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게서 잊힌 간도 Miscellany

‘구글 어쓰’로 지도를 보다가 문득 ‘간도’가 떠올랐다.
수년전에 ‘간도 반환’ 관련한 칼럼을 읽은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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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로 ‘간도’와 관련한 뉴스를 접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한일 간에는 최근에도 ‘독도문제’ 때문에 시끄럽다.
고문서에 엄연히 한국 땅으로 인정할만한 정보들이 있음에도, 억지 주장을 하면서 따지고 든다.
정치인도 국민들도 ‘독도’ 하면 다들 서슬 퍼렇게 관심을 보이지만, ‘간도’에 대해 말하는 이가 없다.

사실, 나 역시도 ‘간도문제’에 대해 나름 촉각을 세우고는 있지만, 정확히 어떤 일이 어떻게 벌어졌으며 어떻게 진행되어 가고 있는지에 대해 잘 모른다.
그래서 정보를 좀 찾아봤다.
링크된 내용에서 보면, 아주 상세하지는 않지만 개괄적으로 어떤 상황인지에 대해 간략히 설명되어 있다.

‘만주’ 지역에 청나라가 세워지면서, 백두산을 경계로 하여 조선과 국경선 문제가 야기 되었다.
숙종 38년(1712년)에 우리나라와 청나라의 경계를 구분하고자 ‘백두산정계비’를 세웠고, 그 비문에 서쪽으로는 압록강, 동쪽으로는 토문강을 분수령으로 하여 비를 세웠다고 기록되었다.
그런데, 청나라에서는 ‘토문강’이 글자 그대로 ‘토문강’이 아니라 ‘두만강’ 이라는 이상한 논리를 주장하며 간도 지역을 자기네 땅이라 주장한다.
청나라와 조선이 이 비문의 내용을 서로 달리 해석하며 영토분쟁이 계속 되었는데, 그 분쟁이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로 조선은 일본에게 국권을 빼앗겼다.
그리고  일본은 조선의 주장대로 ‘토문강’을 ‘토문강’ 이라 해석하여 청나라를 견제하다가,
남만주 철도부설권을 받는 대가로 청나라 측의 주장을 ‘토문강은 두만강’ 설을 받아들여 1909년 9월에 ‘간도협약’을 체결한다.
그리고 1945년 8월15일, 조선이 일제로부터 독립한다.
하지만, 남아있는 일본군들을 소탕한다는 명목으로 남북을 둘로 나눠 북쪽은 러시아가 점령하고 남쪽은 미국이 점령한다.
이후, ‘6·25 전쟁’이 발발하여 남북이 갈라지면서 한동안 ‘간도’ 같은 문제를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다.

그렇게, 간도는 잊혀져갔다.
지난 2009년, 간도협약 100주년을 맞이해서 ‘간도반환 청구소송’이 잠깐 이슈가 되며 정치권에서도 힘을 모으는 듯 했지만,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여전히 러시아와 일본은 ‘쿠릴 열도’를 두고 영유권 싸움을 벌이고 있고, 한일 간에는 ‘독도’를 두고 끊임없이 싸우고 있다.
그런데, 우리 위에는 북한이 있고,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에게 의지하고 살고 있으니, 이곳 남한에서 간도 문제를 언급하기도 애매한 위치에 있다.
만약, 북한이 영유권 문제를 들고 나왔더라면 다른 국면을 맞이했을는지 모르지만 북한이 그럴 리는 없어 보이고, 오히려 백두산 저쪽 편을 중국에 팔아넘기네 어쩌네 하는 형국이 한심할 뿐이다.
그렇게 점점 잊혀 가고,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다시는 찾아올 수 없는 땅이 되어 버릴 것이다.

이제 ‘간도’ 라는 명칭은 없어졌겠지만, 그곳은 낯선 곳이 아니다.
과거, 함경도에 흉년이 들어서 조선 사람들이 많이 넘어갔고, 현재의 그곳은 길림성 지역이며 조선족이 40% 나 살고 있는 ‘연변자치구’가 형성되어 있다.
그곳에는 ‘조선족’, ‘연변’ 으로 불리던 한국말 잘하는 중국 국적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국력이 약하니 땅을 빼앗기고, 빼앗긴 땅을 되찾기 위해 노력해야할 정치인들은 이제 좀 살만하니 서로 밥그릇 싸움 하느라 정신이 없다.


