에서 이런 부분들이 좀 더 잘 묘사되었다면, 혹자의 말처럼 ‘생면부지의 남자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느냐’ 하는 식의 오해를 덜 수 있지 않았을까.
매번 자전거를 타고 지나쳤을 해변 모래사장에 들어간 ‘파이란’이 엷은 미소와 함께 바다 냄새를 느끼는 장면은, 그녀에게 사랑의 감정이 생겨났음을 묘사하고 있는 듯하다.
이 세상에서 의지할 사람 하나 없는 ‘파이란’에게 ‘강재’의 존재는 그렇게 연애의 설레는 감정과 함께 의지하고픈 대상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한 감정묘사가 좀 더 상세하고 길게 연출되었더라면, 이 영화에서의 ‘파이란’의 캐릭터가 더 훌륭하게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아쉬웠다.
다림질을 하던 ‘파이란’이 각혈을 한다.
처음 세탁소로 오게 되었을 때는 입안의 살을 씹어 거짓으로 그런 것인데, 정말 폐병에 걸려버린 것이다.
당황한 ‘파이란’은 쉽게 잠들지 못한다.

다시 ‘강재’와 ‘경수’의 모습.
경찰이라면 질겁하는 ‘강재’는 불안한 마음으로 경찰서에 들어가 사망 확인을 하는데, 걱정과 달리 너무 간단하게 끝나는 사망확인 절차에 화가 치밀어 오른다.
모두가 그녀의 죽음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사실, 비록 서류상 남편이지만 그는 왠지 모를 화가 치밀어 올라 경찰에게 시비를 건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경수: 어휴 씨발 진짜, 걔가 형 진짜 마누라냐? 어, 왜 열 내?
강재: 어쨌든 호적이 그렇잖아 이 새끼야.
경수: 맛탱이가 완전히 갔구만 참. 씨발!


다시 한 달 전의 ‘파이란’은 직업소개소를 찾아온다.
몸이 많이 아파서, 받는 돈 5개월만 참아주면 병이 나을 수 있다고 부탁한다.
하지만 사장은 그녀가 별로 아파보이지도 않는다며 한 달도 참아줄 수 없다고 한다.

책상 위에 놓인 ‘강재’의 사진을 보며 ‘파이란’은 마음속으로 말한다.
“당신은 항상 웃고 있군요.
지금 제가 얼마나 무서운지 당신은 아세요?
어쩌면 저 죽을지도 몰라요.”

‘파이란’은 용기를 내서 ‘강재’를 찾아가기로 한다.
예뻐 보이는지 거울을 확인하며 비디오 가게에 들어서려는 순간 들이닥친 경찰은 ‘강재’를 잡아가고, 둘의 만남은 그렇게 어긋나 버리고 만다.

‘파이란’의 시신이 들어오고, ‘강재’는 착잡한 심정에 사로잡힌다.
‘강재’가 어떤 심정이고, 왜 정말 그녀의 남편이라도 되는 것처럼 행동하는가.
후배인 ‘경수’는 ‘강재’를 이해하지 못한다.

아래의 포장마차 장면에서 ‘강재’의 심정이 가장 잘 표현되고 있다.

강재: 재수 없는 새끼!
경수: 누구? 나?
강재: 그럼 너지 이 씨발놈아. 여기 너 말고 누가 있어?
경수: 내가 왜?
강재: 참 좆같은 새낄새! 너 안주 왜 먹는데? 배고파서 처먹는 거냐. 아니면 몸 생각해서 처먹는 거냐?
경수: 아이 씨발! 형 왜 그래 오늘, 응? 왜 그래?
강재: 처먹어라, 처먹어, 씨발놈아. 저런 것도 씨발 먹고 살겠다고 뱃속에 꾸역꾸역 처넣고. 아휴~ 나, 싫다, 싫어.
어이 형씨, 왜 살어, 어? 
경수: 나 참, 씨발. 형같이 좆같은 인생도 잘 사는데, 내가 못 살 이유가 뭐요?
강재: 까불지마, 이 새끼야! 너 니 인생 나 다 알아, 어? 너 이 씨발놈아. 넌, 틀림없이 강재 투야! 알아?
경수: 그만해! 어? 그만~해! 형!
내 진짜 이런 얘기는 하고 싶지 않지만 내가 형처럼 호구로 사느니 이미 난 죽어~ 알아!
강재: 그래 이 씨발놈아 너 말 잘 했다.
나, 나 호구야. 옛날에도 호구구, 지금도 호구고, 국가대표 호구다 이 씨발놈아.
근데 너 아까 봤지? 그 병원에서 나자빠져 죽은 년.
근데, 근데 그년은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로 친절하고 고맙댄다.
근데, 이 씨발 나보고 어떡하라고? 어? 송장으로 나타나서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이 씨발? 어?
내 송장 델꼬 살으리? 어?
경수: 아 형 알았어, 알았어.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
강재: 내가 송장 델꼬 살어?
경수: 이강재, 아이~ 참. 아이~ 참 앉아, 앉아 앉아, 앉아
강재: 놔봐, 씨발놈아 내가 니 친구야? 씨발놈아 말조심해!
내가 호구로 보이지, 야 씨발놈아! 야 내가 호구로 보이냐?
다른 손님: 씨발 야 술 좀 먹자! 어? 예? 조용히 쳐 드세요~!
강재: 예, 알겠습니다, 이 씨발 놈아~

