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크 스크랩) 일본여자가 쓴 한국여자 비판 (2009, 도다 이쿠코) Scrap_Link

두개의 링크를 붙인다.

한국여자들을 솔직하게 비판한 일본여자 도다 이쿠코

일본여자가 쓴 한국여자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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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링크는 책의 본문 내용을 거의 그대로 타이핑한 글인것 같다.
내용이 굉장히 길어서 읽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지만(게다가 중간중간 오타가 꽤 많다), 읽어보면 제법 도움이 될만한 내용이 있다.
읽으면서 느낀점은, 일본의 20년전쯤 부터 시작된 사회변화와 현재의 한국사회에 불어오는 변화가 상당히 비슷하다는 점이다.
즉, 일본에서 10~20년쯤 전에 일어났던 일들이 거의 유사하게 한국에서 지금 진행되고 있는것 같은 느낌이다.
특히, 개인주의나 이지메 문제등이 그러한데, 현재 한국 사회에서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만을 생각하고 공공 예절이나 타인을 무시하는 행위들이 많아지고 있으며, 학교에서 아이들의 버릇이 없어지고 있는데다가 왕따(일본의 이지메처럼) 문제가 점점 심각해져서 조직폭력배 처럼 변화하고 있는 점도 상당히 비슷하다.

분명, 한국 사람들은 외국 사람들과 자라온 환경이 다르고 심성이 다르다.
외국인들이 한국생활을 하며 한국 사람들에 대해 느낀점을 적은 글들을 읽으면서 느껴지는 점이 있다.
바로, 한국은 아직 문화적으로 미성숙한 사회라는 점이다.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대외적 위상은 높아졌지만, 마치 땅값이 올라 졸부가 된 사람들이 품위있는 사교 클럽에 들어가려고 애를 쓰거나 또는 돈많은 척, 잘난 척 소란을 떠는것 같은 모습이다.
정치 에서나 교육문제, 타인과의 관계들에서 아직 미숙한 점이 많이 드러나고 있다.
즉, 아직 성인이 안 된 미성년자가 성인 노릇을 하고 다니는 듯한 것이다.
글로벌 사회라는 큰 틀에서 보자면, 타국과 공존하고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고 배우려 하며, 우리 문화의 장단점을 잘 분석해서 변화해 가려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동안 억눌린 자존심을 회복하려는듯 너무 자랑만 하려고 하는 것이 문제이고,
현재 한국 사회라는 틀에서 보자면, 여기저기서 갖가지 문제점들이 튀어나오고 있는데, 그것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서 이리뛰고 저리뛰며 난리법석만 부리며 헤매는 모습이다.
과도기가 지나고 진짜 성인이 되면, 언젠가는 한국의 진정한 모습을 찾게 되겠지만, 과도기에 있음을 부정한다면 결코 그 벽을 넘지는 못할 것이다.

특히 일본인이 한국에 와서 일본과 비교하며 쓴 글들이 대부분인데, 일본과 한국인의 정서가 얼마나 다른지에 대해 적고 있음에도 일본과 한국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큰 틀에서 보자면, 외국인들의 삶과 한국인의 삶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
다만, 오랜 세월 쌓여온 문화적 환경이 조금씩 다르다 보니, 같은 사안에 대한 시각이 다른데, 개개별 사건을 보자면 서로 상당히 달라보이지만, 인간이 느끼는 공통의 감정들은 상당히 유사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읽어보면 재미있는 글들도 꽤 많다.
시간 여유를 갖고 천천히 읽으시길 바란다.

