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나는 공무원이다 (Dangerously Excited, 2011)(윤제문) Movie_Review

음악에 대한 관심이나 열정이 그다지 없는 사람에게는 다소 밋밋하고 심심한 코믹 드라마일지 모르지만, 밴드 음악에 관심있고 레드제플린 같은 그룹이나 지미페이지 같은 기타리스트 이름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옛 향수와 함께 마음속의 미묘한 감정을 건드리는 영화.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문득 영화 '반칙왕(2000)' 을 떠올렸다.
그 영화의 주인공인 대호(송강호) 역시 평범한 직장인이었고, 상사에게 헤드락을 당하는 것을 더이상 참지 못해 단지 헤드락을 풀어 보겠다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변두리 레슬링 체육관을 찾은 것이 계기가 되어 레슬링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게 되는 이야기다.
대호는 레슬링을 통해 열정이 가득한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났고, 자아가 성숙하는 계기가 된다.
윤제문이 연기한 평범한 7급 공무원 한대희 역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락음악 같은 취미를 위해 위험을 감수할 생각은 없다.
음악하는 이들에 대한 냉소가 가득하던 한대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들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흥얼거리는 자신을 발견하고, 우연하게 베이스 기타를 맡게 되면서, 도무지 이성적으로는 락밴드의 멤버라는 합리적이지 못한 새로운 취미생활에 빠져들게 된다.
그의 말처럼 그것은 리스크(Risk)이다.
위험한걸 알면서도 왜 할까?
세계 경제위기, 실질임금은 제자리, 물가 상승과 집값 하락, 전세값 폭등, 명예퇴직과 실업자가 넘쳐나고 제 앞가림 하기도 힘든 세상에서 돈도 안되고 별로 인정도 못 받는 인디밴드 음악을 한다는 것은 위험성(Risk)이 너무 크다.
음악을 한다고 하는 사람 중에 성공하는 사람은 극소수고, 그나마도 대세를 쫓아 유행하는 스타일로 음악을 해도 흥행이 될까 말까다.
이유는 단 하나다.
좋아하기 때문에 하는 것.
하고 싶기 때문에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해보는 것이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조심하며 살던 한대희는 가치관의 변화를 일으키며 뒤늦게 음악에 대한 열정이 불타오르고, 결국 징계를 받게 되지만 여전히 그는 음악이 있어 행복하다.

그러고보니, 주인공의 이름이 옛날 베이스 기타를 치던 후배 이름과 똑같다.(성은 다르다)

밴드 음악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단지 소소한 에피소드 같은 심심한 코믹 영화 정도로 느껴지겠지만, 밴드 활동을 했거나 옛날 밴드 전성기 시절의 추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제법 소소한 재미들이 많은 헌정영화 같은 느낌이 든다.
비록 영화속에 등장하는 '불합격' 밴드의 노래가 다분히 요즘 젊은이들의 취향이고, 간간히 등장하는 다른 인디 밴드의 음악이 과거 록밴드 전성기 시절의 그것과는 다르지만, 큰 틀에서 봤을때는 많이 닮은점이 있다.
잡학 상식이 많은 한대희(윤제문)가 밴드 멤버들과의 술자리에서 세계 3대 기타리스트에 김태원이 아니라 제프벡이 들어간다며 아는척을 하고, 기타 파트인 민기(성준)는 그를 사대주의 락덕후(정확히 그 표현은 아니지만 그런 의미로)라고 한다.