‘강재’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경수’ 역시 자기와 같은 인생을 살게 될꺼라고 한다.
자신은 그렇게 호구 같은 막장인생인데, 그런 자신을 세상에서 제일 친절하고 고맙다고 한 그녀의 죽음이 너무 측은하고 안쓰럽다.

이어, 화장터에서 만난 직업소개소 사장을 구타하는 장면에서는, 내내 죽은 사람에 대한 측은함 조차없는 비정한 사장에 대한 관객의 분노를 ‘강재’가 대신 응징해 주는듯 하다.

직업소개소 사장: 강재 씨 정말 연기 잘하네. 나도 진짜 남편인 줄 알았잖아, 어? 야 이제 다 끝났구만, 갑시다.
야, 그나저나 이년 빚은 어디에서 받지?
(강재가 사장을 발로 차며 구타를 시작한다.)
아니 강재 씨 왜 이래? 아 강재 씨! 아니 강재 씨!

‘파이란’의 유골을 바닷가에 뿌려주기로 하고, ‘용식’에게서는 ‘강재’가 마음을 돌릴까(대신 감방에 가는 것) 불안한 듯 전화가 온다.
그녀가 살았던 세탁소를 찾아간 ‘강재’와 ‘경수’.
왜 이제야 왔느냐며 한탄하는 할머니는 떠나는 ‘강재’에게 ‘파이란’이 전해주라며 남긴 편지를 건넨다.

세탁소 할머니: 파이란이 이거 자네 오면 주라고 나한테 맽긴 기래. 내 고만 깜박 했어!
경수: 얘 형한테 할 말 무지하게 많았나 보네! 안 읽어봐?
편지: 강재 씨에게.
이 편지를 강재 씨가 보시리라 확신이 없어 붙이지 않습니다.
이 편지를 보신다면 저를 봐주러 오셨군요.
감사합니다.
하지만 나는 죽습니다.
너무나 잠시였지만, 강재 씨의 친절 고맙습니다.
강재 씨에 관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잊어버리지 않도록 보고 있는 사이에 강재 씨 좋아하게 됐습니다.
좋아하게 되자, 힘들게 됐습니다.
혼자라는 게 너무나 힘들게 됐습니다.
죄송합니다.
당신은 항상 웃고 있습니다.
여기 사람들 모두 친절하지만 강재 씨가 가장 친절합니다.
나와 결혼해 주셨으니까요.
강재 씨 내가 죽으면 만나러 와 주실래요?
만약 만난다면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당신의 아내로 죽는 다는 것 괜찮습니까?
응석 부려서 죄송합니다.
제 부탁은 이것뿐입니다.
강재 씨 당신에게 줄 수 있는 것 아무것도 없어서 죄송합니다.
세상 어느 누구보다 사랑하는 강재 씨.
안녕…….