인상적인 부분 세군데 정도를 스크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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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장 외국인 남자도 할말이 있다
    그래도 나는 한국 아줌마가 좋다
  -남편의 ‘기’를 살리며 꿈을 키워주는 한국 아줌마들
  '아줌마'라는 호칭은 '아주머니'보다 친근감 있는 호칭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아주머니를 
결코 '아줌마'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때로 ‘아지매!’등, 텔레비젼 드라마에서 본 부산 사투리를
흉내내어 유머러스하게  부를  때도 있지만, 그  외엔  반드시 ‘아주머니’라고 부르려고 
노력한다. 거기에는 그녀들에 대한 내 나름의 존경과 애정이 담겨 있다. 일본인 중에 아줌마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불쾌한 기분이 들어 반드시 주의를 준다.
  그런데 아주머니란 어떤 개념인가?  특히 연령상으로 언제부터를 아주머니라고 규정하는가? 
결혼하면 무조건 아주머니가 되는 것  같은데, 미혼일 경우에는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특히 
아가씨와 아주머니와의 중간에 있는 연령층의 사람은 어떻게 불러야 하는가?
  예를 들어 가게  등에서 말을  걸 때는 ‘언니’로  하면 된다. 다만 이것으로는 일반명사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1970년대의 한국 유학시절에 아가씨와 아줌마의 중간적인 호칭으로 
'아가마'라는 단어를 만들어 냈다. 그 이후 이 단어를 한국 사회에 정착시키려고 노력해 왔지만 
아직도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아가마’어딘가 어감이 좋지 않지만 아직  내게는 이것보다
더  좋은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서는 아주머니보다  친근한 의미가 보다 강한  아줌마라는 호칭을 사용하기로 
하겠다. 그리고 여기에서 말하는 아줌마는  기혼자이면서 아이가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럴 
때 한국 아줌마는 비로소 더욱 힘을 발휘하는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나를 비롯하여 한국을 처음 방문한 외국인들은 한국 사회에서 볼 수 있는 ‘아줌마들의 풍경’
에 감동한다. 외국인의 눈에 가장  먼저 비치는 한국의 아줌마란, 가정주부에 앞서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아줌마이며, 각종 상점과 식당 등에서 일하는 아줌마다. 그 풍경을 한마디로 말하면
'생활력'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아줌마들의 강한 생활력에 감동한 뒤, 외국인들은 우려 섞인 말들을 한다.
  “남자들은 어디 있지? 그녀들은 모두 과부일까?”
  그러나 물어 보면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남편이 있어도  남편을  대신해서 일해 돈을 벌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남편은 뭘 하고 있는 걸까? 아무 일도 안 한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갈비집이나  식당에서 남편인 듯한 남자(아저씨)를 보아도 열심히 일하는 쪽은 
아줌마들이고, 아저씨는 잠자코 금고 앞에 앉아 있거나 곧 어디론가 사라져 보이지 않느다. 
  쉽게 말해 남편들은 놀고 있다.
  남자는 왜 놀고 있는가? 아줌마들이  놀도록 내버려두기 때문이다. 멋있는 남자, 즉 남편에게는
시시한 일을 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남편, 즉 멋있는 남자란 밖에서 일하기보다는 ‘서방님’이
어야 하기 때문이다. ‘서방’이란 한자로 쓰면 서재를 의미하는 ‘서방’이다.
  아줌마에게 있어서 멋있는 남자란 서재에서 책을 읽거나 앉아서 생활과 무관한 정치나 
철학(도덕)을 논하는 사람인 것이다. 따라서 그런 남자 중 하나인 자기 남편이 식당에서 주방을
들락거리거나 손님의 비위를  맞추고 돈을 주무르는 등의 시시한 일을 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그런 짓을 하면 ‘남자 체면’이 손상되는 것이다.
  때문에 아줌마는 남편이 언젠가는 그럴듯한  훌륭한 일을 하는 날을 꿈꾸면서 열심히 생활전선
에 일을 하고  있다.  바꿔 말하면, 한국 남자는 항상  꿈을 꾸고 있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의 자기 모습은  진짜 자기 모습이 아니고, 자신도 언젠가는  멋진 사람이 되어 보겠다는
꿈을 그 꿈은 사장이었다가, 정치가였다가, 경우에 따라서는 대통령이 되기도 한다.
  한국의 아줌마들은 남자,  즉 남편이 꿈을 꿀 수 있도록  해주는 반면에 일본의 아줌마들은 
남편의 꿈을 깨버린다. 일본의 아줌마는 언제나 남편에게 “그런 꿈 같은 것만 생각하면서 놀지 
말고 아르바이트라도 해보는 게 어때요!”라고 말한다.
  일본의 아줌마들은 남자가 노는 것을 극도록 싫어한다. 일본에서는 농민도 무사도 몸을 
움직여야 남자답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남자는 괴로워’이지만, 한국의 아줌마들은 
남자를 놀게 해준다. 한국의 남자는 죽을 때까지 즐겁게 꿈을 꿀 수 있다. 한국에서는 
‘꿈꾸는 서방님’이야말로 가장 남자다운 남자인 것이다.
  이상은 내가 1970년대에 처음 한국을 방문한  후 한국 아줌마에 대해 가졌던 이미지에 대한 
서술이다. 내가 지나치게 전통적인 것일까? 그러나 그로부터  20년 이상 지난 오늘까지도 나는 
처음 한국 아줌마들에게 가졌던 이런 이미지를 변경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한국에서는 지금도 그럴듯한  남자들이  직업없이 많이 놀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백수인 남자가 결코 비참해 보이지 않는다.
  “뭘 하고 있습니까?”하고 물으면 “아, 뭐, 백수지요”라고 말하면서 당당하게 웃는다. 
  놀고 있는 남자, 놀고 있는  남편을 그 정도로 당당하게  만드는 아줌마의 힘은 정말 위대하며
또 존경할 만하다.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한국 아줌마는 ‘남자의 기’를 결코 죽이지 않는다. 남자를 언제나 
격려해 주고 남자에게  언제나  꿈을 꾸도록 해준다. 그래서  아줌마가  건재하는 이상 한국은
언제나 꿈이 있고 미래가 있고 영원히 살아 숨쉬는 나라이다. 그러기에 그 호칭은 아줌마가 
아니라 존경심을 담아 ‘아주머니’여야만 하는 것이다.