록밴드 전성시절 우리는 미국의 록밴드들에 열광했다.
사대주의라면 사대주의 랄까.
하지만, 절대평가나 상대평가에 있어 당시의 한국락과 미국락의 수준차이는 분명 존재했고, 잘하는 사람을 더 좋아하는걸 사대주의로 치부하는건 맞지 않는것 같다.
뒤늦게 우리 나라에도 몇몇 유명한 밴드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송골매(1979 데뷔) 같은 밴드는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을 한 대표적인 밴드이기는 했지만, 좀더 락적인 색을 갖춘 밴드는 블랙홀(주상균) 쯤으로 볼 수 있는데, 블랙홀은 1989년에 데뷔.
요즘에 뒤늦게 예능 늦둥이로 활약하며 밴드가 다시 전성기를 맞은 경우는 부활(1986년 데뷔) 의 김태원과 백두산(1982년 데뷔)의 윤현상 등이 있다.
물론, 그 외에도 인지도가 낮아서 잘 알려지지 않은 다수의 밴드들이 있을 것이고, 여전히 음지(?)에서 밴드들은 계속 활동을 하고 있을테다.
어렸을때 책상 서랍에 있던 두개의 테잎이 있었는데, 들국화(1979~1987 추억 들국화) 앨범과 백두산의 1집 앨범이었던것 같다.
그때 락음악을 처음 접해보는 셈이었는데, 백두산 앨범은 영 재미없어서 안 들었고, 추억 들국화 앨범은 꽤나 오래 들었다.
스쿨 밴드 시절에는 타이틀 곡인 '사랑한 후에' 를 리바이벌로 연주하기도 했다.
사운드 면에서는 녹음 품질, 연주 테크닉, 보컬의 역량 면에서 미국 록밴드를 더 선호하게 되었는데, 물론 국내 보컬들도 나름의 특색은 있지만 아무래도 여러가지를 비교 평가하다 보면 본토인 미국락을(혹은 영국이나 유럽) 더 선호하게 되었다.
음악적 평가는 뒤로 하고 단지 사대주의라며 배척한다면 그래 좋다.
한국만의 특색 있는 음악을 하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음악 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목표중 하나일 것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것을 해서 '멋지다' 고 할만큼 훌륭한 연주를 할 수 있으며 멋진 곡을 만들어 내느냐 하는 것이다.
실력도 안되면서 사대주의 운운 한다면 손가락은 삼익인데 기타는 깁슨이요, 주둥이로는 게리무어와 임펠리테리, 잉위맘스틴 뺨따구 때리는 일이든 뭔들 못하겠나.
우선 실력을 갖춘후 그런 소리를 하자.

사설이 길었다.
아무튼, 주인공 한대희는 지극히 평범하고 지루한 직장인이다.
젊은애들 눈에는 그저 잔소리와 훈계나 해대는 꼰대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던 그가 음악을 통해 변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누구나 열정이 있다.
하지만, 위험(Risk)을 회피하려는 본능이 강하고, 안정적인 미래를 선택하려 한다.
좋아하는 것에 열정을 다하는 것은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하는 것이다.
비록, 그것으로 인해 힘든일이 생기더라도 감수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한대희는 평범함과 안정을 택한 평범한 현대인이다.
20대 초반의 대학생들은 졸업전에 해보고 싶은 것을 해보며, 자신들처럼 행동하지 못하는 어른들에게 비겁하다고 비아냥 거린다.
하지만, 그들도 취업의 문턱에 서게 되고 직장생활과 결혼 등 사회의 일원으로 귀속되면서 비겁해질 것이다.
한대희는 요즘 젊은이들이 부러워 하는 안정된 직장 철밥통 공무원이다.
쓸데없는(?) 열정으로 인해 자신의 밥그릇이 위험에 처하게 되는 것은 바보 같은 행동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위험하더라도 좀더 열정 가득하고 자신에게 솔직한 삶을 선택하려는 것이다.

초반에 밴드가 연습실 소음 문제로 골머리를 앓다가 중도에 보컬 사쿠(김희정)와 베이스 수역(권수현)이 탈퇴를 해버린다.
다른 멤버인 기타 민기(성준), 드럼 영진(서현정), 키보드 미선(송하윤)은 낙동강 오리알이 되고 만다.
경제적으로도 궁핍하지만 그보다도 밴드의 색깔이나 곡의 방향이 메인 보컬인 사쿠에게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밴드 활동을 하다보면 이런 일은 정말 많이 일어난다.
특히, 메인 보컬은 밴드의 얼굴마담인 동시에 밴드의 색깔을 결정짓는 경우가 많다.
밴드가 유명해지고 보컬이 뜨면서 보컬 혼자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 하다가 밴드를 탈퇴해버리면, 나머지 멤버들은 말그대로 낙동강 오리알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YB(윤도현밴드)의 경우에도 윤도현이 의리를 지키며 밴드를 지키고 있기 때문에 밴드가 장수하고 있지만, 매니지먼트 회사에서는 아직 유명하지 않은 밴드의 보컬만 빼오거나 또는 밴드끼리 메인 보컬 쟁탈전이 벌어지기도 하고 보컬이 혼자 독립해서 솔로 가수로 데뷔해버리기도 하는 일은 정말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만큼 다반사다.
밴드 자체가 유명해지기도 힘들지만, 그런 근본적인 구조 때문에 더더욱 힘들다면 힘들다고 할까.