부둣가에 앉아 ‘파이란’의 부치지 못한 편지를 읽다가 울음을 터트리는 ‘강재’의 모습은 아주 강렬하게 관객의 마음을 울린다.
이 부분은 다시 봐도 눈물이 나는 명장면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
마치 사춘기 소녀가 감성어린 심정으로 낭만적이고 비극적인 연애편지를 남긴 것 같은 내용인데, 실제로 ‘파이란’이 20대 갓 넘은 여성이고 시골 처녀이기 때문에 순수함이 그대로 남아 있는 내용이다.
편지 내용처럼, ‘강재’가 서류상 남편이기 때문에 혹시나 남들이 의심할까봐 책상에 강재의 증명사진을 액자에 넣어 올려두었고, 그에 대한 간단한 신상정보를 외우고 있었던 ‘파이란’.
용기를 내어 편지를 썼지만 답장이 없었고, 용기를 내어 찾아갔지만 만남이 어긋났던 그 순간들.
병을 치료하지 못해 결국 죽게 되지만, 책상 위에 놓인 ‘강재’의 사진 속 웃는 모습은, 의지할 사람 없는 ‘파이란’에게는 정말 남편이라도 되는 것처럼 따뜻한 미소를 보인다.
‘경수’의 거짓말로 인해 ‘강재’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착각한 ‘파이란’은 점점 그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싹트기 시작하고, 그것이 그녀를 더욱 외롭고 힘들게 한다.
그녀가 죽은 후에야 그녀를 만나러 오겠지만, ‘강재’에게 그런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남기고 싶었던 ‘파이란’.

‘강재’의 울음은 그녀와 이루어졌을지도 모를 사랑에 대한 아쉬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관객들이 단지 ‘강재’의 울음을 그렇게 해석해 버리면 이 영화의 스토리는 ‘매우 작위적이다’ 라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영화화된 이 작품에서의 ‘강재’의 눈물은 그런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포장마치 장면에서 자신을 스스로 호구라며 울부짖었듯이, 삼류인생인 자신의 신세에 대한 한탄과 더불어 아직 순수한 감성을 가지고 있는 ‘파이란’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 그리고 그녀의 죽음에 대해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고 돈 얘기만 하는 사람들의 비정함에 대한 한탄이다.
그런 복합된 심정이 눈물이 되어 터져 나온 것이고, ‘최민식’의 훌륭한 연기와 감독의 연출력이 완벽히 조화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영화 내내 등장인물들의 감정에 대해 디테일한 설명이 부족하고, 그저 관찰자 같은 관조적인 입장에서 전개가 되기 때문에, 각색된 스토리와 감독의 의도를 완벽히 이해하기는 힘들며, 다소 왜곡된 기억으로 이 영화를 기억하고 있을 수도 있다.
등장인물의 감정변화를 몇 번 곱씹어 따라가다 보면 이 영화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인천으로 돌아오는 길.
나이트클럽 살인사건이 뉴스에 나오고, ‘용식’은 통장을 내밀며 ‘강재’에게 약속을 지킬 차례라고 하는데, 마음이 변한 ‘강재’는 거절하며 그냥 떠나겠다고 한다.
짐을 정리하며 ‘경수’가 잠깐 나간 사이에 용돈 몇 푼을 비디오테이프 사이에 넣어두려던 ‘강재’는 ‘파이란 봄바다’ 라는 제목의 비디오테이프를 발견한다.
‘경수’가 ‘파이란’을 우연히 만나 해변에서 찍은 비디오테이프.
‘용식’의 전화를 받은 ‘경수’는 다른 곳으로 불려가고, ‘강재’는 비디오 속 그녀의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짓다가 다시 울음에 빠지는데, 그때 누군가가 ‘강재’를 뒤에서 낚아챈다.
‘강재’의 변심에 화가 난 ‘용식’이 평소 ‘강재’에게 불만이 많던 부하(지대한)를 시켜 목 졸라 죽인다.
‘강재’가 틀어놓은 비디오 속의 ‘파이란’은 환하게 미소 지으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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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할만한 링크(리뷰)들:
20121224-[책]러브레터-아사다 지로(영화 파이란 원작)
20060202-파이란 (Failan) _ 2001
철도원 [Railroad Man, 鐵道員]
아사다 지로


스크린샷------------------

덧글

  • 몽몽이 2013/02/22 01:07 # 답글

    뒤늦게 이걸 보려다... 때마침 스캔들이 터져 충격받고 안 본 1인;;;
  • fendee 2013/02/22 01:16 #

    꼭 보시기 바랍니다. 스캔들 속의 연예인 장백지는 잊으시고, 영화속 캐릭터인 파이란에 몰입하시면, 오랜동안 기억에 남을 작품이 될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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