    살아있는 전통 문화를 오늘에 전승하고 있는 아줌마들
  ‘문화’란 무엇인가? 학문적으로 말하면, 문화란 그 민족이 예로부터 전승시켜 오는 그 
무엇을 의미한다. 사람들이  예로부터  자자손손 전하고, 계승해  온  것들이 바로 문화의 
진수이다. 따라서 문화의 핵심은 사람들의 생활과 생활양식 그 자체이다.
  그러면 바로 그 생활의 중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먹는 것과 아이를 기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식사와 육아가 있어야만 가족이  유지되며 생활이 이어진다. 모든 문화의 출발점은 여기에
있다. 노래, 춤, 놀이 등에서 비롯되는 예술을 포함한 이른바 문화라는 것도 모두가 이 ‘생활’
을 기점으로 한다.
  ‘생활’을 기점으로 하는 문화가 누구에 의해서 이어지는가 하면, 그것은 여성에 의해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여성은 아이를 키움으로써 문화(즉 전통)의  계승자가 된다. 외국인이 타 국가, 
타 민족을 가장 잘  이해하려면 바로 그 나라의 여성을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여성은 그 민족의  문화,  그 자체이다. 여성이라고  하면,  한국의 경우 어머니와 
아주머니가 떠오른다. 아가씨는 생활인이 아니고, 또 육아와는 무관하므로 문화의 참다운 
전승자라고 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한국 아가씨와 아무리 사귀어도 외국인은 한국 문화의 진수를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한국에서는 오로지 아주머니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다. 언제나
아주머니와 친해지고 싶다고 생각한다. 앞에서 소개한 것처럼 나의 신조어인 ‘아가마’도 
좋지만 아가씨만으로는 한국 사회에 대한 이해가 어렵다.  아가씨에게는 한국 문화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아주머니 만세”를 외치는 것이다.
  한국 아줌마가 얼마나 멋진가는 한국 아가씨와 비교해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한국에서는
요즘 아가씨(젊은 여성)들부터 점점 문화의 향기를  잃어 가고 있다. 특히 우리 외국인들은 
한국 아가씨를 될 수 있는 한 피하려 한다. 고유한 문화를 느낄 수 없어서이다.
  그 결과, 우리  외국인들 사이에서는 한국의 고유한 문화를 느낄 수 있게 하는 한국 아줌마에 
대한 평가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아줌마에게 문화라니?”하고 고개를 갸웃거릴지도 모르나, 한국에서는 아줌마야말로 문화의 
살아 있는 실체이다.
  여기서 하나의 문화 형태인 예의, 혹은 매너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
  한국에서 생활하는 우리 외국인들 사이에서 자주 화제가 되는 한국 사회의 단골 문제점들이 
몇 가지 있다. 이전에는  교통문제가 그랬는데, 최근에는 소음이 주는 고통을 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서울의 명동은 오늘날  외국인에게는  소음의 지옥이다. 패션  매장과  구두가게 등에서
륨을 크게 높이고 스피커를 통해 시끄러운 음악을  경쟁하듯 내보내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패션 거리, 문화의 거리가 이제  세계적으로 추악한 소음 지옥으로  변해가고 있다. 외국에서
손님이 와도 창피해서 안내할 수가 없다. 명동뿐만 아니라 서울의 거리 전체가 소음의 지옥으로
화한 느낌이다. 소음과 함께 외국인들이 가장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아가씨들의 예의
부족  문제이다. 사람과 부딪쳐도 미안하다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타인에게 양보할 줄도
모르고, 양보를 받아도 감사할 줄 모르며, 택시 승강장에서는 태연히 새치기를 한다.
  엘리베이터와 빌딩의 출입문에서도 언제나 자기가 우선이다.  엘리베이터에서는  남이 있건 
말건 언제나 자기들끼리 큰 소리로 말하고 웃고 떠든다. 길이나 복도에서는 부딪히기 전에는
결코 양보하려 하지 않는다. 남을 배려하고 남의 사정을 고려해야 하는 도시인의 기본적인
매너가 그들에게는 전혀 없다. 정말로 안하무인이다.
  자기 중심적으로 남을 배려하지 않는 이러한 현상을 ‘공주병’이라고 하는 걸까? 한국 아가씨
들 사이에는 지금 공주병이 만연하여 사람들을 피곤하게 한다.
  그러나 아줌마들은 그렇지  않다. 적어도 한국 문화를 대변한다는 듯이 전통적 예의를 갖추고 
있다. 예를 들어  그들에게는 자신보다 연장자나 남성에게  양보를 하는 전통적 매너가 아직도 
남아 있다. 길에서 아가씨는 내게 몸을 부딪쳐도 태연하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줌마는 부딪치지 않도록 신경도 쓰고 부딪치면 반드시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할줄 안다.
  남의 양보를 받으면 웃는 얼굴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한다.
  그러고 보면 아줌마에 비해 한국 아가씨들에게는 미소가 없다.  모두 시무룩하게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다. 이런 얼굴은 ‘타인은 안중에 없다’는 전형적인 공주병 증세일까? 모르는 
사람에게도 웃는 얼굴로 부드럽게 대하는  것이 도시인의 기본 매너이다. 아는 사람에게만 
친절하고, 모르는 사람에게는 불친절한 것은  시골 사람들의 매너법이다. 그런 만큼 한국의 
거리는 지금 촌스러운 ‘시골 공주’로 가득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인생 경험이  풍부하고 ‘문화’의 향기를  듬뿍 풍기는  한국 아줌마가 좋다. 
  아가씨는 세상에  자기밖에  없다. 다른 사람은 나  하나만을  위해 존재한다고 부르짖는 듯한
한국 아가씨들은 ‘시골 공주병’과는 거리가 멀다. 세상은 모두 사이좋게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이어받은 ‘문화’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타인에게도 미소를 보여 줄 수 
있고 마음을 열어 놓는 친절도 가능한 것이다.
  한국에 아줌마가 없으면  이 나라는 사막이 된다. 전통  문화를  아직도 지니고 있는 아줌마에
의해 한국 사회의 예의와 매너, 즉 질서는 간신히 지켜지고 있다. 한국 아줌마, 파이팅.
 
 
    구로다 가츠히로
  산케이 신문 서울  지국장이며 논설위원. 1941년 오사카 출신.  한국인의 발상, 나의 서울 백서,
한국인 당신은 누구인가(한국어판),  한국인의 역사관 등 한국  사회를 날카로운 시각에서 분석한
많은 저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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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일본인 주재원의 고백>