키보드 주자인 미선 역의 송하윤이 계속 눈에 들어온다.
얼핏 한예슬 닮아 보이기도 하지만, 대체로는 안혜경(방송인)과 상당히 닮았는데, 밴드에 이런 여자 멤버 하나 있으면 남자 멤버들 간에 다툼도 일어날듯.

이하 스포일러 포함 줄거리-----------------
한대희(윤제문)는 마포구청(홍대와 신촌이 소속된) 생활공해팀 에서 근무하는 7급 공무원이다.
그의 신조는 언제나 냉철함을 잊지 말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대처하는 것이다.
잡상식에 박학다식 하고, 위험한 일에는 끼지 않는다.
남들은 공무원이 평범하고 지루하며 고리타분하다고 하지만, 그는 그런 평범함이 오히려 편하고 좋다.
그러던 어느날, 밴드의 악기 소음 때문에 민원이 들어오고, 출동한 한대희는 동네 부동산 업자와 얘기를 하다가 우연히 그 업자에게 이 밴드의 새로운 연습실을 중계하게 된다.
물론, 직접 중계를 한것도 아니고 그냥 그자리에 있었을 뿐이다.
그 밴드가 새로운 연습실로 옮긴 이후, 부동산 업자는 그들의 악기들을 훔쳐 사라지고 만다.
졸지에 악기도 잃어버리고 보증금도 떼인 밴드는 당시 현장에 있었던 대희에게 부동산 업자를 찾아내라고 협박한다.
우연히 구청장님이 지나가는 바람에 청장님에게 들키기 않기 위해 대희는 자신의 집 지하실을 그 밴드의 연습실로 내주게 된다.
'불합격' 밴드의 멤버들은 새로 마음을 잡고 연습을 하는듯 하다가 기타리스트인 민기가 써온 가사가 너무 유치하다는 이유로 보컬인 사쿠와 베이스기타가 탈퇴를 선언해버린다.
나머지 멤버들은 팀 해체를 결정하고 대희에게 지하실 열쇠를 돌려주지만,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묘한 감정이 생기기 시작한 대희는 아이들을 훈계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리스크를 감수하는 것이라고.
보컬은 민기가 하기로 하고 가사도 새로 열심히 쓰면 되지만 베이스 연주자는 어떻게 구하나.
주변을 서성이던 대희가 베이스 기타를 잡고 폼을 잡는 모습을 보고는 아이들은 대희에게 베이스 연주를 해달라고 부탁을 한다.
락음악 따위를 왜 하느냐며 조롱하던 대희는 어느새 베이스 기타에 푹 빠져 연주를 하고 있다.
락의 역사에 대해 공부하고, 사무실에서도 베이스 기타 연주를 연습하며 음악에 대한 열정을 키워가는데...
꼰대라며 그를 별로 끼워주지 않던 아이들도 점점 그를 멤버로써 인정해주고 친해지기 시작한다.
10팀을 뽑아 300만원씩을 준다는 콘테스트가 열리는 날.
갑자기 내린 폭설로 전 구청 직원이 총동원 되어 대희의 콘테스트 참석이 불투명해지지만, 열심히 눈을 치우고 헐레벌떡 달려와 함께 대회에 참가하게 된다.
아뿔싸, 하필이면 그 대회가 구에서 지원하는 대회이고 구청장님이 심사위원으로 등장한 것이다.
구청장님의 시선을 피하며 간신히 곡을 마치고, 다시 눈을 치우러 헐레벌떡 공연장을 나오다가 구청장님에게 들키고 만다.
결국, 3개월 감봉과 광고 현수막 철거나 하게 되는 징계를 받지만, 그런 그에게 웃어 보이며 손을 흔드는 아이들.
그리고, 침울해 보이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다시 환호하는 대희의 모습을 뒤로 하고 영화는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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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사고가 꽤 많지만, 전체적으로 담담하고 차분하다.
아마도, 윤제문의 캐릭터가 그렇기 때문인것 같은데, 영화 '반칙왕'에서 송강호가 보여주었던 약간은 블랙코미디 같은 분위기와는 다르게 전체적으로 가벼운 코믹물의 느낌이 강하다.
한가지 궁금한 점은, 그 이후 '한대희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것이다.
분명, 밴드 음악에 대한 열정은 불타오르는데, 인디 밴드 '불합격' 과 계속 같이 활동을 하게 되었을까?
아니면, 다른 직장인 밴드에 들어가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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