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남의 일에 간섭해봐야 좋을 것이 없다. Miscellany

이웃집에 벙어리 아저씨가 산다.
저녁밥을 먹고 있는데, ‘살려 주세요’ 하는 여자 소리가 나서 일상적인 부부싸움 중에 나오는 소리인가 싶었는데, 가만히 듣자하니 가까운 곳에서 웬 여자가 외치는 소리였다.
‘아, 젠장’. 이런 일이 생기면 모른 척 하기 어렵고, 휘말리면 좋은 일 없는 일이 생긴 것이다.
나가보니, 이웃집 벙어리 아저씨가 웬 여자를 붙잡고 있는 것이다.
그 아저씨는 벙어리에 귀머거리라서 의사소통이 거의 안 되기 때문에, 무슨 이유로 그런 상황이 일어난 것인지 정확히 알기 힘들다.
아무튼, 우리 집에서 옆집 이층을 향해 쳐다보며 무슨 일인지 다그쳐 물어보았는데, 그 여자가 하는 말이 빨래를 해주러 왔는데 아저씨가 놔주질 않는다며 호소하는 것이다.
두 사람의 얘기를 다 들어볼 수 없는 상황이라(한쪽이 벙어리라서) 정확히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으나, 분명 강압적으로 여자를 붙잡고 있는 상황은 확실해 보였다.
동네 사람 두어 명이 더 나와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저 지켜보기만 할뿐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난데없이 무슨 빨래 얘기인지. 빨래를 해주러 왔다기에, 봉사단체에서 장애인 봉사를 해주러 왔다가 봉변을 당했나 싶기도 하고, 뭔가 관계가 있는데 둘러서 핑계를 대는 것 같기도 하고 정확히 알 수 없다.
평소에 이웃집 벙어리 아저씨와 왕래는 없지만, 그래도 그리 나쁜 일을 할 만한 사람은 아니라 생각했기에, 여자를 강압적으로 붙잡은 데에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만, 사람을 강제로 감금하거나 폭행하는 행위는 범죄이기 때문에 뭔가 행동을 취해야 할 것 같아서 그 집 대문을 열고 달려 올라가서 일단 자초지정을 들어보려 했는데, 아저씨가 상당히 흥분한 상태인데다 여자가 계속 빠져나가게 도와달라고만 말하고 있는 상황이라서 일단 아저씨 손을 잡아서 여자를 풀어줬다.
그 무렵, 나와서 지켜보던 동네 아주머니 한 분이 경찰서에 신고를 했다.
일단, 집을 나선 여자에게 이 남자와 무슨 관계냐고 물었지만, 자꾸 빨래 얘기만 하며 두루뭉술하게 얘기를 하면서 도망치듯 떠났는데, 경찰에 신고를 했으니 경찰이 도착했을 때 사건 당사자들이 모두 있어야 하지만 상황이 어수선해서 붙잡지 못하고 여자는 그냥 가버렸다.
아무튼, 여자는 그렇게 떠난 뒤 벙어리가 화가 났는지 자꾸 나더러 집으로 들어오라는 시늉을 하더니 한대 때리겠다는 듯이 시늉을 한다.
뭐, 그런 도발에 굳이 응할 필요는 없지만, 그냥 그대로 뒤돌아서 버리면 나중에 해코지라도 할 것 같아 찜찜한 생각이 들었는데, 마침 경찰이 도착했다.
경찰이 무려 네 명이나 출동을 했는데, 경찰이 왔지만 사건 당사자인 여자는 이미 그 자리를 떠나 연락할 방법이 없고 벙어리는 의사소통이 안 된다.
경찰은 내게 ‘옳은 일을 했다.’라는 식으로 말하고, 벙어리의 도발에 맞서지 말고 그냥 돌아가라고만 한다.
아무튼, 경찰이 떠난 후 벙어리가 우리 집에 찾아왔다.
그렇잖아도 그냥 그렇게 끝내버리면 앙심을 품어서 나중에 무슨 해코지를 할 것 같았는데, 다소 무례하게 남의 집에 막 들어오기는 했으나 이참에 대화를 해서 풀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얘기(?)를 들어봤다.
벙어리인데 귀머거리에 말도 하지 못하고, 게다가 글씨도 모르고 수화도 할 줄 모르니 사실 의사소통이 될 리 없다.
그냥 화난 얼굴이나 웃는 얼굴을 살펴보고, 몸동작과 손가락을 꼽아가며 의사소통을 해보는데, 여러 가지 정황에 얼핏얼핏 들리는 단어 같은 말로 얘기를 들어보려 노력을 했다.
대략 60%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인데, 대략 이런 것 같다.
(나중에 앞집 아저씨에게 들은 얘기와 종합해서 정리.)
그 여자가 자신의 애인인데, 돈도 300만원이나 줬고, 몇 번 같이 잤는데, 오라고 해도 4일 동안이나 안 와서 화가 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화가 나서 그 여자를 혼내려고(때리려고?) 했다는 것 같다.
그리고 왜 남의 일에 간섭을 했느냐, 내가 너보다 나이도 훨씬 많다, 앞으로는 그러지 마라.
뭐, 대략 그런 흐름의 이야기인 것 같았다.
(뭐, 그 외에도 이번 사건과 상관없이 쓸데없는 충고를 한 것 같은데, 그런 건 그냥 무시하고.)