  한국 여자를 애인으로 갖는 것은 두려워
  1998년 가을 현재, 한국에 주재하고 있는 일본인은  약 1만4천명, 그 중 남자는 약 5천명이다. 
  일본인 학교가 중학교 수준까지만 개설되어 있어서 교육 시설이 미비한 데다, 일본에서 1, 
2시간밖에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이유들 때문에  단신  부임자도 많다. 독신자가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최근에는 30대 ‘주재원 사무소장’도 있다고 한다.
  한창 나이인 청춘 남녀가 있는  직장에서는 온갖 로맨스가 꽃핀다. 외로운 독신의 일본인 남성,
그리고 아름답게 화장한 젊은 한국  처녀. 일본 남성은  일본 여성과는 또 다른 독특한 매력을 
지닌 한국 처녀에게 마음이 끌리지 않을 수 없다.
  도덕적인 사람은 “남자가 여자를 자기 마음대로 했겠지”하고 경멸하며 비난을 퍼부을지 
모르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이렇게 해서  한국  여자의 ‘무서움’과 접하게 되는 일본
남성이 생겨난다(재한 일본인 중 여성이 많은 데는 흥미깊은 이유가 있지만, 한국 여성과는 
관련이 없으므로 여기서는 다루지 않겠다).
  한 독신 주재원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30대인 이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일본에 남겨 
두고 서울에 부임했다. 그러나  독신 생활이 외로웠던 그는 직장에서  알게 된 한국 여성에게
마음을 빼앗기게 되었다.
  상대는 20대 후반의 독신 여성으로 코가 오뚝  솟은 미인이었다. 그녀에게서는 요즘 일본 여성
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절함이 느껴졌다. 혼자  식사하는  습관이 거의 없는  한국에서
남자 혼자 사는 생활은 그에게는 고통스러웠으니, 주말에 시장을 보거나 함께 식사해 주는
한국 여인을 거부할 만한 강한 힘이 없었다고 그를 꾸짖지는 말자. 그는 한일 양쪽의 여자
친구에게 미안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애매한 관계를 계속할 수 밖에 없었다.
  사건이 일어난 것은 관계가 시작된 지 수개월 후였다. 일본에 사는 여자친구가 보낸 ‘마음을 
담은’ 편지를 남자의 아파트에 놀러온 한국 여성이 우연히 발견함으로써 일이 시작되었다.
  일본어를 알고 있던 이 여성은 그에게 자기 외의 여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격노했다. 
“그때부터 지옥 같은 수개월이 시작됐다”고 이 일본  남성은 술회했다. 우선 무엇보다 
난처했던 것은 한국 여자친구의 “휴대폰 공격”이었다.
  “책임지라”는 상투적인 말로  시작된 이 협박들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연신 걸려 
왔다. 평일 대낮부터 죽인다, 회사에 말해버린다, 평생 복수하겠다는 등의 말이 휴대폰을 통해 
계속 들려 왔다.
  한국 여성은 오히려 업무 시간을 노려 전화를 거는 것 같았다. “부탁이니까, 업무 중에는 제발
걸지 마”하고 애원해도 막무가내였다. 결국 남자는 신경쇠약 증세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더욱이 이 남자가 불운했던 것은 한창  두 사람이 싸우는 도중에 가방 속에 있던 국제전화요금
청구서까지 발견되어 버린 일이었다.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부쩍 더
심해진 이 한국 여성은 그가 업무 시간에  걸 수 없는 ‘심야의 긴 통화’를 체크하여 
전화번호를 메모했다. 그러고는 일본의 여자친구에게까지 전화공격을 시작했다.
  현해탄을 사이에 둔 매일 밤의 한일 삼자 회담  “헤어져라”, “너나 헤어져라”하는 고성이 
오가면서 뒤틀릴 대로 뒤틀려 버렸다.  남자는 흡사 바늘방석에 앉은 듯했다. 그리고 갈등과 
마찰이 최고조에 이른  어느날 이 남성은 서울  시내의 한 대로변에서 예의 한국 여자친구에게서
습격을 받게 되었다.
  노상에서 그 남자의  목을 조른 후, 여자는 “책임을 져,  그러지 않으면 죽여 버릴 거야”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때  그 여성의 모습은 지금까지  자신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수라의 형상' 이었다고 한다.
  그는 그 여성을 밀치고 간신히 그 자리를  모면할  수  있었으나, 그녀는 노상에  쓰러진채 
"엄마"하고 목놓아 울었다. 아무튼 대단한 소동이었다.
  이 사건은 일본 남성이 일본의  여자친구에게 애원하여  삼각관계를 정리함으로써 해결되었다. 
  그후 그 한국 여성과 어떻게 되었는지는 문제의 일본  남성이 말하지 않아서 알 수 없지만, 
그가 "한 오백 년은 산 것 같다"고 말하는 것으로 미루어 볼때, 아무튼 한 고비는 넘긴 것 
같았다. 그런데 이 남성이 '한국 여성의 무서움을 알았다'고 하는 데는 후일담이 좀더 남아 있다.
  이 사건 덕분에 몇 킬로그램이나 빠졌다고 하는 이 남성. '고생도 나누면 가벼워진다'는 생각에
서 자신의 체험담을  일본인 동료들에게 털어 놓았다.  그랬더니  여기저기서 비슷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나만 고생한 것이 아니었군, 하며 다소 마음이 가벼워지기는 했지만 
그는 아직도 한국 여성만 보면 피하고 싶다고 한다.
  이 남성이 들은 이야기 중에서 가장  압권은 임기가 끝나 일본으로 돌아가려던 한 일본인 
사업가가 김포공항에서 패스포트를 난도질당한 사건이다.
  한 일본인 사업가가 한국에 체류하던 중에 사귄 한 한국 여성에 대해 책임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분노가 폭발한 여자가 가위를 들고 공항에 난입, 그의 여권을 산산조각 잘라 버렸다는 
것이 이 이야기의 요지다. 그 일본인이  그후 어떻게 귀국했는지는 모르지만, 거래 회사의 
환송객도 있었을 법한 공항에서의 ‘참변’을 생각해 보면 당사자로서는 얼마나 황당했을까 
싶다. 또 다른 이야기는 일본인 남성이 혼자 사는 아파트에 밤마다 찾아와서 큰 소리로 울며 
문을 두드리는 한국 여성에 관한 이야기였다.
 
