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공평할 거란 기대를 버려, 우리는 남들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 해-양미숙 Essay

세상이 공평할 거란 기대를 버려, 우리는 남들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 해 - 양미숙

영화 '미쓰 홍당무(2008)' 의 시작부분에 나오는 말이자, 주인공인 양미숙(공효진)의 인생철학과 같은 문장이다.
철지난 이 영화를 다시보니, 몇가지 생각들이 떠올라 몇자 적어보려 한다.

친구의 형이 피자가게를 했었는데, 그 형이 했다는 말을 우리들은 농담처럼 쓰곤 한다.
'못생긴 것들은 처먹지도 말아야 해' 라며.
아마도, 피자를 먹으러 오는 여자들중 뚱뚱하거나 못생긴 여자들을 통칭해서 그런 우스개를 했나보다.
대단히 파괴적이고 인신공격적인 말임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어감이 너무 재미있어서 툭툭 내던지는 말.
물론, 우리외에 제3자가 있을때는 절대 사용하지 않는 말이다.

양미숙은 고등학교때 상당한 따돌림을 당했고, 철저하게 패배주의적 인생을 살아온 여자이다.
시도때도 없이 붉어지는 얼굴.
단지 붉은 얼굴만이 아니라, 외모를 가꿀줄 모르는 여자이며 호감 보다는 반감을 사는 인물이다.

양미숙이 그런 가치관을 형성하게 된 것은, 친구들에게 철저히 따돌림 당했으며, 좋아하는 선생님에게 표현을 못했던 때문이다.
'우리는' 에는, 자신과 같이 따돌림을 당하거나 열등감(스스로 느끼기에) 을 느끼는 사람들을 의미하며.
'더 열심히'  에는, 대인관계에 있어 이미 점수를 어느정도 깎이고 시작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또는 못생겼기 때문에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 남들보다 더욱 치열하게, 혹은 좋아하는 사람에게 접근 한다거나 고백을 할 용기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양미숙(공효진)과 서종희(서우)의 마지막 계단에서의 대화는 양미숙의 성격을 잘 대변해주는 부분이다.
양미숙은 서종철(이종혁) 선생이 자신에게 추파를 던졌다고 생각하고, 자신에게 고백(?)을 하지 않는 이유는 유부남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양미숙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양미숙의 그런 생각이 철저한 착각 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서종희(서우)는 도무지 말이 안통하는 양미숙이 답답해서 울고, 양미숙은 억울해서 운다.
전혀 다른 의미에서 서로 부둥켜 안고 우는 모습이 이 영화를 가장 요약적으로 설명하는 핵심이다.

이 영화는 양미숙이 패배주의 극복하고 자신감을 얻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마지막에 자신이 다니던 피부과 의사에게 고백하는 장면)

어떤 의미에서.
양미숙은 왕따를 당할만한 인물이다.
외모도 외모지만, 도무지 말이 안 통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양미숙의 가치관을 반영하는 '세상이 공평할 거란..' 이라는 문장은 상황의 핵심을 잘못 짚고 있는지도 모른다.
양미숙은 자신의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가진 것인지도 모른다.
친구들이 자신을 따돌린것이 단지 '외모' 때문일 거라는 논리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실은 '소통' 이 안되기 때문일런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떤 의미에서, 친구형의 우스개 소리인 '못생긴것들은 처먹지도..' 와 통하는 문장이기도 하다.
친구형의 말이 '가해자' 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말이라면, 양미숙의 말은 '피해자' 의 입장에서 자기반성적인 수동적 대처방법에 대한 말이기 때문이다.
입장은 다르지만, 같은 상황에 대해서 하고 있는 말인것 같기도 하다.

양미숙의 그 문장을 떠올린것은 다른 이유에서이다.
어제 육촌의 결혼식에 다녀온 이후의 패배감 같은 때문이랄까?

그 의미를 확대해석해서 적용시켜 보면.
그 문장에는 '성별' 의 구분이 없기 때문에, '패배자' 들의 입장으로 해석을 해보자.

'세상이 공평할 거란 기대를 버려'.

세상은 공평할까? 불공평할까?
이 명제는 모순이 있다.
그것은 '공평' 이라는 기준점을 제시할 수 있어야 성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태고적 사람들은, 적자생존의 철저한 자연법칙의 지배하에 살았다.
적자생존의 환경에 '공평' 이라는 법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자연그대로' 의 상태일 뿐이다.
그 안에는 우성인지가 살아남는 시스템이 있을 뿐이다.
'우성인자' 라는 기준은 상황이 변해가면서 바뀌기는 하지만, 어떻게든 '승리' 하고 '살아남는' 존재가 우성인자인 셈이다.

사람들의 뇌가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자신의 욕구를 쟁취하기 위해 타인과 더욱 격렬히 싸우기 시작한다.
'적자생존' 의 기준이 바뀌고, 똑똑하거나 돈이 많다는것이 새로운 생존기준이 되기도 한다.

사람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여 족장이 씨족사회를 제어하던 시대는 넘어선지 오래되었다.
수많은 사람들간의 갈등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이해를 조절하기 위한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서, 같은 공동체 사회의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상식' 수준에서 '도덕' 과 '규범','규칙' 등을 제시한다.
하지만, 사회가 더욱 비대해지자, '법' 으로 질서를 잡는다.
'상식' 에 부합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헌법소원' 을 한다거나 '악법철폐' 를 외치긴 하지만, 통상적으로 사람들은 '법' 이라는 기준을 근거로 공평함을 기대한다.

세상은 공평한가?
절대 공평할 수 없다.
그것은, 애초에 정확한 기준점을 제시할 수 없는 상황 위에서 묻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무한경쟁 속에서 남들보다 잘살며 행복하게 사는 사람도 있고,
철저하게 유린당하며 벗어날 구멍을 찾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사악한 사람과 정신분열자, 권력가, 재력가, 낙오자, 사기꾼등이 난무한다.

인류의 문명이 발전하고, 세상의 겉모습은 통제가 잘 되어가며 서로에게 공평한듯 보이지만,
여전히 무한경쟁과 적자생존의 자연법칙 속에 살고 있을 뿐이다.

'세상이 공평할 거란 기대를 버려, 우리는 남들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 해'.
패배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외치는 비명이며, 더욱 악착같이 살아가야 한다는 절규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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