참고할 만한 글 링크:
간도협약 100주년, 간도반환 청구소송이 뭐길래?
http://blog.naver.com/kasstor?Redirect=Log&logNo=120089841799
간도협약 ...간도의 역사와 유래.. 백두산정계비
http://blog.daum.net/yelin-family/8685288



덧글

  • 침흘린고종 2011/08/05 18:18 # 삭제 답글

    좀더 공부하고 보면 사실 간도영유권 싸움에서 우리측 주장이 너무 빈약함을 알수 있습니다.
    우리한테 유리한 증거는 당초 목극등의 실수로 새겨놓은 토문강과 정계비뿐이지요.
    처음에 간도 지역에 봉금을 시작한 주체도 청나라이고 봉금을 푼 주체도 청나라입니다.
    두차례 감계회담(1885, 1887년)에서도 이중하는 처음(1885) 토문강을 주장하다가 두번째(1887)에는 두만강 지류인 홍토수, 석을수를 놓고 싸웠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나와있고 당초 정계비를 세울때 목극등이 실수로 두만강 지류가 아닌 송화강 지류에 정계비를 세웠는데 청나라에 보고해야 하나 하는 내용도 있구요.
    조선이나 청나라 모두 숙종때까지만 해도 압록강-두만강 국경에 대한 인식은 차이가 없었지요.
    그러던 훗날 고종때 와서 조선유민들이 두만강을 건너 봉금지역에 정착하면서 문제가 생기지요
    청나라에서 봉금을 풀고 조선유민들의 존재를 알아채고 치발역복시켜 청나라 백성으로 만들려고 했구요
    조선에서는 청나라에 조문을 보내 모두 데려가겠다고 했고 실제 데려오다가 몇십명이 도망친 사건도 고종실록에 있습니다. 후에 청나라가 청일전쟁에서 패하면서 세력이 약해지자 조선에서 이범윤을 간도관리사로 파견하고 실제로 간도지역에 대한 관리를 합니다. (청나라 입장에서는 무단침략이죠) 그러다가 조선이 일제에 넘어가고 일제가 간도파출소를 설치하면서 간도지역에 대해 대신 관리(사실 이때도 청나라 관병도 있었고 충돌이 계속 일어났죠) 하다가 간도협약으로 청나라의 간도지역에 대한 영유관을 인정(간도협약에는 간도지방을 넘겨준다는 말이 없습니다.)하고 분쟁을 끝이 납니다.
    애초에 발해이후 더이상 우리땅이 아니였던 간도를 우리가 다시 먹기에는 지금도 국력, 정당성, 증거 모든 면에서 딸립니다.
    이렇게 말하면 매국노, 식민사학자라고 하겠지만 아무리 좋게 보아도 간도는 결코 우리가 <억울하게 빼앗긴 우리땅>이 아니란 말씀입니다. 기껏해야 <먹고싶어 침발라놨다가 그대로 포기한 땅>일 뿐입니다.
    사실 청일전쟁후 청나라가 힘이약해 졌을때 무력으로 먹었더라면 그냥 우리땅이였을거였지만....
    그 당시 조선도 그럴 힘이 없었지요. 참 아쉬운 기회였고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기회가 아니였나 생각해봅니다.
  • fendee 2011/08/05 18:25 #

    네, 사실 간도 문제뿐만이 아니라 역사에 대한 지식이 많이 부족하다 보니 정확히 어떤일이 일어났고, 무엇이 문제이며,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지식은 없습니다.
    지금까지 알게된 바로는, 분명 간도지역이 우리땅임이 명확했던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죠.
    당시 분쟁지역이었고, 그 경계가 다소 불분명한 지역이었던것 같은데, 그 분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일본식민지 치하에 그냥 일본과 중국이 합의를 내려버렸고,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것이 안타까운 점이죠. 무작정 간도는 우리땅이니 돌려받아야 된다고 생각하는건 아닙니다.
    어차피 돌려달라고 말할 처지도 안되고 상황도 안되겠지요.
    그냥 안타까와서 간도 문제를 놓지 못하게 되는것 같습니다.
  • 침흘린고종 2011/08/07 01:06 # 삭제 답글

    돌려받는게 문제가 아니고 전반적인 인식이 잘못되었다는거죠
    <간도는 원래 우리땅>이 아닌데 <억울하게 빼앗긴 우리땅>으로
    둔갑시켜 국민들과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세뇌시키고 있으니깐요

    그럼 왜서 우리땅도 아닌 간도에서 역사적으로 영유권 분쟁이 일어났을가요?
    댓글로는 너무 길어서 설명하기 불편하니 다른 분의 블로그를 알려드립니다.
    http://nestofpnix.egloos.com/4209739

    (물론 이분은 굉장히 개인적인 주관이 많이 들어가게 글을 썼지만
    주관을 배제한 증거(사실)만 보아도 간도가 우리땅이라는 인식이 바뀔수밖에 없을것입니다.)


  • 침흘린고종 2011/08/07 01:14 # 삭제 답글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6&dirId=6130104&docId=133978649&qb=6rCE64+E&enc=utf8&section=kin&rank=1&search_sort=0&spq=0&pid=gB1CI35Y7vhssvpnc9lssc--017496&sid=Tj1k6-NWPU4AADpPDgk

    네이버 지식인에 쳐보니 이런 글이 있네요.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간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입장으로는
    봉금지역=중간지대 인식론, 중국=청나라 계승이 아닌 점 등등
    입장들이 있습니다만 우리만의 주장일뿐 사실 증거를 찾아보면
    우리에게 불리한 증거가 더 많이 나오는게 현실입니다.
    때문에 역사학계에서 간도영유권에 대한 통일된 의견은 없고
    다만 대부분 의견은 영유권을 주장하기에는 우리측에 유리한 자료가 너무도
    빈약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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