    배우고 싶은 한국 남자의 한국 여자 조정법
  일본 남성들에게는 ‘자신의 창피를 여러  사람 앞에서 드러내지 않는다’고 하는 무언의 
약속이 있다. 자주 술자리를 같이 해도 남녀 사이에 관계된 추태를 스스로 이야기하는  법이
절대로 없다. 문제의 남성은 자신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술이 취해서 푸념을 한 것일 
뿐이다. 그러나 평소에는 '한국 경제의 전망'이나 '한일간의 진정한 이해 관계는 무엇인가' 등등
진지한 주제를 말하던 우리 일본 남성들이 사실은 남몰래 한국 여자의 무서움에 떨고  있었구나,
생각하니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런  이야기들은  성실한 한국 여성들에게서는 빈축을 살 만한 이야기들이다.  사실
그 이야기들을 확인해 보지 않는 한 모두가 사실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자신의 체험을 마치
다른 사람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처럼 말한 것일 수도 있고, 별것 아닌 이야기가 사람들 사이에 
전해지는 동안 재미있게 각색된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이야기의 신뢰성 문제는 별도로 하더라도, 한국에 사는  적지 않은 수의 일본인 
남성이 등골이 서늘해지는 이런 이야기를 마음속에 감추고 한국 여성에게 ‘두려움’을 안고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지 않다면 취재를 생업으로 하고 있는 것도 아닌 일본 남성들 
사이에서 이렇게 순식간에 여러 가지의 에피소드가 모아질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런 걸 알고 있으면, 위험한 일을 하지 않으면 되잖아요”라고 말하는 한국 여성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러나 알고 있으면서도 실수하는 것이 남녀간의 성 문제이다. 
  따라서 위험을 감수하고 일본 남성들은 한국 여성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문제의 일본인 남성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은 직후 이번에는 한국 남성에게 물어 보았다. 
  한국 여성은 일본인에게만 무서운 것인가? 하고.
  그러자 친구인 한국 남성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경험이 없지만, 신문에 보면 부부싸움 도중 칼부림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아요.
시장에서 아줌마들이 격렬하게 싸움을 하는 것도 드문 일이 아니구요.”그렇다면 전술한 
남성으로부터 들은 ‘공포스런  한국 여성’의 행태는 상대가 ‘기가 약한 일본인’이라는 
사실과는 관계가 없는 것이 된다.
  “한창 부부싸움을 하던 중, 화가 난 부인이 프로판 가스 꼭지를 틀어서 건물이 폭발했다”는 
등의 뉴스는 일본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지만  한국에서는 가끔 일어나는 일이다. 그런 
것을 생각해 보면, 일본인 앞에서 한국 여성이 보여 주는 행동은 오히려 ‘상당히 절제된 것은
아닌가?’하는 느낌마저 든다.
  자부심 강한 한국  남자들은 좀처럼 ‘한국 여자가 무섭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들도 인간이다. 그들이 한국 여성들에게 두려움을 갖고 있지 않을 리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남자들이 그런 두려움을 태연히 참고 있는 것은 왜일까?
  서울 주재 일본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 문제에 크게 관심이 있으며, 반드시 알고 싶은 부분이다.
   무서운 한국 여성의 조정법은 역시 경험이 풍부한 한국 남성에게 물어 봐야만 할 것 같다.
    외국인 남성의 사위살이, 친척이라는 미궁
  너무 가까워서 피곤한 한국의 친척들
  "친척이 항상 들끓어요. 그들이 집에 있는 음식을 계속 먹어 치워요." 입을 열자마자 이 
이야기를 한 사람은 한국에 장가온 미국인 남편이었다.
  "동양에서는 친척과의 연대가 강하다는 걸 듣긴 했지만, 그래도 남의 것을  마음대로 먹거나 
냉장고를 멋대로 여는 데는 깜짝 놀랐다."
  일본인 남편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한마디 말도 없이,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먹더군요. 일단  먹는 것을 발견하는 데 무엇보다도
빠르죠. 게다가 마음대로 냉장고를 열고는 "아니, 계란이 하나밖에 없잖아"하며 화를 내기도 해요.
그리고 그걸 프라이해서 먹어 버려요. 아무리 친척이지만 일본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예요."
  미국인과 일본인 남편이 한국에 살면서 무엇보다도  놀라는 것은 한국인의 친족관계다. 
  이야기를 좀더 들어 보자.
  "제일 놀란 것은,  일본에 갔다 왔는데 한국인 친척이 우리 아파트 방에 들어와서 떡하니 
기다리고 있었을 때였어요."
  "어떻게 방에 들어옵니까? 친척 분이 열쇠를 갖고 있나요?"
  "관리인이 들여 보낸 것 같아요. 늘 오니까 얼굴이 익어서."
  "그러니까 친척이라고 해서 열쇠를 줘 버린 거네요. 한국의 친척은 정말 가족 같군요."
  "가족이라고 해도 그렇죠. 체면을 전혀 안 차려요. 선물을 줘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 안 해요. 
  오히려 왜 더 좋은 걸 사오지 않았느냐, 왜 한 개만 사왔느냐 불평을 하죠. 참을 수 없을 
정도예요." 다른 미국인 남성은 또 이렇게 말했다.
  "우리 부부는 36평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언제부턴가 친척이  와서 살게 되었지요. 방이 남지
않느냐면서. 처음엔 참았지만, 좀체 나가려고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용기를 내어 말했더니, 
너희는 둘밖에 없으니까 원룸이라도 빌리지 그러냐는 거예요. 내 집인데, 왜 내가 나가야 해요?"
  미국인에게는 아무리 친척이라도  자기가 아닌 한 모두  '남'이다. 또 일본 사회에서는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 사회생활을 하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인 남편에게는 다음과 같은 일도 참을 수가 없다.
  "내가 일에 지쳐 돌아왔는데 친척이  와 있었어요. 오는 것 자체에는 이미 익숙해져 있지만, 
12시 넘어서까지 가지 않고 나중에는 차로 배웅해 달라고  하는 데는 할 말을 잃었어요. 아내는 
언니와 형부의 명령을 거스를 수가 없구요. 밤중만이  아니에요. 일요일  아침 6시에도 불러내요. 
  큰 책상을 실어야 한다면서. 택시를 타고 당신이 오라고 하면, 자신은 택시값이 아깝다고 해요. 
  내 몸보다 돈이 더 중요하다는 건지, 원."
  한국 여성과 결혼한 외국인 남성들의 한국 친척에 대한 이야기는  끝도 없다. 일본인 남편이 
마지막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한국인도 지나치게 밀접한 친척 관계에 피곤을 느낄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처는 친구에게 
남편이 일본인이라 친척 상대할 일이 없어 편하다고 말하곤 하거든요.”
 
    예의바르지만 남 같은 일본의 친척
  일본의 경우는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친척을 만나지 않는다.  추석이나 정월, 그리고 관혼상제 
때 만나는 것이 고작이다. 사이좋은 형제라도 전화로 안부를 묻는 정도다. 또 교통이 발달한 오늘
날에도 친척집이 며칠씩 머무는 일도 없어졌다. 그러나 한국인  아내는 그것이 쓸쓸하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내 친구는 부인을 데리고 1년에 두  번 정도 일본으로 귀국하는데, 본가에 가도 양친만 만난다. 
다른 친척들은 결혼식 이후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 그런데 양친의 집에 체재하는 기간을 
일주일 잡으면 한국인 처는  "더 오래 있고 싶다"고 하고, 반대로 일본인 어머니는 "좀더 빨리
갈 수 없냐"고 하신다.
  아무리 일본인 어머니라도 아들과 며느리, 또는 손자가 반가울  것이다. 하지만 일본인들이 
'남'과 함께 지내는 기간으로 바람직하게 생각하는 날짜는 4, 5일이 고작이며 그 이상은 피곤해
한다. 완전한 남이면 또 몰라도 친척이라는 존재만큼 신경쓰이는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일본인 어머니는 한국인 며느리라서 아무래도 신경을 더  쓰는데, 이에 비해 한국인 며느리는 
자유분방한 듯이 보인다.  자기 집도 아닌데 갑자기 청소를 시작하는가  하면, 뭐든지 잘 먹고 또
준 것만으로 모자라 스스로 더 가져다 먹기까지 한다. "잘 먹으면 좋지 않아요?"
  "그건 그렇지만 우리  어머니 말은, 25년 전 자기가 처음 시댁에 머물렀을 때는 긴장해서 밥도
잘 넘어가지 않았는데, 이 며느리는 너무 편안해 하는 것 같이 보이나 봐요. 하긴 처는 마치 자기
집에 있는 것처럼 편하게 행동하니까요."
  또한 일본인 어머니는 며느리가 자신의 팔짱을 끼는 것도 놀라워한다. 일본인은 부모 자식
간에도 손을 잡거나 껴안지 않는다.
 
