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을 다루는 법, 을을 다루는 법 Human

갑을 다루는 법, 을을 다루는 법.

갑을병정의 계약관계가 횡행하는 이 시대.
여러 복잡한 관계 속에서도, 1대1의 관계를 놓고 보면 가진 자가 갑이고 가지려는 자를 을로 보는 이분법적 관계가 형성된다.
그 핵심은 ‘돈’ 이고, 거래대상은 ‘서비스’인 경우가 많다.
물물교환 시대처럼, 현물 즉 개개별로 특유의 값어치를 지닌 물건이라면 갑을의 관계가 아니라 동등한 입장이 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현대화된 사회에서는 이런 직접적인 현물의 생산은 소수의 의해 이뤄지고, 대다수의 사람은 번잡한 도시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돈을 받는 노동자들이다.
그러다보니, 서비스를 제공받는 갑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돈을 받는 을의 관계가 형성된다.

‘돈’이 곧 권력인 시대.
제공받은 서비스를 얼마의 값어치로 매기며, 얼마를 쳐줄 것인지는 양자 간의 합의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사람은 넘쳐나고 돈을 줄 사람은 제한적이니,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무너져서 ‘돈’을 가진 사람이 곧 ‘갑’ 이요 ‘권력자’가 된다.

그렇다면, 서비스를 제공하고 수고비를 받아야 하는 을은 갑에게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이 문제를 생각하다 보니, 재미있게도 결론은 동일하게 연결되었다.
서로 ‘합의’에 의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돈을 받는 것이므로, 어느 한쪽이 애초에 합의를 하지 않는 것이다.

‘갑’이 ‘을’을 다루는 방법은 상당히 간단하다.
‘을’을 굶기는 것이다.
처음 서로 계약을 하기 위해 만났는데, 일단 을이 제시한 가격을 깎는다.
그리고 될 수 있는 한 최대한 깎아서 돈을 조금만 지불하려고 한다.
그런데, 만약 을이 가격을 낮추지 않고 버틴다면?
그럴 때는 ‘우리도 더 이상 양보할 수 없으니 딴 데 가서 알아보시오’ 라고 한다.
어차피 갑의 입장에서는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다른 을을 찾는 것이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간혹 다음과 같은 방법을 쓰기도 한다.
계약을 할 것처럼 거짓 행동을 하면서 계속 시간을 끄는 것이다.
을이 가진 기술이 그 사회에서 상당히 보기 드물고 중요한 경우인데, 갑은 을의 기술을 가지고 싶지만 가격을 더 낮추기 위해 머리를 쓴다.
을이 다른 곳과 계약을 하지 못하도록 일단 시간을 끌면서 설득을 하거나 또는 다른 곳과 계약을 못하도록 망가뜨리는 것이다.
가계약을 맺거나, 혹은 애매모호한 내용으로 작성하거나 법적 효력이 없다는 문구를 넣은 MOU(양해각서)를 작성한 뒤, 실질적으로 금전적 지원을 하지 않고 갖가지 서류와 기술증명을 요구하는 등 시간 끌기를 하면서 을을 괴롭힌다.
즉, 굶기는 것이다.
굶기는 방법은 아주 다양하다.
계약을 할 것처럼 행동을 하면서 계속 을에게 뭔가를 보여줄 것을 요구한다.
그러면, 을은 계속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가진 돈을 쓰게 되고, 다른 일도 할 수 없게 된다.
그렇게 시간을 끌다가(심한 경우 몇 년이나) 을이 제풀에 지쳐 항복을 하게 되고, 그 즈음에 헐값에 계약할 것을 요구하면 마지못해 계약에 응하게 되기도 한다.
이런 얼토당토 않는 일이 현재 이 시간에도 어디에선가 무수히 일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을은 어떻게 갑에 대항해야 할까?
사실, 방법이 없다.
돈을 가진 갑의 심기를 건드려 봐야 결국은 돈을 못 받을 뿐이다.
방법은 없는 걸까?
있기는 하다.
바로 갑이 쓰는 방법 그대로 굶는 것이다.
부당한 것을 요구하는 갑의 요구를 철저히 묵살하고, 간보기에 응하지 않고, 스스로 굶는 것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갑이 을을 다루는 방법은 굶기는 것이고, 을이 갑에게 대항하는 방법은 굶는 것이다.
물론, 무작정 굶는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을이 굶음으로써 갑에게 대항하려면, 대다수 을이 똑같이 굶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부당한 것에 대항하여 기꺼이 함께 굶으며 의리를 지켜야 효과가 있다.
부당한 조건을 제시하는 갑에 대항해 을들이 모두 거부하고 굶으면, 갑의 계약에 응하는 사람이 없거나 줄어들게 되므로, 결국 을의 조건을 받아들이는 갑이 많아지게 된다.
수요와 공급의 원리를 역이용 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을은 이런 싸움을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을들의 의견을 하나로 뭉치기 쉽지 않다.
‘조합’이나 ‘협회’ 따위를 만들어 힘이 약한 을들이 갑에 대항할 방법을 찾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이렇게 조직적으로 대항을 하지 못한다.
굶는 것이 두려워 스스로 노예가 되기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을이 갑에 대항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PS. (2016.02.29) 글 수정 및 참고 링크 덧붙임.
20160127-MOU는 '계약'인가 '신사협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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