시끄러운 소리가 나서 처음 나섰을 때, 40대 후반에서 5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그 여자는 얼굴이 넓대대 하고 허연 것이 그냥 평범한 아줌마는 아닌 것 같아 보였다.
이웃집 벙어리와 친하지는 않지만 안면이 조금 있기 때문에 그럴만한 사정이 있을 거라고 여기고 좋게 봐주려고 했는데, 나를 계속 위협했기 때문에 나도 곱게만 봐줄 수는 없는 상황.
이후, 앞집 아저씨를 우연히 만나서 얘기를 하니 평소 벙어리의 행실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는데, 앞집 아저씨에게 들은 얘기 까지 종합해서 정리하면.

평소 벙어리는 새벽이나 밤에 동네를 돌며 공병이나 휴지를 주워 돈을 모으는데, 술을 좋아해서 술집을 자주 다닌다고 한다.
그러다가 술집 여자와 사귀게(?) 되어 그 여자와 몇 번 잠자리를 했다고.
여자를 잡기 위해 아마도 통장을 맡겼고(앞집 아저씨의 증언), 내게 손짓발짓으로 하는 얘기로는 300만원을 줬다는 것 같다.
그 여자가 벙어리를 벗겨 먹으려고 처음에만 몇 번 만나고 도망을 가려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는 모르겠고, 정황상 여자가 애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벙어리의 착각일 뿐인 것 같다.
그런 여자에게 자신의 통장을 맡겼다는 것 자체가 참 이해하기 힘들지만, 뭐 그것도 그들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자.
아무튼, 자신이 오히려 억울한 입장이라는 식으로 호소를 하는 것 같은데, 그 여자 전화번호가 있느냐 물으니 지갑에서 그 여자의 전화번호가 적힌 명함을 꺼내준다.
그래서 그 여자를 경찰에 신고하라고 하니, 뭐라 뭐라 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 여자가 자식이 둘인데(아니면 남자가 둘이었다는 얘기인지), 하나는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그리고 경찰에 신고해봐야 자신은 벙어리라서 금방 풀려 날거라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 여자가 경찰에 잡혀갈 거라서 안 된다는 얘기인 것 같기도 하고.
정황상 그렇게 말하려는 것 같은데 정확히 알 방법이 없다.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도 알 수 없고.
그런저런 사정을 떠나서, 누군가를 감금하거나 폭행하거나 위협을 가하는 행위는 분명 잘못된 행위다.
문제는, 벙어리 입장에서는 의사소통이 쉽지 않으니 그런 심정을 표현하기 힘들었을 테고, 여자가 벙어리의 돈만 빼 먹고 상황이 곤란해지자 도망을 가려 했다면 벙어리 입장에서는 무척 화가 났을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아무튼, 집에 까지 찾아와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으니 오해나 불편한 감정을 풀렸을 테고,
나 역시 괜히 벙어리 아저씨 기분 나쁘게 해봐야 좋을 것도 없으니, ‘미안하고 다음번에는 절대 간섭하지 않겠다!’는 식으로 손짓발짓을 하며 말을 전달하려 했다.

괜히 남의 일에 간섭해봐야 좋을 일이 없다.
평소에 남 일에 간섭하는 걸 싫어하지만, 참 난감한 것이, 막상 이렇게 시끄러운 일이 발생하고 누가 도움을 요청하면 그냥 모른 척하고 쳐다만 보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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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G. : 벙어리 술주정. 2017-06-26 23:44: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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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머플리 2012/03/15 00:22 # 삭제 답글

    나없는 동안 별일이 다있었구먼...
  • fendee 2012/03/15 00:28 #

    오늘, 아니 12시 지났으니 어제 일어난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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