    쌈짓돈이 주머니돈, 친척간의 돈 문제
  이렇게 진한 한국인의 친척 관계는 한국 사회를 잘  들여다보면  이해할 수 있다. 친척끼리 
불만도 있을 수 있지만  좋은 점도 있기 때문이다. 한 영국인 남자는자신의 아파트를 팔고 자기 
나라로 귀국하기까지 호텔이나 친구 집에 폐를 끼치지 않고 부인의 친척집에서 신세를 졌다고 
한다. 또 어떤 일본 남성의 경우 부인이 출산을 하자 부인의 이모가 가족을 데리고 1개월간이나
도와 주러 와서 정말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일본이라면 남편이 부인의 시중을 드는
것부터 가사까지 돌봐야 한다.
  다만 아무래도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은 친척간의 돈 문제이다.
  “형제에게서 돈을 빌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같아요. 게다가 빌려도 절대 돌려주지 
않아요. 친척간에는 지갑이 마치 하나인 것 같아요.”
  일본인 남편이 무엇보다도 놀라는 것은  처가에서 부인의 동생 학비와 결혼식 비용까지 대라고
하는 것이다. 일시적으로  빌리고 나중에 돈을 벌면 갚는 것이라면  몰라도 무상원조, 즉 그냥 줘
버리는 것은 그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일할 수 없는 노인인 장인, 장모의 경우라면 도와 
주는 것이 납득이  가지만, 건강한 신체를 가지고 이제부터 활발히 일할 나이인 동생을 결혼한 
누나가 도와 줘야 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또 돈이 없으면 소박하게 결혼식을 올리면 좋을 
텐데 돈을 꾸어서까지 호화판으로 결혼식을 하는 것은 더욱 이해가 안 간다.
  어떤 주재원 부인은 전화가 오면 화장실에 가서  받는다고 한다. 남편은 그때마다 ‘또 
친척에게 돈을  꾸어  주는구나’하고 생각한다. 얼마 전에는 실직 중인 친척이 매달 돈을  
꾸어 달라고 해서 부부간에 싸운 적도 있었다.
  “그 친척은 어디가 아픈 것도  아닙니다. 일본이라면 막노동이라도 할 텐데. 친척이 봐 주니까
정신을 못 차리는 겁니다.” 남편은 이제껏 참았던 것까지 터뜨려 싸움이 커졌고, 집 안의 물건이
부서지기까지 했다. 그런 일이 몇 번 있은 뒤로 그 부인은  남편에게 비밀로 하고 친척에게 돈을
빌려 주기 시작했다고 한다.
 
    화나면 악귀같이 변하는 다혈질 아줌마들
  한국 여성이 일본 여성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감정의 기복이 심하다는 것이다. 특히 화났을 
때의 한국 여성은 평소와는 너무나 달라서 흡사 낯선 사람처럼 보인다.
  “사소한 일로 갑자기 화를 내요. 그때는  눈빛도 음성도 달라져요. 마치 귀신이 든 것 같아 
정말 무서워요. 독일에도 히스테릭한 여성이 있지만 한국 여성은 그것과는 전혀 달라요.”
  한국 여성과 결혼한 독일 남성의 말이다.
  일본 남성도 역시 “한국인 아내가 갑자기 화를 낸다”고 말한다.
  “텔레비전 드라마 같은 데서도 한국의 아주머니는 언제나 화를 내고 있잖아요. 정말로 사소한
일에 너무나 감정적이 돼요. 냉정한 대화는 있을 수 없어요.”
  “아이에 대해서도 그런가요?”
  “화를 내죠. 한국인들이 쓰는, 그 특유의 회초리 있잖아요. 그걸로 때려요.”
  일반적으로 한국인들은 자기 아이를 애지중지한다고들  한다. 공공장소에서 제멋대로 굴어도 
야단을 치지 않아 외국인에게 그 점을 늘 지적받는데, 집 안에서는 양상이 다른 것 같다.
  “한국인은 공공장소는 태연히 더럽히면서도 자기 집 안은 아주 깨끗하게 하잖아요. 같은 
식이에요.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아요. 그러니까 아이가 밖에서 아무리 
시끄럽게 해도 화를 내지 않아요. 하지만 집 안을 어지럽히거나 시끄럽게 하면 불같이 화를 
내죠.” 구미의 어린이들은 어릴 때부터 공중도덕을 배운다. 일본  아이들도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는 소리를 귀가 따갑도록 듣는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확실히 한국의  어린이에 비해 
어린이다운 발랄함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실은 그보다 오래 전부터 구미와 일본의 
도시에서는 아예 어린이의 모습 자체를 잘 볼 수 없다.
  “애들은 매일  집사람과 같이 있어서 제 엄마를 닮는 것 같아요. 미친 듯이  격렬하게 우는 
모습을 보면 역시 한국 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자기 아이가 우는 모습이 일본의 보통 아이들하고  다르다고  말하면서, 그 일본 남성은 약간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요리 솜씨는 엉망이어도 재테크에는 열심
  결혼한 한국인 여성들은 가사노동에 어찌나  열심인지, 하루 종일 쓸고 닦는다. 그러나 일본 
여성과 달리 특별한 취미가 없다. 커튼을 만들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독서를 하는 등 취미
활동을 별로 하지 않는 듯하다. 오로지 텔레비전 보는 일에만 열중한다.
  “슬픈 것은 저녁밥을  먹는 즐거움이 없다는 것이에요. 식탁위에는  항상 같은 반찬이 놓이죠.
‘우리 것이 최고’인 것은 알겠지만 조금은 연구를 해도 좋은 것 아닌가요? 일본 여성이라면 
아무리 집안일을 싫어해도 외국 요리 한두 가지 정도는  할 수 있잖아요. 한국 가정의 요리에는 
전혀 융통성이 없어요.”
  그러고 보면 한국에서는 식당 반찬도 가정집의 반찬도  거의 같다. 처음엔 맛있지만 금발 
질려 버린다.
  “하지만 한국 부인들에게도 장점이 있죠?”
  “내가 피곤하다고 하면 보약을 지어 주기도 하고, 가족 건강에는 신경을 많이 쓰지요.”
  일본 여성이 남편을 위해 집에서 약을 달인다거나 남편에게 정력에 좋다는 음식을 해주거나 
하는 일은 절대 없다. 한국 부인들은 재테크에도 뛰어나다.
  “집사람의 관심은 오직 돈과 집에만 있는 것  같아요. 주식이다 뭐다 하면서 재테크는 열심히
하죠. 그런 면에서 일본 여성보다 생활력이 강한 것 같아요. 그렇게 좋아하는 친척과의 대화도 
들어 보면 돈얘기뿐이에요. 누구네 아파트 평수가 얼마냐 하는 것에는 굉장히 신경을 써요. 
친척 중 누군가 부자가 되어 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 같기도 하고. 뭐, 한국에서는 돈만 
있으면 법도 움직인다고 하니까.”
  무슨 이야기를 해도  결국은‘친척 이야기’로 되돌아온다. 외국인 남편이 한국인 아내에게 
가장 갭을 느끼는 것도 역시 친척 문제일 것이다.
  “저에게도 빨리 교수가 되라고 야단이에요. 그렇게 되면 친척들이 은행에서 돈을 빌릴때 
보증인이 될 수 있다나요....” 아아, 한국인의 친척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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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교. 일본 남자의 의식은 어떻게 변해 왔는가?
    달라지는 가사 분담의 개념
  ‘주부’라는 단어가 생긴 것은 10년 정도 전쯤인 것 같다.  집에서 가사를 책임지는 남편을 
의미하는 말로, 이 경우 경제적으로 한  가정을 지탱하는 것은 주로 부인 쪽이다. 남편은 밖에서
일하고 부인은 가정을 지킨다는 종래의 패턴이 완전히 역전된 형태이다.
  ‘주부’라는 단어가 사용되기 전에도 그런 부부들이 있었지만, 특수한 사정이 있는 경우여서 
예외로 쳤다. 그러므로 ‘주부’라는 단어가 널리 사용된 것은 가정 내에 이런 선택도  있을  수
있음을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추세를 반영한 것이라고 하겠다.
  내 친구 중에도 ‘주부’가 있다. 그는 47세의 ‘잘 나가지 않는’ 음악가이다. 39세인 아내는 
통역사와 번역가로 일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은 편인 그가 가사를 
담당하게 된 것일 뿐이다. 그런데 부인이 집에 있는 시간에도  부부가  함께 식사를 준비하거나
빨래를 하거나 하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웠다. 그는  완전한 전업 주부가 아니므로 밖에서 
일할 때도 있다. 그런 때는 부인이 아이들과 함께 집에서 지낸다.
  맞벌이를 하면서도 남편이 가사를 잘 맡아  하는 친구 부부도 있다. 이 40대 후반 부부의 경우,
부인이 가사를 처리하는  방식이 대충대충이어서 두 번 손이  가게  되는데, 그럴 때면 남편이 
거의 도맡아서 마무리를 한다. 그 남편의 양친도 맞벌이  부부여서 서로 협력해서 가사일을
해왔기 때문에 그도 남자가 집안일 하는것을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잘하고 못하고는
적합과 부적합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도 인기 있는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는 ‘나의  주부생활’이라는 수필에서, 
“결혼하고 2년째쯤 되었을 때의 일인데, 나는  반년 정도 ‘주부’노릇을 했던 적이 있다. 
그때는 이렇다 할 일도  없이  극히 평범하게 하루하루를 보냈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반년이 내 인생에서 가장 멋진 한 페이지였던 것 같다. 나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말하자면, 세상의 남자들은 일생 중 적어도 반년이나 1년 정도는  주부 역할을 해 보아야만 
하지 않을까 한다”라며 주부 역할을 예찬하고 있다.
    부부가 같이 돈벌어도 가사노동은 여자의 몫
  일본의 경우  맞벌이는 1960년대부터 증가해 왔는데, 부인이 일을 갖고 있더라도  가사는 
부인 몫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사고방식이었다. 가령 남자는 매일 집에 있어도  가사노동은 
거의 하지 않았다. 자신이 보람을 느끼는 일을 하든, 자기만의 세계를 추구하는 예술가나 
연구가든, 집에 있는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가사는 여자의 일이며, 남자가  손을 대서는 안 되는
것으로 오랫동안 생각해 왔다.
  애초에 남자들은 가사의 노하우를 알지 못했다.
  1970년대까지는 여성이  기업에 취직해도 결혼하면 퇴사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결혼 후 
회사에 남으려고 해도 육아휴가는커녕 출산휴가조차 얻는  것이 어려웠다. 경제적인 면에서도 
남녀간 임금 차가 있고, 여자에게는 보조적인 일밖에 맡기지 않는 직종간 차별도 있었다. 여성이
결혼해도 계속 할 수 있는 일은 교사 혹은 공무원  정도였다. 아내가  집 밖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장을 얻기 어려웠기 때문에 가사에만 전념할 수밖에 없는 속사정도 있었다.
  남녀가 동등하게 교육을 받고 대학을 졸업해도  사회로 나오는 순간 차별을 받는 것에 대해 
여자들은 초조해 하고 있었다. 1975년에  ‘나(여자) 만드는 사람, 나(남자) 먹는 사람’이라는 
카피를 내건 인스턴트 라면  광고가   여성을 멸시하는 것이라고  비난의  대상이 된 것은,
그러한 여자들의 마음을 반영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때가 바로 세계 여성의 해로, 유엔이 
주최한 회의가 멕시코에서 열린 직후의 일이었다.
  집에 놀러 온 남자친구에게 여동생과 함께 라면을 끓여 주는 시시한 광고였지만, ‘나(여자) 
만드는 사람, 나(남자)  먹는 사람’이라는 문구가 잘못되었던  것이다. 여성단체는 이 광고를 
여자는 요리를 하고 남자는 먹는다고 하는 남녀의 역할 분담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크게 
반발했다. 규탄의 대상이 된 남자들은, 비난받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어 어리둥절
했었지만, 결국 이 광고는 방영된지 약 2개월 만에 중지되었다.
    남자의 가사 분담은 세계적 추세
  이렇게 여성측의 자아 선언도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아내가 일 때문에 밖으로  나가면 가사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그런데다 어린아이가 있으면 누군가 보살피지 않으면 
안된다.
  게다가 핵가족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가사를 맡길 수 있는 부모가 가까이 없는 가정도 많아
졌다. 따라서 남편이 집에 있으면 육아도 담당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실제로 주부임을 자인하는 남성이 가사를 담당하게 된 경위는  여러 가지로, 적극적 의미
보다는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맡게 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맞벌이를 하기 때문에 탁아소를
이용한다 해도 양육에 지장이 있다든가, 부인  쪽이 수입이 많아 남편이 퇴직했다든가, 남편이 
퇴직하여 부인이 가계를 지탱하지 않으면 안되게 된 경우 등 그 이유는 실로 다양하다. 어떤
부부는 어느 쪽이 가사에 적합한지 고민하다가 남편 쪽이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고 
한다.  젊은 세대에 가사에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남편이  증가하고 있는 것은, 여자가
경제력을 갖고 있는 구미의 예를 보아도 당연한 흐름이다.
  그러나 현재도 통계적으로  보면 남편의 가사 참여는  매우 적은 것으로 나타난다. 1988년 
판의 ‘국민생활백서’에 의하면, 일을 가진 남성의 가사 시간은  20대에서  50대까지 어느
쪽도 평일은 10분 이하로, 아내의 입장에서 보면 전혀  안 하는 것과 같은 비율이다. 그 내용도
쓰레기를 내놓는다, 이불을 갠다, 덧문을 열고 닫는다 등으로,  본격적인 가사노동이라고 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30대 남자가 일요일에 34분 정도 가사에  참여하는 것이 남자들의 가사 참여시간 중 최장 시간
인데, 이 경우는 요리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60세 전후의 버려진 남자들
  남편들의 의식이 크게 변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은  중고년 세대이다. 그들은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출세하지 못한다는 말을 들으며 자란 사람들이다. 과거 그들은 일요일이면 취미삼아 
책상을 만들거나 집이나 전기제품을 수리하며 보냈다. 그러나 대량소비 시대, 테크놀로지 시대가
되자 남자가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더구나 일요일에는 회사의
접대 골프로 외출하든가 아니면 휴식을 위해 잠만  잔다든가 해서 남편의 존재 의의는 오직 돈을
벌어오는 것에 한정되어 버렸다.
  고령화 사회가 되어 정년 퇴직후 20년  정도의 시간을 부부가 함께 지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바로 그 순간 남자는 집  안에 자신의 자리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부인이 자신보다 
먼저 병으로 쓰러지거나 또는 죽어 버리는 경우도 있다.  부인이 없으면 속옷도 손수건도 양말도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고 자신의 주변 정리도 할 수 없는 이 남자들은 자식들에게조차 소외
당한다. 1980년대 이후부터는 중고년 이혼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집에서는 ‘밥, 목욕, 
잠’이라는 세 단어밖에 말하지 않던 남편을 아내는 내심 지겨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계 
꾸려나가기, 아이들 교육, 친척이나 이웃과의 교제 등 생활 속의  자질구레한  일을 남편과 
상의하려고 해도 일에 지친 남편들은 잘 받아주지 않았다. 남자들은 자신이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고 부인에게는 자유를 주고 있다는 생각으로 부인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 부인이 
이혼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더욱 남자들을 놀라게 한 것은 남편의  정년 퇴직과 함께 이혼을 요구하는 부인들이 출현한 것
이었다. 아이들을 다 키울 때까지 남편을 참아내고 있던 아내는 퇴직금의 반을  위자료로 받아 
자유의 몸이 되어 제2의 인생을 새롭게 살아가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60세 전후에 아내에게 버려진 남자들은 생활의 기반이 송두리째 붕괴되는 현실에 직면하게 
되었다.
    요리를 통해 새로운 인생 찾아
  이런 현실에 부딪치면서 정년 퇴직을 앞둔 남자들은 가정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부인이나 
아이들에게서 외면을 당하게 된다는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다. 60세 전후까지 회사가 전부였던 
남자들은 별다른 취미도 없고, 가까운 곳에  사는 친구도 거의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만
있는 이 남자들은 ‘커다란 쓰레기’로 불렸고 혹은 ‘젖은 낙엽’이라고까지 불리게 되었다.
  ‘젖은 낙엽’이란 정년  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 몰라서  집 안에서는 물론 장보러
갈 때도 부인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남자를, 찰싹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젖은 낙엽에 빗댄 
말이다.
  이러한 상황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까지 비화된 것은 부부 중심의 삶에서 부인이 먼저 쓰러지는
경우가 생기면서부터였다. 가사에 대해 전혀 모르는 남편은 자녀들뿐만 아니라 사회 복시 시설의 
도움을 빌리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남자의 요리’라는 제목의 잡지 특집
기사나 책이 나왔고, 자치단체도 요리교실 등을 고령화 대책 사업으로 내놓고 남편들의 자립을 
촉진하는 운동을 전개해 왔다.
  빨래나 청소는 전자제품의 도움을 받고 세세한 것에 얽매이지 않는다면, 가사노동도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요리의 경우는 스스로 하지 않으면 외식을 하든가 인스턴트 
식품이나 레토르트 식품을 사서 대체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것들이 대체로 나이 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들이 아닌 데다 또 비경제적인 것이 사실이다. 그뿐만  아니라  먹는 것은 생명과
건강에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이다.
  남자들이 요리에 흥미를 갖는 또 하나의  배경으로서, 프로 요리사의 기술이나  지식이 주목을
받게 된 것에도 영향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젊은 세대는 남자든 여자든 요리를 잘하는 사람이
멋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해 온 
남자들이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프로 요리사는 반드시 남자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집 안에서 하는 요리도 남자가 여자보다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해도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최근 중고년 남성을 대상으로 한 요리교실이 어디서나  성황이다. 이 과정을 통해 처음에는 
부엌칼을 사용하는 방법도 알지 못하던 남자들이 마침내 요리의 재미를 발견한다. 퇴직했으니 
시간도 충분해서 손으로 쳐서 만드는 메밀국수에 열중하기도 하고 요리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도
나오고 있다. 요리를 배움으로써 노후생활에 대한 불안이 해소될 뿐만 아니라 남는 시간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할 수 있는 등 요리를 배우는 것은
정말 기쁜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침대 광고에도, 침상에 누운 부인에게  남편이 식사를 마련해 먹이는 장면이 등장하고 있다. 
  남편이 만든 요리를 먹은 부인이 “오늘은 60점”이라고 말하면, 앞치마를 두른 남편이 조금 
실망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그러면 부인이 “조금씩 잘할 수 있게 되는 것은 나은거예요”라고
격려한다. 이 광고의 부부가 너무도 멋지다고 생각되는 것은 남편이 부인을 위해 가사를 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불황으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 남자들은 가정과 그 생활의 무대가 되는 집에 대해서도
관심을 높이고 있다. 어쩌면 남자가 가사 능력을 발휘하여 가족의 중심에 서게  되는  날도 그리 
멀지 않았는지 모른다. (후지이 히시코)
 

덧글

  • 머플리 2012/03/28 01:10 # 삭제 답글

    구로다 가츠히로<- 이 사람 일본우익을 대표하는 인간인데..
  • fendee 2012/03/28 11:05 #

    구로다 가쓰히로의 글이 우호적이어서 의외였는데, 글을 잘 읽어보면 논리가 좀 안맞고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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